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 경고등] 정부 "금리 내려라", 정치권 "이익 환원하라"

2022-06-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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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은행, 금리 인상기에도 대출금리 인하

이복현 금감원장 '이자 장사' 발언에 여파

국회도 압박 동참... 원가 공개 법안도 발의

4대 시중은행 로고 [사진=아주경제 DB]

“자율적인 경영환경을 조성해달라”는 은행권의 염원은 새 정권에서도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금융권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없다”고 언급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은행의 금리 결정권을 침해하기 시작했다. 압박감을 느낀 일부 은행은 대출금리를 인하했다. 정치권은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원가와 금리 산정 근거를 공개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은행권에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라고 요구하고 있다. 은행권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호실적을 올리고 있어 사회적 책임에 대한 압력은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대금리 혜택 확대하는 은행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이 금리 인상기에도 불구하고 대출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4월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최대 0.45%포인트 인하하고,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최대 0.55%포인트 인하하는 안을 연장하기로 했다. 당초 가계대출 추이에 따라 종료하려고 했으나, 금리 인하 효과를 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이를 연장하기로 했다는 게 KB국민은행 측 설명이다.

NH농협은행은 24일부터 전세자금대출 우대금리를 0.1%포인트 확대할 예정이다. 이에 농협은행 전세자금대출 우대금리 한도는 최고 1.0%에서 1.1%로 오른다.
케이뱅크는 아파트담보대출과 전세대출 금리를 연 최대 0.41%포인트 인하한다. 아파트담보대출 고정금리형 혼합금리 상품, 변동금리 상품, 전세대출 상품 금리를 모두 낮춘다. 우대금리 확대는 대출금리 인하를 의미한다. 금리 인상기에도 우대금리 혜택을 늘린 건 최근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0일 취임 후 처음으로 은행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리 상승기에 은행들의 예대금리차가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은행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은행들이 금리를 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산정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지주) 회장과 만나 “낡은 규제와 감독·검사 관행을 쇄신하고 금리·배당 등 가격변수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금융산업의 디지털 혁신과 발전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에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우리은행도 주요 대출 상품의 우대금리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정치권도 금리 속도 조절 요구... 이자 산정 근거 공개 법안까지 발의
정치권의 공세도 거세다.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일 예대금리 차이를 공시하고 금융당국이 은행 금리를 감독할 수 있는 조항을 담은 은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금융위가 한국은행에 은행 금리 산정의 합리성 등에 대해 의견을 듣고 필요한 조치를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에 은행의 이자율 산정 방식과 근거를 공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은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앞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포함한 지도부는 은행연합회를 찾아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 달라고 요구했다. 박 원내대표는 당시 “시중금리 인상 속도와 폭 조절, 대출 상환기간 연장, 취약계층 대상 상품 개발 등 모든 금융지원 방안을 강구해달라”며 “은행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게 은행권과 대한민국 전체가 사는 일”이라고 말했다.
 
주요 은행이 지난해부터 이어진 국내외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호실적을 올리고 있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 요구는 올해도 더 거세질 전망이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기준, 5대 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한 5조3132억원을 기록했다. 5대 금융지주의 순이익이 5조원을 돌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 은행권 가계대출 역성장과 이에 따른 가산금리 축소라는 우려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금융당국 개입 불가피하나 금융업 발전도 함께 고려해야
앞서 은행연합회는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 제출하려고 만든 정책제안서에서 “일반적으로 은행은 ‘공공기관’이며 은행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고, 금융산업은 다른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도구와 수단’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이 금융권에 과도하게 개입해왔음을 보여주는 예다. 연합회는 “은행이 제공하는 각종 금융 서비스 수수료를 원가에 근거해 현실화하기 어려우며, 정부 재정을 통해 지원해야 하는 영역까지 은행의 금융지원을 요청하는 관행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개입에 관한 다른 예로 배당정책, 점포 전략에 대한 간섭도 거론된다. 금융당국은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와 은행의 배당을 순이익의 20% 이내에서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금융권에선 민간기업인 금융지주와 은행이 자율적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는 불만이 나왔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배당정책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도 업계의 호소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외에도 은행이 점포를 폐쇄할 때도 금융당국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이 작용하기도 해, 효율적인 점포 운영이 어려운 점도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코로나19 확산 같은 위기 상황에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금융당국이나 정치권의 개입이 있을 수는 있지만, 금융업의 발전과 경쟁력을 고려한 정책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가) 금융산업 발전에 대한 청사진보다 대출금리 인하에 더 주목하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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