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이겼고, 더불어민주당은 졌다. 3월 9일 대통령선거의 민심이 지방선거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4년 전 지방선거와 비교했을 때 민주당과 국힘의 선출된 광역단체장 수는 14:2에서 5:12로 역전되었다. 낮아진 투표율도 눈에 띈다. 2016년 지방선거에서는 60.2%였으나 50.9%로 낮아졌다.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은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보다 대체로 낮다. 그에 따라 지방선거 투표율도 낮은 편이다. 하지만 지방선거 투표율은 2002년 48.9%의 최저점 이후 2006년 51.6%, 2010년 54.5%, 2014년 56.8%, 2018년 60.2%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었다. 갑자기 투표율이 9.3%나 낮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설명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 후 3개월 만에 실시돼 상대적으로 유권자의 관심도가 높지 않았다.” 선거피로감이 작용했다는 말이다. 선거피로감으로 인해 투표율이 낮았다는 설명은 어느 정도 타당하게 들린다. 3월 9일 대통령선거는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가 지배한 비호감선거였고, 그것은 유권자의 마음에 선거피로감을 불러왔으며, 그 피로감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84일 만에 지방선거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 대권주자급이나 당 대표급 후보의 명분 없는 출마로 대선의 연장전 성격이 강화되었으며, 이는 선거피로감을 해소하기는커녕 부추겨서 유권자의 투표 의지를 약화시켰던 것이다.
선거피로감과 민심의 지형에 따른 심리적 작용으로 투표율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갑자기 낮아진 투표율은 우리나라의 선거제도와 정당의 탓이 더 크다. 유권자는 선거제도에 의해 고착화된 두 개의 정당 외에 대안을 선택할 수 없었다. 나아가 그나마 있는 두 개의 정당도 주민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진솔한 정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재정과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만 난무했다. 정책만 부재한 것이 아니었다. 당은 인물도 잘 제시하지 못했다. 단지 당의 이름으로 선거에 나온 후보자들이 많았다. 이런 정치적 지형에서 유권자는 지방선거에서 투표할 마음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권자의 절반이 투표하지 않았다는 것은 선거와 같은 정치적 의사소통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가 저하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권자는 선거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하지만 선거로 그들의 의사표현이 왜곡된다고 느끼면 유권자 측면에서 선거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고 투표할 마음도 사라진다. 따라서 선거제도는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잘 반영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지방선거는 각 지역의 생활정치를 실현할 일꾼을 선출하는 선거이기에 다양한 지역의 유권자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는, 나아가 다양한 정당 간의 협치가 가능한 선거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단순다수-소선거구제 중심 지방선거 제도는 그렇지 않다.
사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단순다수-소선거구제를 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국회의원 선거구 기준 11개 선거구 내에서 3인 이상 5인 이하 중대선거구제를 시범실시했다.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한 기초의원 선거구는 총 30개였다. 그중에 12곳에서는 민주당과 국힘의 후보자만 출마했고, 제3당의 후보자는 없었다. 제3당이 출마한 18곳의 기초의원 선거구 중에서 광주와 인천의 4곳에서만 제3당 후보자가 당선되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거대 양당의 복수공천 때문이었다. 예컨대, 충남 논산시 가 선거구(5인 선거구)에서는 민주당 5명, 국힘 4명, 정의당 1명이 출마해서 민주당 3명과 국힘 2명이 당선되었다. 이번 중대선거구제의 시범실시에서 볼 수 있듯이 거대 정당이 복수공천을 한다면 다양한 정당이 지방의회에 진출할 가능성은 낮다.
선거제도에서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단순다수-소선거구제에서 발생하는 승자독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정당의 득표는 최고득표가 아니더라도 의회 구성과 단체장 선출에 반영되어야 한다. 다양한 정당도 출현하고 성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당 지지도에 따라 비례하여 의석이 배분되는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선거에 투표하는 유권자가 각각의 선거에 2표씩 행사하도록 하면 된다. 광역자치단체선거에서 정당에 투표하고 선거구의 후보자에게 투표하며, 기초자치단체선거에서도 마찬가지로 정당과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광역자치단체 A의 의원수가 100명이라고 가정해보자. 정당득표율 40%의 정당 갑(甲)은 40명, 정당득표율 30%의 정당 을(乙)은 30명, 정당득표율 20%의 정당 병(丙)은 20명, 정당득표율 10%의 정당 정(丁)은 10명의 의원을 배분받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각 정당은 광역전당대회를 통해 광역자치단체장과 광역교육감 후보를 선출하고 이들을 선거구에 출마하도록 한다. 광역자치단체 A의 의원수 100명은 5:5의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 50명과 선거구 직접 선출 50명으로 구성된다. 예컨대, 정당득표율 40%의 갑(甲)은 선거구에서 직접 선출되는 의원과 정당명부에 따른 비례대표 의원을 합하여 40명을 보장받는다. 갑(甲)의 후보 25명이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면 15명은 비례대표 정당명부에 따라 순번대로 선출된다. 갑(甲)의 후보 40명이 선거구에서만 당선되었다면 비례대표 의원은 선출할 수 없고, 선거구에서 41명이 당선되었다면 초과의석 1명은 인정된다. 이러한 경우에 의회 의석수는 101명이 된다. 선거구에서 정(丁)의 후보가 한 명도 당선되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도 10%의 정당득표율을 얻은 정(丁)은 비례대표 정당명부에 따라 의원 10명을 선출할 수 있다. 물론 군소정당의 난립을 피하기 위해 득표율 5% 이상의 정당에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해야 한다.
