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우 경찰이 공권력을 사용했다고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는 일은 매우 드물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경찰관이 현장에서 생명의 위험을 느꼈을 경우 '합리적 판단'에 따라 물리력을 사용한 공무집행을 할 수 있도록 법이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카고에서는 2000~2015년 동안 총 702명의 민간인이 경찰 총격을 받았고 이 가운데 215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경찰관이 총격을 이유로 연방 사법 당국에 기소된 사례는 전무하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내 경찰관 등 공무원의 공무 집행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한 법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서다.
사법방해는 연방범죄로 다뤄지고 있는데 범위가 매우 포괄적이다. 그 중에서도 체포 불응, 저항, 경찰관에 대한 폭행 및 폭행 시도 등에 대해 때로는 과잉대응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큼 엄중하게 대처하고 있다.
경찰관에 대한 폭행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물리적인 폭력 뿐 아니라 체포에 불응하기 위해 팔을 휘두른다거나 경찰관의 명령에 불응하고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는 행위, 차에서 내리지 않는 행위, 문을 열어 주지 않는 행위 등도 포함된다.
경찰관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동안 해당 경찰관에게 강제적으로 가해지는 폭행, 저항, 방해, 불응 또는 협박 등 광범위한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직무를 수행 중인 경찰관 뿐 아닌 직무 수행과 관련된 협력자 대상 행위와, 근무 외 시간에 이루어지는 행위까지도 처벌 대상이다.
대상이 경찰관인지 알고 있었는지 여부도 문제 되지 않는다. 가령 일반인으로 위장해 근무 중인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폭력을 행사했더라도 공무원에 대한 공무집행 방해로 처벌을 받게 된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경찰관이 물리력 사용 시 조서를 쓰는 등 조사를 받고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경찰은 지난달 5일 밤 제주시 노형동의 한 도로에서 교통 법규를 15차례 위반한 오토바이 운전자를 검거했다. 당시 운전자가 경찰의 정차 지시를 무시하고 도주를 시도하자 경찰은 중앙선을 넘어 오토바이와 충돌, 운전자와 동승자를 멈춰 세웠다. 운전자는 면허가 없는 17세 A군으로, 충돌 당시 충격으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다. A군 가족 측은 이에 경찰이 과잉 진압을 했다며 해당 경찰관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본인이 다친 치료비까지도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일례로 인천에서 근무하던 최모 경장은 2017년 2월 송도의 한 호프집으로 야간 현장 출동을 나갔다 중상을 입었다. 어깨 관절이 찢어져 두차례 수술대에 올랐고, 운전할 때 느끼는 진동만으로도 고통이 느껴져 그는 3년간 휴직을 해야 했다. 지난해 2월 복직했지만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일상생활을 향유할 수 없을 정도로 후유증이 심각했다.
그는 부상 이후 자부담으로 지출한 병원비가 총 1억원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최 경장은 공상 인정을 받아 휴직하던 기간에도 병원비의 70%가 본인 부담이라 제3금융권 대출까지 끌어 써야했다고 토로했다.
정당한 법 집행을 통한 현장 대응이 경시 받는 문화도 경찰의 엄정한 법 집행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피의자 인권을 고려한 ‘경찰관의 적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한 손실 발생의 원인에 대해 책임이 있는 자가 자신의 책임에 상응하는 정도를 초과하는 생명·신체 또는 재산상의 손실을 입은 경우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11조2항은 2013년 신설된 바 있다.
이에 비해 엄정한 법 집행을 장려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11조5항 ‘직무 수행으로 인한 형의 감면’은 지난 2월에야 신설됐다.
경찰관은 지난 2월 개정법 이전까지 법적으로 면책 조항이 명시된 소방공무원과 구급·구조대원 등과 달리 정당한 물리력 행사 후에도 조사를 받고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나마 마련된 직무수행에 따른 감형 규정으로 경찰의 공무집행 부담은 다소 줄었지만 일선에선 유의미한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최근 만들어진 규정 탓에 판례가 쌓이지 않았고, 판례를 토대로 한 구체적 매뉴얼이 없다 보니 현장의 혼선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경찰 내부의 반응이다.
일선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법이 신설된 것은 알고 있지만 체감은 하나도 되지 않는다”며 “이전과 다름없이 현장에선 작은 불상사라도 만들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있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엄정한 법 집행을 했을 때 정당한 행위였는지를 밝히는 과정 자체도 쉽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내년 5월부터 소방·경찰 공무원 등이 위험한 환경에서 업무를 하다가 질병을 얻거나 사망했을 때 '공무상 재해' 인정이 더 쉬워질 가능성이 생겨 주목된다. 인사혁신처는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재해보상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개인이 아닌 국가가 공무와 질병의 인과 관계를 추정하도록 했다.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으려면 공무원과 유족이 직접 입증할 책임이 있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학교 경찰학과 석좌 교수는 “정당방위였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것도 경찰관 본인이었다. 법을 엄정히 집행했다가 이런저런 조사로 귀찮게 되고 나중에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으니 경찰관들이 피하고자 한 것”이라며 “국가가 책임지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무고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국가가 너무 빈번한 송사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