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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공룡 둘리’는 1980년대 한국 만화가 거둔 최대의 성과로 꼽힌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둘리는 사랑을 받고 있다.
“길동이가 불쌍하면 어른이 된 거란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최근에는 어른이 된 둘리 친구들이 ‘엉둥국 둘리’라는 이름으로 짤을 만들기도 했다.
Q. 오랜만에 만화를 그리셨어요. 근데 죽음에 관련된 내용이에요. 죽음을 주제로 한 이유가 뭔가요?
A. 죽음을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고 암담한 생각이 드는데 사실 죽음의 이면은 삶이거든요. 그래서 죽음을 두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생각해봤어요.
죽음이라는 극한적인 부분을 두고 되돌아봤을 때 우리가 생각해봐야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죽음을 주제로 했죠.
Q.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A. 일흔 넘었어요.
Q. 그동안 어떻게 살았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A. 만화, 애니메이션 쪽으로 작업을 해오고 이런 부분에 빠져서 살아왔는데 그러다 보니까 어떤 부분에서는 ‘이게 내 삶인가?’, ‘내가 잘 살아왔나?’라는 부분에 대해서 반성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누구나 지나간 삶에 대해서 후회는 남는 법인데 어떤 부분에서 저도 ‘잘 못살았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어떤 부분에서는 ‘그건 좀 잘했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직까지 전반적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만화의 내용이 제게 하는 얘기예요. ‘죄 짓고 살지 말자’.
Q. 성우 분들을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그분들께서는 실제 나이보다 젊게 산다고 하세요. 작가님께서도 실제 나이보다 젊게 산다고 생각하세요?
A. 저희끼리 ‘참 철딱서니 없는 직업이 만화가 인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늘 아이들을 생각하고 동심에서 헤매다보니까 철이 없어요. 기본적으로 철이 없다는 건 덜 노쇠 해져간다는 것이거든요. 얼마 전에 작가 분들을 만났는데 “아직까지도 이 나이에 만화 이야기 하고 있단 말이야” 라는 얘기를 했거든요. 확실히 덜 노쇠한 건 맞는 것 같아요.
Q. 만화가들은 만화에 대한 추억이나 결핍된 것들이 많아서 만화가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작가님도 그러세요?
A.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하는 분들이 부유하거나 넉넉한 환경에서 자라지는 않았을 거예요. 교육이나 환경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만화가나 애니메이터 보다는 회화나 다른 쪽에 작품들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아요. 그만큼 생활하는데 열악한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찍 “어렸을 때부터 만화 그려서 돈 벌어야지” 했던 게 대부분이에요. 그 나름대로 치열하게 야생화처럼 살아온 부분들이 있어요.
Q. 김수정 작가가 생각하는 죽음이란 뭔가요?
A. 죽음을 참 많이 생각해봐요. 우리가 언젠간은 가야 할 곳이잖아요. 근데 가기 전까지는 우리가 살아있단 말이에요. 죽음을 생각할 때 내가 살고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축복받은 거에요. 그래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Q. 그렇다면 작가님께서는 죽으면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A. 모르겠어요. 저는 사후를 잘 안 믿거든요. 그렇지만 만일 사후세계가 있다고 하면 꼭 가보고 싶어요. 하나의 미지의 세계잖아요. 또 한편으로는 상상의 세계란 말이에요. 근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라요. 간혹 사람들이 사후세계를 체험했다고 하지만 그 부분도 100%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사후세계가 있다고 하면 꼭 가보고 싶고, 제가 더 착하게 살아야죠(웃음).
Q. 죽음은 누구나 맞닥뜨려야 될 순간인데 둘리를 비롯해서 이전 만화를 그릴 때와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A. 둘리는 죽음의 부분을 떠나서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잖아요. 죽음을 생각 안하기 때문에 풍성한 상상력과 4차원적인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었는데 죽음을 이야기 하게 되면 접근방식이 달라져요. 경건해지고 겸손해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둘리는 그런 것들을 벗어나서 했기 때문에 무궁무진 하게 사고를 칠 수 있었죠.
Q.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도 죽음과 관련된 내용이잖아요.
A. 둘리가 엄마를 만나는 과정인데 둘리 엄마는 수억년 전에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체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 생명체를 만나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죽음의 세계로 가야 되는 이야기인데 그때는 죽음보다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 부분이 커서 와닿지 않은 거예요.
단지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한과 기쁨이 컸던 거죠. 그래서 그것이 얼음별대모험의 베이스로 깔려있는 이야기죠. 엄마의 정.
Q. 작가님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A. 고생만 많이 하시다가 가신 분이에요. 옛날 우리 세대 때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서 모정의 세월 같이 헌신하시고 가신 분이에요.