이렇게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입각한 일종의 의원내각제를 실현하면, 광역자치단체의 의회는 다수를 형성하는 연정이 주도하며, 광역자치단체장과 광역교육감도 의회에서 다수를 형성한 연정에 의해 선출된다. 초과의석 1개를 포함한 의석수 101명의 광역자치단체 A에서 연정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갑(甲)+을(乙)=71명, 갑(甲)+병(丙)=61명, 갑(甲)+정(丁)=51명, 을(乙)+병(丙)+정(丁)=60명. 마지막 시나리오의 경우, 정당 갑(甲)은 최고 득표를 했더라도 집권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정당 갑(甲)과 을(乙)이 광역자치단체 민심의 향방을 읽고 연정의 가능성을 타진하게 된다. 정당 갑(甲)과 을(乙)이 가치와 정책 면에서 대립한다고 가정할 때, 가장 많이 득표한 정당 갑(甲)이 정당 병(丙)또는 정(丁)을 연정 파트너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연정이 성립되면 정당 갑(甲)에서 단체장을, 정당 병(丙)또는 정(丁)에서 부단체장을 맡게 된다. 광역자치단체의 내각 포스트도 연정하는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며 협치가 실현된다.
이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입각한 지방선거제도 개혁과 그에 따라 지방정치의 지형을 바꾸는 것은 어려울까? 일단 이러한 선거제도를 지방에 적용하고 있는 국가가 존재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독일의 16개 주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입각해서 주 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독일의 주(Land)는 우리나라의 광역자치단체에 해당한다. 독일의 16개 주에서는 대동소이하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기본으로 하여 승자독식에 따른 사표가 방지되며 민의가 반영되는 연정이 구성되도록 유도된다. 건강한 정당생태계가 형성되어 다양한 정책과 가치가 주민의 삶에 반영되고, 각 지역이 특색있게 균형적으로 발전한다. 교육감 선거가 따로 없고 주 선거의 연정 결과에 따라 교육장관이 임명되고 자치교육이 실현된다. 특히, 선거제도에 의해 사민당(SPD)과 기민·기사련(CDU/CSU)과 같은 거대 정당은 물론 자민당(FDP), 녹색당(Die Grünen), 좌파당(Linkspartei), 독일대안당(AfD)와 같은 중소 정당도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17개의 광역자치단체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입각한 의원내각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결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정이 지방정부로 이양되어야 한다. 국방, 외교, 화폐 등 국가의 고유 사무를 제외하고 ‘보충성(subsidiarity)의 원칙’에 입각하여 교육, 복지, SOC, 경제 등에 관련된 자치입법권, 자치교육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복지권의 5대 지방자치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보충성의 원칙은 기초자치단체와 같은 작은 단위가 잘 할 수 있는 사무를 하도록 권한을 보장하고 그 단위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경우 더 큰 광역자치단체나 중앙 정부가 그 해결을 책임지는 것을 말한다. 둘째, 정당이 개혁되어야 한다. 정당은 단순히 선거에 승리해서 권력을 쟁취하는 머신(machine)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개발해서 관철시켜야 하고 전문 정치인이 성장할 수 있는 둥지가 되어야 한다. 정책과 사람을 키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직업으로서의 정치(Politik als Beruf)>로 널리 알려진 막스 베버는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라고 했다. 정당은 이러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인을 길러내야 한다. 열정과 균형감각을 갖춘 정치인이 자라나도록 기회와 경험을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열정(Leidenschaft)’은 대의에 대한 책임있는 헌신을 말한다. 열정과 신념은 책임의식을 동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균형감각(Augenmass)’이 필요하다. 균형감각이란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다. 거리감의 상실은 정치인에게 죄악이다. 거리감이 상실되면 신념을 동반한 뜨거운 열정에 집착하게 되어 현실을 보지못하고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며 허영과 오만의 무책임한 자기도취에 빠져들기 쉽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가 말한 “단단한 널빤지”란 녹록지 않은 현실을 의미한다. 현실은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뒤엉켜있다. 냉정한 권력투쟁이 펼쳐지고 온갖 어려움이 생긴다.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이기도 한다. 선한 의지가 항상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정치인은 좌절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dennoch!)”를 외치며 열정과 균형감각으로 서서히 현실을 개선하는 능력자여야 한다. 현실은 단칼에 바꿀 수 없다. 단칼에 바꾸려는 정치는 독선과 비극이 될 위험이 크다. 정치인은 열정, 균형감각, 책임의식을 갖추고 정책과 설득으로 단단한 널빤지라는 현실을 서서히 뚫어야 한다. 지방선거제도의 개혁도 그렇게 성숙한 정치인에 의해 서서히 실현될 수 있겠지만, 현재 거대 양당에는 그러한 정치인이 보이지 않아서 정말 안타깝다.
장준호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뮌헨대(LMU) 정치학 박사 △미국 UC 샌디에이고 객원 연구원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