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권을 시작으로 3주 간에 걸쳐 주요 금융업권 수장들과의 상견례를 단행했다. 이 원장은 수 차례의 간담회에서 각 업권 특성에 걸맞은 손실흡수능력 확충과 고위험대출 관리, 내부통제, 취약차주 등에 대한 금융지원 등을 적극 강조하고 나섰다. 취임 한 달여를 맞은 신임 원장의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몰라 바짝 몸을 사리던 금융권은 이 원장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 냉·온탕을 오가야 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이 금융권에 가장 먼저 화두로 올린 이슈는 은행권의 ‘이자장사’에 대한 경고였다. 최근 금리 상승기를 맞아 대출과 예금의 금리 차(예대금리차)가 커지자 은행들의 지나친 이익추구 행위에 대한 비판이 크다며 엄포에 나선 것. 이 원장은 이 같은 행태를 개선하기 위해 개별사 금리공시체계 강화와 금리인하요구권 활성화 등을 통한 대출금리 인하를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이 원장은 “은행들은 금리를 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산정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면서 “금융당국은 은행권과 함께 예대금리 산정과 공시 체계를 개선 중인데 최종안이 확정되면 실효성 있게 시행될 수 있도록 은행들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소비자의 금리 부담 완화를 위해 금리인하요구권 제도 운영도 지속해서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간담회가 끝난 직후 은행들은 부랴부랴 대출금리 하향 조정에 나섰다. 이달 초 신한은행은 연 5%를 초과하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이용자 금리를 5%까지 낮추는 내용이 담긴 ‘금리인상기 취약 차주 프로그램’ 시행을 발표했고, 우리은행 역시 우대금리 확대를 통해 한때 연 7%를 넘어섰던 고정형 주담대 최고 금리를 연 5%대로 하향 조정했다. 국민은행은 지난 4월부터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금리 인하 조치를 무기한 연장하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요구와 쓴소리는 보험업계에도 이어졌다. 이 원장은 "최근 백내장 수술 등과 관련해 실손의료보험 소비자 불만이 증폭하고 있다"며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공정성 확보 등 보험금 지급심사 과정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험업계에도 역시 "대출금리에 대한 합리적 산출 여부를 살피라"며 대출금리 인하에 대한 우회적 압박을 이어갔다.
금투업권 내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고강도 조치도 함께 예고했다. 과거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길 수 있는 사모펀드 운용 관행 등을 면밀히 살피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펀드 상시감시체계를 고도화하고 펀드 관련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등 사모펀드 시장 감시 체계를 견고히 해 제2의 사모펀드 사태를 예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고금리와 고환율 등 불안정한 금융시장 상황 속 금융회사들의 리스크 관리도 전 업권의 주요 과제로 꼽혔다. 실제 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 보험사 등 간담회에서는 충당금 확대 등을 통한 손실흡수능력 확충이 의제로 올랐다. 이 원장은 이날 저축은행 수장들과의 자리에서도 "지난 3년간 저축은행 총자산이 연평균 20%나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BIS비율이 하락추세에 있다"면서 "과도한 자산증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스트레스테스트 결과에 따라 자본확충을 고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고위험대출에 대한 리스크 관리 필요성도 2금융권을 중심으로 요구됐다.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된 이후 부동산PF 대출 비중이 급증했는데 금리 상승과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취약 위험이 커지고 있어서다. 이 자리에서는 저축은행의 사업자 주담대에서 자금 외 유용 사례가 발각된 점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부동산PF 등이 집중된 업권을 전체적으로 점검해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라며 “저축은행의 경우 1차적인 보고를 받아 중점 점검 상황에 대해 추가 점검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금리 상승기를 맞아 어려움이 가중될 취약차주 지원에 대한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이 원장은 "코로나 금융지원 종료, 금리상승 등으로 취약차주의 채무상환능력 악화가 예상된다"면서 "취약차주에 대한 채무조정 지원 확대와 중금리대출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데 노력해달라"고 저축은행 관계자들에게 주문했다. 앞서 은행권과 만난 자리에서도 취약차주의 채무상환능력 모니터링를 통한 선제적 맞춤형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간담회에서 감독당국만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니다. 이 원장은 업권에 대한 의견 청취를 통해 규제 완화 등 '당근'을 일부 제시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실제 여전업계와의 간담회에서 네이버와 카카오 등 결제사업에 가세한 빅테크 기업과의 규제 격차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최근 결제나 중개에 관련된 업종이 빅테크 진출로 인해 여러 시장 여건이 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며 "개인적으로 공정한 경쟁,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는 만큼 현재 추진 중인 여전업법 개정 TF에서 함께 살펴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번 금융권과 감독당국 수장과의 상견례가 진행될수록 ‘관치금융’ 논란도 재차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와 정치권, 여기에 이복현 금감원장이 은행권 등을 상대로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나선 일련의 행태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한 것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 원장은 처음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헌법 등에서 은행의 공공적인 기능을 규정하고 있고, 이를 기초해 당국이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라며 "은행은 주주의 이익과 공적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는 금융기관"이라고 표현하는 등 은연중에 시장 개입의 당위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금감원이) 시장 가격 결정에 관여할 의사와 능력 모두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예대금리차) 공시 시스템은 효율적으로 시장이 작동하기 위한 정보제공을 위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