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나 금융사기 범죄는 이 질문에서 수사가 시작한다. 돈의 흐름을 쫓는 것이다. 금융범죄는 무자본 인수와 횡령 등 이른바 '기업사냥꾼' 사건에서 나아가 가상자산이나 펀드 사기 사건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자금 흐름 추적 등 수사방법이나 성과는 금융범죄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은 최근 기업사냥꾼 일당 등 4명을 전격 구속한 뒤 수사 중이다. 이들 일당은 코스닥 상장사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경영권을 확보한 뒤 회삿돈 최소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과 같은 기업사냥꾼은 사채나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상장사 경영권을 인수한 뒤 인수한 회사 자금을 횡령해 빚을 갚고 회사 주가를 띄워 차익을 얻는 방식을 일삼아왔다. 이른바 '무자본 인수합병'이다. 당초 테라·루나 코인 폭락 사건이 합수단 1호 사건으로 기록될 거란 전망이 많았지만, 검찰은 전통적 금융범죄인 기업사냥꾼 사건에서 성과를 보였다.
◆ 라임·옵티머스 등 대규모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 수사 진척
1조6679억원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한 라임펀드, 5194억원 피해가 발생한 옵티퍼스 펀드 사태도 거물급 기업사냥꾼 한모씨가 공통적으로 걸쳐 있지만, 수사의 별다른 진척을 보이고 있지 않다. 검찰이 펀드의 '자금 흐름'을 쫓아가 사용처를 확인한 부분과 정·관계 로비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수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임 펀드 사건은 서울남부지검에 계류 중이지만 정·관계 로비 의혹과 관련된 수사는 현재 진척이 없는 상태이고 옵티머스 펀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에서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했다.
'신속한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을 통한 자금 흐름 추적은 펀드 사기 사건에 있어서 정확한 실체 파악을 위한 필수적인 절차로, 수사의 성패를 결정짓는 수사의 핵심 과정이라는 것이 금융범죄 전문가들의 말이다.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참고로 수사기관은 주요 참고인들과 피의자들을 소환 조사하게 되는데 조사 과정에서는 투자자들에 대해 펀드 판매 시 투자설명서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과장되게 또는 허위로 기재했는지, 투자자들을 기망했는지 등을 조사해 사기 또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있는지 판단한다.
혐의가 인정되는 경우 도주와 증거인멸 행위를 막기 위해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통상적인 수사 절차다.
A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 출신 변호사는 "대규모 환매중단이 벌어지는 펀드 사기 사건의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피해 금액도 크며 사안이 중대해, 신속한 증거 확보를 위한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은 펀드 사기 사건에 있어서 정확한 실체 파악을 위한 필수적인 절차로서, 수사의 성패를 결정짓는 수사의 핵심 과정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자금 흐름 숨기고, 檢 시스템도 없고...가상자산 수사 '난항'
가상자산 거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그만큼 부작용도 크게 증가했다. 지난달 13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국내 가상자산 규모가 55.2조원, 일 평균 거래액은 11조3000억원, 전체 인구 30%인 약 1525만명이 가상자산 거래를 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가상자산의 익명성, 범국가성 등 사용 편의성과 추적의 어려움 때문에 다크웹, 랜섬웨어 등에서 범죄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가상자산 발행 후 거래소 상장으로 인한 급격한 가치상승'이라는 일반 투자자들의 기대심리를 이용한 사기, 다단계 등 범행에서도 이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특히 최근에는 세계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가총액 7위까지 올랐던 테라 코인의 가치가 하루 만에 97%가 폭락하면서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서울남부지검은 '폰지 사기' 의혹을 받는 테라폼랩스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자금 세탁 정황이 나왔지만 검찰은 돈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폰지 사기 등 가상자산 관련 사건 수사 절차는 펀드 사기 사건의 수사 절차와 기본적으로는 같다.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을 통해 가상자산의 가치가 전무하고 환가불가능한 투자금으로 수익금을 지급하는 돌려 막기식 범행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사건과 달리 가상자산이 갖는 특징으로 인해 어려움이 상당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상화폐 거래에서 '지갑'은 은행 계좌와 비슷한데 은행 계좌와는 달리 실명이나 개인정보가 필요 없어 사실상 무제한으로 만들 수 있고, 코인을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나아가 가상화폐의 거래 흐름을 쫓을 수 있는 시스템이 검찰에 없어 마치 계좌추적을 못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테라의 한 핵심 설계자는 권 대표가 수백개의 차명 지갑을 써가며 자금 흐름을 숨겨왔다고 밝혔다.
B금융조사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비트코인을 예로 들면 금융거래의 계좌번호에 해당하는 비트코인 주소(26~35자로 이루어진 숫자, 알파벳 조합의 문자열)를 통해 비트코인의 매매가 이뤄지는데 해당 주소의 소유자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중앙기관이 없기 때문에 주소의 사용자를 식별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가상자산이 갖는 범국가성으로 인해 국경에 상관 없이 블록체인에 참여한 누구나와 거래할 수 있는 비대면 거래까지도 가능하여 사실상 수사기관이 가상자산의 흐름을 제대로 추적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향후 가상자산 관련 사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검찰 등 수사기관은 이에 대비해 가상자산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수사기법 개발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