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한국 경제, 왜 中·日 보다 위기에 더 취약하나?

2022-06-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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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분별한 글로벌화에 대한 진지한 리뷰 필요하다-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동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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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가 요동치고 한국 경제는 패닉 상태다. 추락의 끝이 보이지 않고 수직 하락 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겹치는 ‘S(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가 컸다. 엔데믹으로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움츠렸던 수요가 일시적으로 폭발하는 보복 소비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불안 가중에 따른 고물가 행진으로 열리던 지갑이 닫히기 시작하면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전 세계로 확산하는 추세다. 코로나 절정기 상태로 유턴이다. 최소한 내년 말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실물경기 하락·금융위기·부동산 침체 등 삼박자가 다시 출현한다. 결국 최악 상황인 수요 감소와 물가 하락의 ‘D(Deflation)’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누구도 이에 자유로울 수 없고 절대다수가 고통을 호소한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고유가 행진으로 일부 산유국들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을 정도다. 문제는 주변국과 비교해 유독 한국 경제에 더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경제의 기초 체질이 약하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글로벌 10위권 경제력이지만 외부 악재에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는 구조적 취약성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태생적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의외로 자초하고 있는 것도 있어 기분이 씁쓰레하다. 지난 70여 년 동안 한국 경제는 글로벌화를 통해서 비약적 성장을 했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도 압도적이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하면 오히려 이것이 우리 발목을 잡고 있지나 않은지 한번 새겨볼 일이다.
 
원화 환율은 고공 행진을 하면서 지난 23일 마침내 달러당 130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동반 하락하고 있는 일본 엔화보다 원화 가치 하락 속도가 더 가파르고 호주 달러나 인도네시아 루피아보다 가치 하락이 더 두드러진다. 주식시장에서는 코스피가 2400선까지 붕괴하기도 했다.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팔아치우기가 기승을 부린다. 한국 경제, 특히 제조업에 대한 장래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악몽이 재현되고 있는 분위기다.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원인도 원자재 가격 급등, 식품 수입 의존도 확대 등 외부적 요인에서 파생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처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속수무책으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쟁국인 중국이나 일본보다 왜 우리가 더 타격을 받고 있나? 근본적으로 이들은 경제의 해외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낮다. 수출보다는 내수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며, 이는 외생변수에 견딜 수 있는 경제 펀더멘털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구 5000만명인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다. 파이를 늘리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대기업이 먼저 밖으로 나가 현지에서 터를 잡으면 중소기업이 뒤따라 나가는 형태의 해외 진출이 반복되고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 심지어 미국이나 유럽까지 시장이 있으면 나가는 것이 마치 관행처럼 되었다. 지구촌 어느 곳에 가더라도 한국 기업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실제로 이러한 전략이 우리 수출을 키우고 경제에 활력을 키웠다.

글로벌화에 대한 새로운 전략 필요, 안방을 강화하고 안전망 구축에 초점을 맞춰야
 
최근에는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나가기보다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어려워서 나가는 기업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국내의 높은 인건비, 인력 부족, 노사 갈등, 생산성 감소, 불필요한 규제, 조세 부담 가중 등 열악한 경제 환경으로 인해 밖으로 떠밀리다시피 나가서 둥지를 트는 기업이 의외로 많다. 자연스럽게 국내 생태계는 허약해지고 자체 공급망이 부실해졌다. 중국의 코로나 봉쇄로 가장 타격을 받은 곳이 한국 제조업이고, 중국에서 부품 조달이 되지 않으면 공장이 셧다운되는 사례가 늘어난다. 중국 본토 기업에서 들여오는 것도 있지만 우리 기업의 내부 거래 형태인 ‘기업 내 무역’도 상당하다. 나가지 않아도 될 기업이 나감으로 인해 위기를 더 키우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가 만든 무차별적이고 무분별한 글로벌화에 대한 진지한 리뷰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가는 것이 파이의 창출이 아니고 유실이라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과감하게 시정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계속되면서 각국이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국익 창출을 위한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그들은 밖에 나가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안방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나가 있는 자국 기업을 불러들이고, 외국 기업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중국에 나가 있는 우리 기업도 현지에서 사업을 줄이거나 접고 있지만 국내로 들어오지 않고 제3국으로 전전한다. 한국 정부에서도 이들을 국내로 유치하려는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렇게 치밀하거나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미·중 갈등 격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인해 글로벌 경제의 디커플링 현상이 노골화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를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글로벌화를 외면하고서는 한국 경제가 뻗어나갈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글로벌화를 관리할 수 있는 지혜와 전략이 요구된다. 취약한 원자재, 식량 등의 해외 공급 기지를 확보하면서 글로벌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일본이 하는 것과 같이 우리 ‘종합상사’ 기능을 획기적으로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아시아를 비롯해 중남미나 아프리카까지 포함하는 해외 자원 확보에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 이번 위기를 통해 나가고 들어오는 경제에 대한 이해득실을 재고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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