“정부에서 탕감해주는 거면 저도 그냥 돈 빌려서 투자나 해볼 걸 그랬어요. 어차피 모 아니면 도인데.”
정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민생안정 금융지원대책’을 살펴보던 한 30대 초반 후배의 푸념이다. 이번 지원안은 정부가 125조원을 들여 자영업자와 청년 등 취약계층의 빚 상환 부담을 줄여준다는 것이 핵심으로, 기존에 예고됐던 안심전환대출(대환대출)을 비롯해 코로나대출 차주에 대한 만기·상환유예 재연장, 빚 탕감 등 내용이 담겼다. 특히 이른바 ‘영끌(영혼을 끌어모음)’과 ‘빚투(빚을 내 투자)’ 차주까지도 구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사회적 공분이 확산하고 있다.
사실 정부의 이번 지원안은 본격적인 금리상승기를 맞아 대출금리 급등으로 차주들의 부실 리스크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마련됐다. 우리 사회에서 ‘약한 고리’로 여겨지는 취약차주들의 부담을 낮추는 방식으로 금융시스템 리스크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코로나 장기화 속 자영업자와 여행업계 등 다양한 분야의 경제주체들이 오랜 기간 재정적으로 직격탄을 받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취지 자체에는 이견이 없다.
이번 지원안을 둘러싸고 수혜 대상자인 청년층조차 비판을 쏟아내는 가운데 정부와 당국은 "청년들이 재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빨리 마련해 주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나중에 부담해야 될 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며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가 한정된 재원을 이들에게 투입해야 할 명분에 대해 납득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비록 1년으로 한시적이라지만 주식·가상화폐 투자에 실패한 청년까지 지원하는 것은 '투자는 결국 개인의 책임'이라는 보편적 상식에서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지원 방향을 두고 "2030세대는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미래의 핵심"이라고 부연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설명도 사뭇 황당하다. 그렇다면 4050세대는 우리 사회의 중추, 6070세대는 가속화되고 있는 초고령화 시대에 있어 핵심 경제주체 아닌가. 이러한 논리라면 이들 세대의 '빚투' 역시 구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자신들의 주요 지지층인 ‘2030 청년층’을 의식해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았다는 반발과 비판이 터져나오는 이유와도 맥을 같이한다.
워낙에 황당한 '빚투' 청년 구제 정책에 다소 가려져 있지만 90일 이상 빚을 갚지 못한 부실 차주에 대해 최소 60%에서 최대 90% 수준의 원금 감면을 해준다는 내용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벌써부터 "성실하게 빚 갚은 사람을 바보 만드는 정책", "결국 버티면 안 갚아도 된다는 것"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져 나온다. 실제 성실하게 빚을 갚아나가거나 힘겨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빚 내는 것을 자제해 온 차주들 입장에서는 사실상의 역차별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이다.
정부는 이번 정책을 두고 "금융권과 함께 지원대상과 심사기준 등을 세밀하게 설계‧운영해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면서도 정책효과를 극대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과 논의되지 않은 일방적인 정책을 일단 던져놓고 그 부실 책임과 부담을 금융권에 '떠넘기기' 하려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우려스럽다. 가뜩이나 금리·물가 등이 급등하는 등 금융리스크가 확산하는 가운데 설익은 정책으로 금융권 부담을 가중시키고 국민 분열과 반발심만 더하는 악재를 정부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그에 따른 후폭풍은 우리 사회 전반이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