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문재인의 '양념' 발언과 윤석열의 '법대로' 발언

2022-06-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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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관계자들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윤석열 대통령의 자택 앞에서 24시간 집회를 시작하고 있다.이는 경남 양산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열리고 있는 집회·시위의 '맞불 집회'로 이날 오후 2시부터 다음 달 7일까지 매일 방송 차량과 스피커 등을 동원해 집회를 열 예정이다.[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출근길 인터뷰에서 한 한마디와 문재인 전 대통령이 5년 전 했던 한마디를 보면서 대통령의 말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인 2017년 4월 3일 ‘문자 폭탄은 양념’이라고 했다. 당시 문 후보를 인터뷰한 방송사 앵커가 문 후보에게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18원 후원금, 문자폭탄, 상대 후보 비방 댓글 등은 문 후보 지지자 쪽에서 조직적으로 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문 후보는 “그런 일들은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우리 경쟁을 더 이렇게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방송에 앞서 문 후보 비서실장인 임종석 전 의원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과정에 다른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를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 후보 열렬 지지자들이 문 후보 반대자들에게 문자폭탄 등으로 상처를 준 것은 당내 통합을 위해서도 부절적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정작 문 후보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두둔한 것이다.  열렬 지지자들의 공격적 행태에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 후보는 ‘양념’ 발언이 당 안팎에서 비판을 받자 다음날 사과하기는 했다. "후보인 저는 바쁘게 뛰다 보니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알았든 몰랐든 책임이든 아니든 이 자리를 빌려 깊은 유감과 위로 말씀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한번 내뱉은 말은 엎질러진 물이었다. 더구나 ‘알았든 몰랐든 책임이든 아니든’이라는 표현을 써서 사과의 진정성도 의심받게 했다. 자기는 ‘몰랐고 그래서 책임이 없다’는 것을 은연중 강조하면서, 그러나 여론이 비난하니 사과는 하겠다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사저 앞 욕설 시위 4명 고소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난 5월 31일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이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에서 ‘욕설 시위’를 벌여 온  4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보수단체 3곳의 회원 3명과 참가자 1명이다. 고소장에 적힌 범죄 혐의는 섬뜩할 정도다. 모욕 및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살인 및 방화 협박, 공공 안녕에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를 연 혐의다. 


욕설 시위는 누구를 향한 것이든 잘못이다. 문 전 대통령이 반대자들에게 아무리 원성의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욕설 시위를 하면 안 된다. 문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오죽하면 시위자를 고소까지 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런 욕설 시위 문화가 판치게 한 데 대해 큰 책임을 느껴야 할 사람은 바로  문 전 대통령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바로 ‘양념’ 발언 같은 인식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내내 문 정부 열렬 지지자들은 반대자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테러에 가까운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강규형 명지대 교수를 KBS 이사에서 쫓아내려고 그의 학교까지 찾아가 시위를 했다. 강 교수와 그의 가족사진을 들고는 ‘KBS 법인카드로 결제하진 않았느냐’며 강 교수 집 주변을 들쑤셨다.


문 정권 지지자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를 앞둔 2017년 10월부터는 이 전 대통령의 서울 논현동 사저 앞에서 온갖 쌍욕을 해가며 그의 구속을 주장하는 시위를 연일 벌였다. 이들은 이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갇힌 그림이 그려진 팻말을 들고 “쥐×× 나와라” 등 욕설을 외쳤다. 지금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에서 시위대가 쏟아붓는 말 폭탄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이럴 때마다  문 대통령은 물론이고 문 정권 사람 누구도 욕설 시위를 비판하지 않았다. 자제하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 몇몇 의원들은 현장을 찾아가 시위대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문 전 대통령 측이 욕설 시위대를 고소하고 나섰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욕설 시위를 비판하면서도 이들을 고소한 문 전 대통령 측 행동도 썩 달갑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자업자득’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2017년 이명박 집 앞 욕설 시위 때 자제 촉구했어야


문 전 대통령이 ‘양념' 발언을 할 때 한마디만 덧붙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인신 공격적인 과도한 비난과 욕설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앞 욕설 시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의 사저 인근에서도 집회와 시위를 열 수는 있다. 그러나 욕설 시위는 자제해야 한다. 더구나 전직 대통령이니 최소한의 예우는 갖춰주길 바란다’고 말이다. 


그랬더라면 욕설 시위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위 문화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지금 사저 앞 시위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문 전 대통령을 ‘자업자득’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현직 대통령이 자기 지지자들을 향해 다른 당 소속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도록 설득함으로써 국민 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양념’ 발언과 거의 같은 말이 윤석열 대통령 입에서도 나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대통령 집무실 출근길에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 시위에 관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다 법에 따라서 되지 않겠습니까."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도 집회와 시위가  법적으로 가능한데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이라고 못할 게 있느냐는 뜻이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강조한 것은 좋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 사저 시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아니라 욕설 시위다. 집회와 시위가 허용된다고 해서 욕설 시위까지 허용되는 게 아님은 윤 대통령도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한마디를 덧붙였어야 했다.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 전직 대통령 사저 인근이라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욕설 시위는 자제해야 한다. 더구나 전직 대통령이니 최소한의 예우를 갖춰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이다. 


그랬더라면 문제의 핵심도 정확히 찌를 뿐만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적절한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시위 문화의 후진적 실태를 되돌아보면서 올바른 시위 문화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기회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조오섭 더불민주당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인식은 대단히 문제적”이라며 “오늘의 발언은 평산마을의 무도한 시위를 부추기고, 욕설 시위를 제지해야 할 경찰에 좋지 않은 신호를 준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산 사저 앞 보수단체의 시위는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적이고 비인도적인 테러”라며 “이를 용인하는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의 고통마저 외면하겠다는 대통령의 옹졸함의 극치”라고 했다.


윤 대통령도 '전직 대통령 예우' 한마디 해줬으면


조 대변인 논평은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극치다. 문재인 정권에서 어떤 욕설 시위가 난무했는지,  문 전 대통령이나 문 정부 지지자들이 욕설 시위나 문자폭탄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많은 국민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자기들 정권의 과거 행적은 한마디 언급도 없이 윤 대통령만 질타하고 있다. 진작에 문 전 대통령에게 했어야 하는 말이다. 


그러나 조 대변인 말의 내용은 구구절절 옳다. 한 치도 틀린 게 없다. 윤 대통령과 현 정권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누구보다 윤 대통령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윤 대통령 측도 퇴임 뒤 조 대변인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뒤늦게 되풀이하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요즘 윤 대통령의 출근길 인터뷰는 참신한 느낌을 준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 출근하면서 가장 먼저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과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과 기자실이 500m나 떨어진 별도 건물에 있던 청와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장면이다.


대통령 집무실을 구중궁궐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긴 가장 큰 이유가 국민과 대통령의 소통이다. 기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출근길 인터뷰는 대통령실 이전  취지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눈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그러나 출근길 인터뷰가 진짜 소통이 되려면 대통령의 말이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 홍보하는 말이 아니라 국민과 공감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말이 돼야 한다. 문 전 대통령 사저 욕설 시위에 관해 국민들이 윤 대통령에게서 듣고 싶어한 말도 ‘법대로’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거기에 더해 욕설 시위 특히 전직 대통령을 향한 욕설 시위에 대한 윤 대통령의 생각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 이 점을 놓쳤다. 국민과 공감하는 대통령이 되려면 이런 일은 한 번으로 그쳐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상임이사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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