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엔데믹과 재택근무 축소 현상 등으로 오피스 임대시장이 전반적으로 활성화하는 가운데, 강남 등 주요 업무지구의 오피스 공실률은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정보기술(IT)기업과 스타트업 등 기업의 입주 수요가 강남권에 집중되고 있지만 향후 몇 년 동안은 이렇다 할 공급 물량이 없는 상황이다.
14일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기업 교보리얼코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강남권 프라임급(대형)오피스 공실률은 0.61%로 전분기(0.83%) 대비 0.22%포인트 하락했다.
일반적으로 자연공실률이 5%임을 감안할 때 공실률 1% 이하는 빈자리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자연공실률은 예를 들어 '이사를 하는 기간 비어있는 경우' 등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공실을 예상해 만든 지표다. 지금 강남오피스에는 기업들이 들어오면 거의 나가지 않고, 어쩌다 나온 빈자리는 바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 기관 통계에서도 강남권에 위치한 오피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 1분기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를 보면 서울 강남권역 오피스 공실률은 5.6%를 기록했는데 이는 해당 통계가 작성된 2013년 이래 최저다. 강남권역 오피스 공실률은 지난해 1분기부터 네 분기 연속 하락 중인데 올해 1분기는 지난해 4분기에 비해 1%포인트 줄어 하락세가 가팔랐다.
개발자 찾아 삼만리…강남권 IT 기업들 인재 수요↑
강남권 오피스 품귀현상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는 IT 인재가 강남권에 몰려있다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표방하며 2012년 성남 분당 지역에 판교테크노밸리를 조성했다.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 등 대형 IT기업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았으며 이외에도 상당수 IT기업이 판교로 이동했다. 네이버도 판교 인근 정자동에 사옥을 마련했고, 이런 상황에서 수준 높은 개발자들은 판교나 강남 등지에 거주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판교역에서 강남역까지는 분당선을 이용하면 지하철로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자차를 이용하더라도 30분 정도면 이동할 수 있다. 또한 개발자들은 비교적 연령대가 어린데, 강남은 유흥시설, 편의시설 등이 많아 젊은 층에서 주거 등 선호도가 높다. 최근 개발자 품귀 현상이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강남으로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강남의 한 오피스텔·빌라 전문 부동산은 “IT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꽤 보러온다”며 “강남 주거비가 비싸긴 하지만 IT업계 종사자들이 비교적 임금도 높은 것으로 알고 있어 이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사업 수혜를 누리며 성장한 IT기업과 스타트업이 본격적인 대면 오피스 확장에 나서고 있다. 강남은 교통의 중심지로 출퇴근이 편하고 관련 기업들이 많다. 스타트업도 강남에 많이 위치해 각종 네트워크 모임이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열린다. 업계 미팅 등을 진행할 때도 편리하다.
AI 일임투자 서비스 ‘핀트’를 운영하는 디셈버앤컴퍼니는 지난해 말 남 역삼동 테헤란로 중심부에 있는 센터필드 3600㎡를 임차했다. 당시 디셈버앤컴퍼니는 강남 이전은 서비스 급성장에 따른 임직원 증가와 본격적인 AI 기반 금융 서비스 확장을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센터필드에는 아마존·페이스북을 비롯해 성인교육 콘텐츠 기업 데 이원 컴퍼니 등이 입주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P2P) 인가를 받은 핀테크 업체 ‘피플펀드’도 지난해 하반기 서울 강남역 인근의 더에셋 빌딩 15~16층 2개 층으로 회사를 확장 이전했다.
공급 부족한 강남…떠나는 전통사업 기업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유지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2023년과 2024년에는 강남권역에 공급되는 대형 오피스가 없다. 강남권 대형 오피스 임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임대료도 상승하고 있다. 교보리얼코에 따르면 1분기 강남권역 월평균 임대료는 3.3㎡당 8만7000원 수준이다. 전 분기보다도 0.67% 올랐다. 임대료는 수년째 한차례도 하락하지 않고 있다.
교보리얼코 관계자는 “강남권역은 전 분기에 이어 자연공실률을 크게 하외하는 수준의 공실률을 기록했다”며 “꾸준한 임차수요로 인해 강남권역의 임대인 우위시장 기조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최근 강남과 판교 등지에 있던 기업 중 일부가 광화문·을지로·성수 등 강북 오피스로 본사를 이전하거나 이전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토요타코리아는 연내 서울 중구 미래에셋센터원빌딩으로 사무실을 이전한다. 토요타코리아는 2000년 법인 설립 이후 22년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역삼동 등에 사무실을 유지해왔다. 강남에 공실이 없는 상황에서 꼭 강남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명품 패션 브랜드인 발렌티노코리아는 2014년 한국 진출 이후 청담동에 계속 본사를 뒀지만, 2020년 공평동 센트로폴리스로 이전했다.
이런 상황에 전체적인 서울 공실률도 떨어지고 있다. 교보리얼코에 따르면 광화문 등이 위치한 도심권 오피스는 올해 1분기 공실률 4.5%를 기록했는데 이는 이전 분기보다 2.3포인트가 줄어든 것이다. 여의도와 서울기타권역의 공실률도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이처럼 공실률이 낮아진 것은 최근 벤처 기업과 비대면 정보기술 기업들의 성장으로 기업들의 임차 수요가 증가한데 반해 이를 뒷받침할 대형 오피스 빌딩의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특히 개발부지 고갈로 향후 신규 오피스 공급이 제한적인 상황인 만큼 오피스 공실률은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대기업도 구하는 오피스…매입하거나 짓는다
오피스의 수요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대기업들도 건물을 매입하거나 건설해 사옥으로 쓰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SK그룹 자산관리(AMC) 계열사인 SK리츠운용은 종로타워의 우선매수권(콜옵션)을 행사하기로 하고, 현 종로타워 소유주인 KB자산운용에 통보했다. 우선매수권을 통해 건물을 구매하는 것으로 종로타워의 인수가는 6000억원에서 7000억원 사이로 추정된다.
또한 네이버는 성남 분당 본사 그린팩토리 바로 옆에 '1784'라는 이름을 붙인 제2사옥을 세웠다. 네이버 제2사옥은 올해 완공돼 현재 입주를 진행하고 있다. 엔씨소프트, 우아한형제들도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신사옥을 짓고 있으며 카카오는 제주 본사 외에 경기 판교 새 오피스빌딩을 장기임대해 사옥으로 꾸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