Q, 누구나 나이를 먹잖아요. 만화 속에서 둘리는 1억살인데 실제 둘리의 나이는 올해로 39살이 됐어요. 작가님께서 둘리의 나이를 정의 내린다면 몇 살인가요?
A. 역사적으로 보면 둘리는 1억살이 넘는 건 맞아요. 주민등록상으로도 마흔이 다 되어 가고요. 그렇지만 제가 보는 둘리는 영원한 6살이에요. 동심 그 자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늙지 않아요.
Q. 지금 둘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둘리를 처음 그릴 때와는 또 다른 생각이 들 것 같아요.
A. 둘리를 그릴 때와 지금 그렇게 달라진 건 없어요. 둘리를 보는 세대들은 느낌이 다르겠죠.
1세대 둘리를 봤던 독자들과 지금 둘리를 보는 독자들이 보는 느낌을 다를 것 같아요.
Q. 고길동이 예전에는 사악해보였는데 지금은 많이 순해졌다고 얘기를 해요.
A. 길동이가 과거에 사악하고 지금 순해진 게 아니고 독자의 시선이 그렇게 변한 거예요.
어렸을 때 길동이를 봤을 때는 못된 어른이었잖아요. 근데 독자가 크면서 길동 씨를 보니까 이게 사악한 게 아니라 “이런 좋은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캐릭터가 변한 게 아니라 독자가 변한 거예요. 독자가 성장을 했다고 볼 수도 있고 길동 씨를 이해할 때 비로소 어른이 된 거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Q. 작가님께서는 둘리가 불쌍하세요? 길동이가 불쌍하세요?
A. 다 불쌍해요. 부대끼며 사는 모습이잖아요. 둘리는 둘리 나름대로 사는 건데 알고 보면 다 불쌍한 존재예요. 그게 삶의 연민이거든요. 나름 잘났다고 살지만 멀리서 보면 작은 일에 투닥거리고 작은 일에 기뻐하는 것들이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이거든요. 작은 일, 화내지 않아도 될 일에 서로 부대끼며 사는 게 우리가 사는 모습인데 멀리서 보면 연민을 느끼는 모습들이에요.
Q. 길동이가 불쌍하면 어른이 된 거라는 말이 있어요.
A. 그게 독자들의 시선의 차이에요. 캐릭터는 그대로 있어요. 근데 처음에는 어린이의 눈으로 길동 씨를 보다가 점점 커가면서 성인의 눈으로 길동 씨를 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둘리가 자기들의 대변인으로서 모든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거죠. 그러면서 주객이 전도가 되는 거죠.
Q. 둘리를 처음 그리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둘리를 그릴 무렵만 해도 사회 전반적으로 만화에 대한 인식도 굉장히 안 좋았어요. 그러다보니까 우리는 만화를 일정부분 책으로 내거나 하면 심의를 거쳐야 됐어요. 근데 만화에 데한 심의는 어떤 부분에서는 냉혹했어요. 저 같은 경우 아동만화를 그리고 있었는데 아동만화의 세계를 동심 그 자체로 그리기 어려웠어요. 가위질이 아이들답게 그리는 모습을 용납 못했어요. 만화에서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고 어른들에게 건방지게 하면 교육적으로 안좋다고 해서 아이들을 성인군자처럼 그리게 되어 있었어요. 근데 이건 아이들의 모습이 아니잖아요. 아이들이란 게 실수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실패도 하면서 성장을 하는 거잖아요. 어른도 마찬가지고요. 근데 그걸 아이들에게 더욱 엄격하게 해서 동심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아이들이 캐릭터로 됐을 때는 너무 제약이 많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동물을 의인화해야 겠다 싶어서 동물을 의인화 하다 보니까 이왕이면 남들이 많이 그리는 개나 소나 고양이가 아닌 다른 동물이 없을까 생각하다 보니까 공룡까지 간 거예요.
Q. 공룡을 그렸을 때는 괜찮았나요?
A. 괜찮지는 않았어요. 그런데도 사람이 캐릭터가 되는 것보다는 완화돼서 심의를 받았어요.
둘리가 사람인데 ”길동아 길동아“ 그러면 용납 되겠어요? 근데 동물이고 외계에서 나타난 이상한 것들이 나타나서 ”길동아 길동아“ 그러니까 꺼림직 하긴 한데 그래도 좀 봐주는 거예요.
Q. 도우너는 외계인이라도 사람처럼 생겼잖아요. 괜찮았나요?
A. 도우너 같은 경우 캐릭터적으로 귀엽잖아요. 어떤 부분에서는 둘리보다 천진난만 하고 귀엽거든요. 그래서 이걸로 끌어내리기는 그렇고, 용납을 하기에는 비교육적인 것 같고. 그래서 심의실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을 거예요(웃음).
