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사상 초유의 '빅 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했지만 이달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을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역전 현상이 일어나면 한국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지면서 외국인 투자 자금이 한국 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는 떨어져 물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한은은 한국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을 고려할 때 급격한 자본 유출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한·미 금리 역전 자체보다 위험자산 기피 현상이 외국인 자금 유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자본은 통상 금리가 낮은 자산에서 높은 자산으로 이동한다. 역전 현상은 곧 외국인 투자자 관점에서는 금리가 더 낮은 한국에서 굳이 돈을 굴릴 이점이 줄어든다는 뜻이며, 한·미 금리 역전과 함께 외국인 자금이 한국 주식·채권시장에서 대거 빠져나갈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300원을 넘은 상황에서 안전자산인 미국 달러화로 자금이 몰리면 환율이 올라 수입물가가 더 크게 상승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주가가 떨어지고 채권 금리가 오를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1년 내에 상환해야 하는 한국 단기 외채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1662억 달러(약 218조원)였지만 전년 대비 69억 달러 증가했다. 해당 자금이 유출되면 국내 채권시장과 외환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
미국이 올해 초 금리 인상 스텝을 밟자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돈을 빼가고 채권 투자도 줄이는 추세다. 외국인 증권 투자 자금은 3월과 4월 각 33억9000만 달러, 37억8000만 달러 순유출을 기록한 뒤 5월 들어 3개월 만에 7억7000만 달러 순유입으로 돌아섰다가 지난달 다시 7억8000만 달러 순유출됐다. 특히 주식 투자 자금은 △2월(-18억6000만 달러) △3월(-39억3000만 달러) △4월(-42억6000만 달러) △5월(-12억9000만 달러) △6월(-30억1000만 달러) 등 5개월 연속 빠져나갔다.
그러나 한은은 다시 한·미 금리가 뒤집혀도 기계적으로 외국인 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확률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지난 세 차례 금리 역전 기간에 모두 외국인 투자 자금이 순유입됐다는 게 이유다. 역전 당시 외국인 투자 자금 추이를 살펴보면 △1999년 6월~2001년 3월 월평균 7억7000만 달러 △2005년 8월~2007년 9월 월평균 11억7000만 달러 △2018년 3월~2020년 2월 월평균 16억8000만 달러 등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한·미 금리 역전 우려에 대해 "역전 자체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과거에도 금리가 역전된 사례가 세 차례 있었는데 단순히 격차가 얼마나 벌어지냐보다 자본·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