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주 52시간 근무제 완화 같은 노동 시장 유연화 방안이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대·중소기업 막론하고 해외로 나간 기업의 노동 생산성을 국내에서도 맞춰줘야 실질적인 리쇼어링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주요 대기업은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리쇼어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란 입장도 적잖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없던 주 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규제와 무섭게 상승하는 최저임금 때문에 국내에 돌아가고 싶어도 못 갑니다. 누군들 해외에서 사업하고 싶을까요. 지금 상황이라면 해외에서 사업하는 게 더 낫습니다.”
베트남에 진출한 A중소기업 대표의 푸념이다. 최근 5년간 42%나 오른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굵직한 규제가 한국을 경영하기 힘든 상황으로 몰아간다는 게 A대표의 주장이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중국과 베트남에 현지법인을 소유한 중소기업 76%가 리쇼어링(한국 기업의 국내 복귀) 의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쇼어링하겠다는 의향이 있는 기업은 8%에 불과했다. 특히 리쇼어링 의향이 없는 이유로 63%가 국내 높은 생산비용을 꼽았다.
중소기업계는 한국을 기업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진단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시장 개척을 목표로 나가는 기업을 제외하고 기업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누가 해외로 나가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지난 5년간 최저임금이 42%나 올랐고 주 52시간제 도입,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규제 때문에 여러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도 지난 18일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 기업의 유턴을 촉진하고 유턴 기업에 대한 지원도 파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인수위는 유턴 기업에 대한 세액 감면 요건 완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의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원만으로는 리쇼어링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게 중소기업계의 시각이다.
추 본부장은 “정부가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결국 획일적인 주 52시간제, 기업을 옥죄는 중대재해처벌법 등 규제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500대 기업 10곳 중 3곳 “리쇼어링 고려”...글로벌 공급망 타개 위해 불가피
주요 대기업들은 좀더 장기적인 측면에서 리쇼어링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시작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최근 중국발 도시 봉쇄령 확산 등을 통해 국내 기업들의 공급망 불안은 연일 커지고 있다. 그동안 값싼 인건비만 고려해 해외 공장을 늘렸지만, 인건비 상승과 물류난이 겹치면서 비용 부담이 커진 기업들은 리쇼어링을 적극 고려 중이다.
일례로 지난해 8월 베트남 협력사의 스마트폰 생산라인 일부를 경북 구미공장으로 옮겼다. 베트남은 삼성전자 휴대전화 최대 생산거점으로 구미공장으로 생산라인을 옮긴 것을 두고, 리쇼어링 신호탄이 터졌다는 분석마저 나왔다. 실제로 베트남은 최근 2~3년 새 인건비 상승폭이 2~3배 이상 치솟아, 현지로 진출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로 복귀한 유턴 기업은 늘고 있는 추세이며 추후 리쇼어링을 고려하고 있는 기업도 증가세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월 매출액 500대 기업 가운데 105개사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리쇼어링 고려 중이라는 기업은 27.8%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5월 매출액 1000대 기업 대상 조사에서 불과 3.0%인 것과 비교하면 9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향후 정부 지원과 국내 경영환경이 개선될 경우 리쇼어링 검토가 가능하다는 답변도 29.2%였다. 전경련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 심화로 인한 생산 차질과 물류비 증가, 미·중 갈등 장기화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리쇼어링은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보국'과 'ESG 경영'을 국내에서 실현하는 또 다른 카드가 될 수도 있다.
전경련도 해외에 진출한 국내 제조기업 중 현재 유턴을 고려하는 기업이 국내로 돌아오면, 국내총생산(GDP)이 11조4000억원 증가하고 일자리 8만6000개 창출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생산기지를 국내로 옮기면 대외 의존도 완화에 따른 상품수지 적자 개선효과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이 가능해진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결국 리쇼어링 여부는 기업의 의지에 달렸지만 이를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려면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책이 따라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