Q. YWCA에서 심의를 위해 많이 불려갔다고 들었어요.
A. YWCA라는 어머니만화모니터모임이 있었는데 취지는 굉장히 좋죠. 사회적으로 불량한 만화를 걸러낸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거든요. 근데 취지는 좋지만 작가들한테는 적 개념이에요. 사회의 정의와 도덕을 위해서 하는 건 좋은데 취지가 그러면 어지간한 만화는 다 안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어머니만화모니터모임에서도 둘리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비난을 하시고 노골적으로 지탄의 대상으로 삼았어요. 근데 그건 어머니만화모니터모임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사회 교육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였는데 어너미만화모니터모임에서는 실질적으로 모니터를 해야 되고 모니터를 한 걸 사회에 공표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 부분에서 많이 공격을 받았는데 어머니 중 한분이 저를 불렀어요. ”이 작가 혼 좀 내야겠다. 이렇게 못 그리게 해야겠다“해서 1대30의 장이 마련 됐어요. 근데 끝날 때는 1대25가 다 우리 편이 됐어요. 5명은 여전히 ”둘리는 못됐어. 나빠“라고 했는데 25명의 어머니들은 ”긴가민가 작가 얘기 들어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우리 편이 됐어요. 결과론 적으로 사회에 발표하기 전에 어머니들이 저를 또 한번 불러서 ”선생님 이건 좀 심한가요?“라고 해서 ‘이건 좀 심합니다”라고 오히려 제가 모니터 했죠. 오히려 저는 잘 됐죠.
Q. 혼내려고 불렀는데 끝나고는 싸인해달라고 했다면서요?
A. 어머니들이 갖고 있는 하나의 갈등이었어요. 어머니들이 나오실 때 “오늘은 김수정 작가를 만나서 둘리에서 잘못되고 있는 폭력적이고 비교육적이고 반사회적인 부분들을 토론할거야”라고 했는데 엄마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아이들은 자기들의 우상이잖아요. 근데 토론이 끝났는데 끝났으면 적과 적이 만났으니까 “잘가”하고 끝내야 되잖아요. 근데 어머니들이 싸인해달라고 하면서 “우리 아이가 꼭 받아오라고 했다”고 하는 거예요(웃음). 그게 엄마들이 갖고 있었던 갈등이었죠. 어쨌든 다 해드렸어요.
Q. 둘리를 그리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꽤 많았어요. 10년 넘게 했었고 늘 마감에 쫓겼어요. 그래서 한달한달이 전쟁 같은 상황이었거든요.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건 연재하면서 반응은 좋았는데 그러던 중에 폭발적으로 터졌던 만화가 있었어요. 그때가 한여름이었고 저는 옥탑방에 살았어요. 근데 그 방이 여름 되면 엄청 더워요. 방구조도 2평 밖에 안되는 작은 방이었고요. 그때 고등학생 문하생을 두고 있었는데 둘리 원고가 끝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 마실 것 좀 사오라고 보냈어요, 그러고선 원고를 말리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사가지고 온 콜라를 마시려고 땄는데 축포가 터지는 거예요. 저는 콜라가 그렇게 폭발하는 거 그때 처음 봤어요. 그랬더니 원고가 콜라에 벼락을 맞은 거예요. 그래서 둘다 갑자기 멘붕이 왔어요. 콜라를 지워야 되는데 화이트밖에 없거든요. 근데 콜라가 그렇게 안 지워지더라고요. 저는 콜라가 그렇게 안 지워지는 거 처음 봤어요. 그래서 그걸 지워서 마감이니까 들고 갔는데 편집부에서 “왜 이렇게 지저분해요?”라고 하면서 확인을 했어요. 근데 원고보다 제 머리를 보더니 “선생님 머리 왜 그래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파마머리이고 긴머리라서 콜라를 뒤집어쓰니까 떡이 된 거예요. 근데 콜라를 뒤집어 써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만화가 대박을 쳤어요. 그게 짠하면 등장하고 짠하면 사라지는 거였는데 그때 그 “짠”이 전국민의 구호가 됐어요. 그 만화가 나오고 나서 전국민들이 여기저기서 “짠”을 외치더라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가수 이용 씨가 ’10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노래로 대 히트를 치고 나왔어요. 근데 그때 이용 씨하고 제가 얼굴이 좀 많이 닮았었어요. 저도 그 당시에 둘리 때문에 TV에 많이 나가고 할 때인데 한 잡지에서 닮은꼴로 해서 같이 인터뷰도 하고 했는데 제가 봐도 닮았더라고요. 근데 한번은 독자가 팬레터를 보냈는데 “선생님은 진짜 좋갰어요. 그림도 잘 그리고 노래도 잘 부르잖아요. 근데 선생님 진짜 직업은 뭐예요?”라고 하더라고요. 이 친구가 이용 씨랑 저를 같은 사람으로 본 거예요. 그리고 나서는 전인권 씨가 떴어요. 종로를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친구가 싸인을 해달래요. 그래서 둘리를 그리고 있었는데 어떤 학생이 뛰어오더라고요. 그러더니 “전인권 씨세요?”라고 해서 제가 아니라고 했어요. 그 뒤부터는 싸인 할 때 ’뭐해드릴까요’라고 물어봐요. 둘리 그려달라고 하면 이 친구는 알고 온 거잖아요(웃음).
무엇보다도 독자들이 편지에 스토리를 썼는데 그때만 해도 아이들에게는 둘리가 절대적이잖아요. 그러니까 ‘고길동 씨 혼내는 법’이라고 나열해서 와요. 그 애들이 나중에 커서 길동 씨의 편이 되는 거죠. 둘리가 최고로 알고 길동 씨는 악인으로 알았는데 커서 보니까 아닌 거예요. “길동 씨가 대인배 였구나”
Q. 문하생은 어떻게 됐나요?
A. 미안했던지 그만뒀어요.
Q. 둘리, 또치, 도우너가 작가님 집에 들어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A. 저는 소화 못해요. 저도 한 성깔 하거든요. 원고가 안 풀릴 때는 제 인상이 인간의 얼굴이 아니에요(웃음). 거의 악마지. 그런 사람이 둘리나 도우너나 또치 같은 애들을 키우겠어요? 못 키워요.
Q. 작가님이 꼽는 둘리에서의 악동 캐릭터 순위는 뭔가요? 둘리, 또치, 도우너, 희동이 중에서요.
A. 제일 무지막지 한 건 도우너예요. 집도 들었다 놨다 하잖아요. 근데 그 친구 입장에서 보면 그게 이해가 돼요. 도우너는 인간들을 애완동물로 알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충분히 이해가 되죠. 근데 인간들이 봤을 때는 “이런 개망나니”라는 얘기가 나오는 거죠. 근데 귀엽잖아요. 귀여우면 다 용서가 되는 거예요. 도우너 다음에 악동은 역시 희동이예요. 희동이는 인간이긴 하지만 천진난만 하고 그 애 자체가 애정결핍도 있고요. 일찍부터 엄마 아빠랑 떨어져서 살았잖아요. 그러니까 애정결핍을 뭘로 풀겠어요. 화내고 자기 나름대로 풀리지 않으면 억살을 부리죠. 그런 부분에서 희동이가 두 번째로 악랄하다고 봐야되고요. 그 다음에 둘리예요. 둘리는 인간하고 처음 접하는데 자기의 정체성을 알아요. 자기가 더부살이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기죽고 밀리면 끝나는 거니까, 안 밀리려고 길동 씨랑 대치관계인거죠. 근데 싫던 좋던 친구들이 생기니까 미안함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또치는 착한 애예요. 또치도 둘리 못지 않게 자기의 정체성을 알고 있거든요. 서커스단에서 탈출을 했고 근데 자기 말로는 아프리카의 귀부인이라고 하는데 자기의 실체를 숨기려고 하는 과장된 모습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또치가 불쌍한 애예요. 못 먹고 못 살다가 쓰레기통 뒤지다가 둘리한테 발견됐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또치 같은 경우 늘 눈치 보면서 살면서 자기가 있을 곳을 아는 기회주의자 같은 애예요. 그래서 제가 봤을 때 둘리 친구들 중에 가장 연민을 느끼는 게 또치예요.
Q. 원래 심의에서 걸린 게 아이가 “길동아 길동아”해서 걸린 것 때문에 그런 건가요?
A. 심의에서 걸린 부분이 굉장히 많았어요. 반말을 하고 버릇이 없다. 어른을 구타를 한다. 조그만한 애(희동이)가 바지를 벗고 다닌다. 그런 부분들을 지우라고 해서 지웠는데 심의 끝나고 나서 다시 그려놨어요.
Q. 근데 둘리는 1억살이 넘으니까 길동이 보다 더 나이가 많다고 하면 되지 않았나요?
A. 용납이 안돼요. 1억살이 됐든 안됐든 애기잖아요. “1억살이 넘었으면 공룡을 그게 그리면 됐잖아요”라고 나오기 때문에 어른들이 보는 시선은 어른들 위주로 모든 것을 본단 말이에요.
성인의 눈에서 보는데 “애들은 애들 다워야지 왜 이래?”라고 하는데 작가 입장에서는 아닌거죠. 애들도 애들 나름대로 인격체가 있고 자기들 나름대로 존중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는데 그걸 안 갖고 애라고 치부를 한단 말이에요. 애의 인격권을 존중해줘야죠.
Q. 작가님이 생각하는 아이와 어른은 뭔가요?
A. 내가 힘이 있다고 “너 이렇게 해, 이렇게 하면 안 돼”라고 일방적으로 하는 건 안된다고 봐요. 아이들이 아직까지 미성숙 되긴 했지만 나름대로 갖고 있는 생각들이 있고 또래에 맞는 인격체가 있단 말이에요. 그것을 어른이 내가 먼저 경험하고 먼저 어른이 됐다고 해서 의견을 묵살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 입장에서 이해를 못하죠. 그 아이들은 “왜? 왜? 왜?”라고 하는데 ‘왜?’에 대한 답은 확실하게 해줘야 돼요. 보통 어른들은 “하라면 해”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안 돼요. 나빠요. 근데 저도 둘리를 그리고 애들 입장에서 생각을 하긴 하지만 저도 잘 안될 때가 많거든요. 근데 만화를 그리면서는 아이들 생각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했어요. 그러면서도 길동 씨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길동 씨는 길동 씨의 입장에서 생각을 했죠. 마이콜은 마이콜의 입장에서 생각했고요.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작가가 많이 바빠요.
Q. 둘리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둘리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반응은 좋았어요. 제가 보물섬 연재를 했잖아요.
보물섬이 처음 창간될 때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작가들 18명이 엄선돼서 들어간 게 보물섬이에요. 만일에 보물섬에 엄선되지 못해서 들어가지 못한 작가는 B급 작가인 거예요. 그럴 정도로 보물섬에 엄선됐냐 안 됐냐는 작가들 사이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거든요. 근데 저는 처음에 못 들어가서 B급이었는데 저는 창간하고 6개월 후에 들어갔었거든요.
연재하시던 선배 선생님이 건강이 안 좋으셨어요. 선생님이 맡고 있던 부분이 만화체 였거든요. 그래서 제가 대타로 들어가게 됐는데 연재 첫 달에 6위를 했어요. 편집부에서도 깜짝 놀랐는데 ‘그냥 운이 좋아서 그랬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달에 2위를 해서 ‘이게 뭐야’라고 했는데 3달째에는 1위를 하고 계속 1위를 했어요. 그래서 그때 보물섬에서 이거 뭐 하나 되나보다 해서 둘리를 트레이드마크로 쓰려고 인형을 만들었어요. 그걸 시판을 하지 않고 매월 보물섬 독자 200명을 엄선해서 줬는데 당시에 잡지가 15만부가 나갔는데 200명만 주면 인색한 거 아니에요(웃음). 굉장히 치열했는데 저도 2개 밖에 못 받았어요. 근데 갖고 계신 분이 혹시 있다고 하면 잘 갖고 계셔야 돼요. 둘리가 최초로 캐릭터 상품이 된 거예요.
그리고 나서 팬시 업체에서 둘리를 가지고 무차별적으로 팬시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 해 겨울에는 둘리가 휩쓸었어요.
Q. 작가님께서는 돈을 많이 벌었나요?
A. 못 벌었죠. 그때만 해도 캐릭터 산업 자체가 생소할 때예요. 팬시 제품으로 만들기로 했던 게 원래는 연말 카드로 제작하기로 해서 100만원을 받았는데 온 펜시 제품으로 다 써버린 거예요. 그래서 소송까지 일어났는데 그 정도로 캐릭터에 대한 인식들이 잘 안되어 있던 시대예요. 둘리가 연재되고 1년이 지난 시점에 빙과업체에서 둘리를 쓰고 싶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빙과업체도 그런 걸 안 해봤고 작가인 저도 이런 게 처음인 거예요. 그래서 얼마를 받아야 되고 줘야 되는지 서로가 모르는 거예요. “얼마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해서 저도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모르겠는 거예요. 그때 한달 원고료가 45만원 정도 받을 때 였어요. 그래서 ‘원고료가 45만원인데 100만원은 받아야 되지 않겠어’라고 생각하면서 ‘얼마를 생각하고 계세요’라고 여쭤봤어요. 한참 머뭇거리더니 “300 이상은 힘듭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300은 안되고 500은 안 되겠습니까’해서 400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이게 400만원이나’라고 생각했는데 400이 작은 거였어요. 그 회사가 롯데삼강이었는데 디자인을 해온 걸 보니까 별로였어요. 그래서 제가 네 개의 패키지처럼 만화 형식으로 해줬어요. 그랬더니 대박이 났어요. 당시에 50원이었는데 고학년들은 둘리 아이스크림 포장지만 볼 수 있었어요. 저학년들이 2시 전에 나와서 싹쓸이를 해서 다 팔리고 없는 거예요. 16만 박스가 공급이 됐는데 2시 전에 다 동이 날 정도로 팔린 거예요. 고학년들은 길가에 버려진 비닐만 볼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죠. 그래서 그때 저랑 회사랑 광고회사 모두 깜짝 놀랐어요.
Q. 제 이름이 호이잖아요. 둘리의 초능력이 호이니까 만나는 사람들 마다 둘리 친구냐는 말을 많이 했어요(웃음). 어쩌다가 둘리의 초능력이 호이가 됐나요?
A. 83년에 둘리가 나왔으니까 2000년에 태어났으면 부모님이 둘리의 독자가 아니신지(웃음).
저도 지난번에 처음 만났을 때 호이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라는 생각에 굉장히 반가웠거든요. 판타지를 보면 다양한 마법들이 나오잖아요. 근데 둘리도 초능력을 정할 때 ‘이얍!’이라고 하는데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구호를 정하면서 ‘호이’를 쓰게 됐는데 나중에 보니까, 호이가 ‘좋다’라는 뜻이더라고요. 그건 전혀 몰랐어요. 둘리라는 이름을 정할 때도 그렇고 호이를 정할 때도 촌티나면서 새로운 게 없을까 하다가 지은 게 호이예요.
Q. 둘리 작명은 어떻게 했나요?
A. 둘리도 마찬가지예요. 만화 캐릭터의 작명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친근감 있고 입에 붙는 걸로 하고 싶었는데 원래는 ‘두리’였어요. 공룡을 두 마리를 내려고 하나와 두리로 하려고 했는데 두리는 많이 쓰이는 이름이고 나중에 상품화를 했을 때 분쟁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두리보다는 둘리가 더 친근감이 있어서 둘리라고 한 거예요.
Q. 둘리의 자식 돌리도 있더라고요. 돌리는 누군가요?
A. 둘리를 끝내놓고 스페셜처럼 그린 거예요. 호불호가 많이 갈렸어요. 어떤 사람들은 시대를 앞서갔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이게 뭐야”라는 반응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돌리는 묻어두는 게 좋겠다 해서 둘리까지만(웃음).
Q. 둘리 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존재감이 커요. 각 캐릭터 별로 성장형 애니메이션을 만들 생각은 없나요?
A.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원작자인 제가 그걸 분리해서 그리기에는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작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욕심내기는 조금 그래요. 근데 다른 후학 중에서 그걸 해보겠다고 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죠. 근데 둘리를 통해서 고길동, 마이콜을 비롯해서 다른 캐릭터들도 집합체처럼 나왔잖아요. 근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각자의 역할로 가더라고요. 그래서 길동이 맥주가 나왔어요. 둘리에서 나왔지만 길동이라는 독자적 캐릭터가 상품으로 이용된 거죠. 그리고 마이콜도 다문화와 관련해서 캐릭터가 이용됐었거든요. 어느 시점이 되니까 캐릭터만의 독자성을 갖게 되더라고요. 근데 만화로서는 아직 생각은 못하고 있어요.
Q, 최근 둘리의 짤이 많이 돌아다니는데요. 김수정 작가께서는 이런 유행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A. 엉덩국이라는 건 들어봤어요. 유튜브 같은 걸 통해서 둘리를 패러디한 것들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누군가 저한테 한 에피소드를 보내줬어요. 그래서 봤죠. 근데 보면서 재밌었어요.
원작과 비교하는 건 아니고 하나의 캐릭터를 빗대어서 만드는 건 자유롭게 나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독자의 입장에서 굉장히 재밌게 봤어요.
그렇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논하기가 어려워요. 누군가가 이걸 패러디를 하던 새롭게 재구성을 하던 그건 그 작가의 몫이고 원작자 입장에서는 팬의 입장에서 보게 되는 거예요.
Q. 둘리에서 많은 OST들이 있는데 작가님께서 꼽는 최고의 OST는 뭔가요?
A. 희동이가 엄마를 찾아가는 주제가인 ‘유니콘’ 노래도 괜찮고요. 그게 NEW둘리에서 나온건데 NEW 둘리가 26부작이라서 하나의 테마송처럼 만들었는데 어떤 음악은 성공적으로 가고 어떤 음악은 음악이 빨리 나오지 않아서 애니가 먼저 제작이 들어가야 되는 상황도 있었어요.
그게 예전에는 마이콜이 처음 등장하는 부분에 나오는 ‘라면과 구공탄송’이었거든요. 이번 시즌에서는 다른 음악을 만들려고 했었는데 음악이 미처 안 나온 거예요. 그게 ‘송아지송’인데 그때가 광우병이야기가 나왔던 시절이라서 사회성을 두고 만들었는데 실제를 음악과 맞춰보니까 너무 느린 거예요. 그래서 실패라고 생각했죠. 그 음악이 아쉬웠어요.
그리고 둘리가 쫓겨나고 희동이가 형을 그리워하는 노래가 있는데 그것도 좋아요.
Q, 둘리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요?
A. 뭐니뭐니 해도 둘리가 애정이 가죠. 그동안 쭉 그려왔던 걸 보면 여타 캐릭터보다 둘리를 가장 많이 그렸어요. 그러다 보니까 둘리와 끈끈한 게 가장 크죠.
Q. 고길동이 둘리를 구박하면 아빠의 마음으로서 화나지 않으세요?
A. 10년 동안 둘리를 연재하면서 초기의 길동 씨 표정보다 뒤로 갈수록 길동 씨 표정이 알게 모르게 험악해져가요. 처음에는 길동 씨 표정이 사납지 않았거든요. 결과적으로 그게 제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화 외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길동 씨의 표정이 작가의 표정과 대입이 되는 거예요. 길동 씨가 좀 더 온순할 수 있었는데 작가가 스트레스를 받는 바람에 길동 씨까지 몹쓸 병에 걸렸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독자 분들한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 역시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고요.
Q. <얼음별 대모험>에서 처음에는 고길동이 적으로 나오다가 후반에 갈수록 둘리의 조력자가 돼요. 작가님께서는 둘리에게 고길동이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세요?
A, 둘리의 조력자가 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 졌어요. 여전히 길동 씨에게 있어서 둘리는 정말 불청객이잖아요. 눈에 안 보였으면 좋겠는데 계속 보이는 존재란 말이에요. 근데 어쩌다 보니까 길동 씨까지도 우주로 소환이 됐잖아요. 자기도 가고 싶지 않았어요. 어쩌다가 갔는데 자기도 살아야 되잖아요. 둘리는 전혀 자기와 상관이 없는 존재지만 희동이는 자기 가족이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우주를 떠돌아다니다가 가시고기도 만나고 해충도 만나고 바이오킹도 만나는데 살아야 되니까, 살기 위해서 싸우다 보니까 조력자가 된 거예요. 길동 씨는 전혀 조력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자기가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 보니까, 같이 협동을 하게 된 거예요.
A. 그렇죠. 고길동을 둘리와 관계가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언제든지 쫓아낼 수는 있어요. 근데 그러지 못한 게 희동이는 그 누구도 아닌 둘리만 좋아한단 말이에요. 둘리를 쫓아내면 희동이도 같이 나가게 되는 사태가 계속 발생해요. 희동이는 자기 여동생의 아들이잖아요. 희동이가 나가면 아주 난감한 지경에 빠지는 거예요. 아주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얄궂은 관계예요.
Q. 둘리를 연재했을 때 만화가로서의 전성기이자 인생에서는 최악의 시기였다고 들었어요. 그 이유가 뭔가요?
A. 둘리를 연재할 때 만화가 인생으로서는 가장 절정기 였어요. 근데 한편으로 개인사정으로 인해서 가장 힘든 시기기도 했죠. 고길동 씨가 인상이 험악해진 건 작가가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있다는 의미예요. 만화 때문이 아니라 저의 가정사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어요.
Q. 김수정 작가의 인생을 만화로 그린다면 첫 컷과 마지막 컷을 뭘로 장식하고 싶나요?
A. 첫 컷은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보고 있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해요. 6살 때쯤 처음 만화를 봤는데 좁은 골목 안에 나무로 된 사과박스에 앉아서 만화를 보던 게 만화가게의 첫 시작이었어요. 아마 그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보고 있는 제 모습일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은 만화를 그리는 장면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게 꿈이거든요.
Q. 작가의 삶에 있어서 보상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요?
A. 수시로 찾아오는 독자들의 환호들이 작가가 된 보람이에요. 다른 것보다도 제가 뭔가를 표현하고 독자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호응을 해줄 때 그게 최고의 선물이죠.
Q. 작가의 가치를 확인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A. 물질적으로 오는 보상보다 정신적으로 오는 호응이 큰 것 같아요.
Q. 이 자리에 오기까지 포기한 게 있나요?
A. 많죠. 내 삶의 일부도 포기를 했어야 되는 거고요. 만화는 내 직업이면서 내가 살아왔던 방법이잖아요. 그런 방법을 놓치기 싫어서 다른 부분을 포기해야 됐던 적도 많아요. 내 삶을 돌아봤을 때 여기까지 오면서 경제적으로는 돈을 많이 번 건 아이에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스스로 뭔가와 바꿨어요. 애니메이션을 두 번에 걸쳐서 작업을 했는데 애니메이션 작업이라는 건 푼돈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수십억이 들기도 하는데 만화로 돈을 벌면 애니메이션에 투입을 시켰어요. 그런 부분들이 재력에 대한 포기예요. ‘재력을 포기하고 내 만화를 만들겠다. 내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상으로 돌려주겠다’ 생각했거든요.
근데 만약에 ‘수십억이 되는 돈을 땅에 투자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해보지만 미련은 전혀 없어요.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
Q. 둘리를 담보로 맡기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A. <얼음별 대모험>이 첫 애니메이션이잖아요. 돈이 만만치 않게 드는데 애니메이션 제작에만 드는 게 아니라 시스템 구축도 해야 됐어요. 그걸 만화 원고 비용으로 다 채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 5억을 둘리를 담보로 했는데 그게 무형의 캐릭터를 담보로 했던 게 처음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5억을 받아서 <얼음별 대모험>을 만들고 무려 22억을 갚았어요.
그때 금융권과의 계약에 있어서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5억 원금 포함해서 22억 몇 천만원을 갚았으니까요,
Q. 겪어보니 만화가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인가요?
A. 작가 스스로의 꿈을 그리고 그 꿈을 독자들에게 같이 공유하는 것이라고 봐요.
Q. 직업만족도는 5점 만점에 몇점인가요?
A. 5점이에요. 지금도 만화가 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능력이 없어서 좋은 만화를 못 그린 건 도리가 없는데 내가 평생해 온 직업과 일로서는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
Q. 신한테 내가 가진 것을 하나 주고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면 뭘 주고 뭘 얻을 건가요?
A. 신이에요? 악마예요?(웃음). 저는 그런 건 없어요. 무신론자라서 신에게 또는 이게 악마일 수도 있는데 이걸 주고 원하는 걸 얻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복권을 두 번인가 한 번인가 샀는데 복권을 사지 않는 이유가 만약에 내가 복권을 샀는데 수십억이 당첨이 됐는데 내가 만화를 그리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랬을 때 복권과 나의 만화에 대한 꿈을 바꿀 거냐고 물었을 때 저는 절대 못 바꿔요. 만화에 대해 불확실 했던 시절에도 복권과 만화를 바꾸고 싶지 않았고요.
Q. 둘리의 파급력이 워낙 커서 그런지 둘리 아빠로만 알려져 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중에 김수정 작가의 아픈 손가락 같은 작품이 있나요?
A. 아픈 손가락은 되게 많아요. 작가의 욕심에 비해서 능력이 따라주지 않음으로해서 오는 부분일 수도 있는데 많은 캐릭터를 만들고 그걸 통해서 다양한 타이틀의 작업을 해왔어요.
하나하나 소중하게 여기면서 여기고 진중하게 작업을 했어요. 근데 다 성공하면 좋은데 실패한 경우가 성공한 경우보다 더 많아요. 자식처럼 여겼는데 외면 받았던 작품과 중간에 그만둬야 했던 작품들이 아픈 손가락으로 남죠. 그중에서 ‘동동‘이 있는데 동동 같은 경우는 지금도 미련을 못 버리는 작품이라서 아픈 첫 손가락이고 ’볼라볼라‘라는 작품도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중도에 끝나게 됐었고요. 그나마 나름대로 제가 기획을 해서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건 ’O달자의 봄‘ 같은 건 아쉽지만 할 만큼 한 작품이고 다른 것들은 중간에 타의에 의해서 중단돼서 아쉬움과 미련이 많이 남아요.
Q.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그리고 싶나요?
A. 젊은 분들의 입장과 저는 많이 달라요. 주어진 시간이 얼마 안 남았거든요. 싫던 좋던 건강문제도 있고 내 능력이 안 따라줄 수도 있고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어요. 그랬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보는 거예요. 1순위로 NEW둘리를 마치고 극장용을 준비하다가 못했던 시나리오를 그려서 마무리를 하고 싶어요. 그것이 애니메이션으로는 안 되겠지만 만화로 마무리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1차적으로 그걸 작업하려고요. 그것이 끝나면 ’모두 어디로 갔을까‘를 만화작업으로 마무리 하려고요. 그것이 다 끝나면 ’사망유희‘에 내가 살아보면서 보고 느꼈던 걸 풀어보고 싶어요.
Q. 아빠로서 둘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둘리는 작가의 능력 이상으로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계속해서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고 둘리가 잘 커서 작가가 해주지 못 했던 것까지 성장을 했으면 좋겠어요.
“둘리야, 애비다. 어쩌면 애비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는 것 같은데 누군가에 의해서라도 무럭무럭 더 잘 자랐으면 좋겠다. 영원한 둘리로서 전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둘리가 됐으면 한다. 사랑한다.”
Q. 이 세상에 모든 길동이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A. 지금 이 시대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으시겠지만 용기내서 한국, 이 시대의 아버지로서 부단히 살아갑시다.
Q. 마지막으로 둘리의 아빠로서 이제는 어른이 된 둘리 친구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둘리의 편에 서서 맹목적으로 둘리를 응원하시느라 욕보셨죠. 근데 커보니까 둘리가 착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이제 아시겠죠(하하). 지금 애들을 키우고 계신 분들도 계실 거고 아이가 성장한 분들도 계실텐데 늘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를 생각하면서 동심으로 봐주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폭력 없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