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대구와 광주가 같은 꿈을 꾸는 대한민국

2022-03-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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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논설고문 [극동대 교수]


윤석열 당선인에게 국정운영에 관한 주문과 조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역시 국민통합과 협치 요구가 단연 많다. 국민을 더는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치지 말고 하나로 묶어내라는 것이다. 윤 당선인도 10일 “협치·통합하라는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바른 방향이다. 분열과 갈등이 일상화 된 나라는 미래가 없다.
 
이번 대선에서도 영호남 지역구도는 여전했다. 윤 당선인의 호남 득표율은 광주 12.7%, 전남 11.4% 전북 14.4%에 그쳤다. 당에선 내심 20%대까지도 기대했으나 미치지 못했다. 이 수치는 그래도 보수 우파정당 후보가 호남에서 얻은 역대 최고 득표율이다(종전 최고는 18대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10.5%). 반면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광주 84.8%, 전남 86.10%, 전북 82.9%로 거의 몰표를 받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통합과 협치를 얘기하기가 멋쩍다. 정말 통합을 이루려면 영호남 지역감정에 기초한 동서(東西) 갈등부터 완화시켜야 한다. 동서갈등은 우리 사회 갈등의 근원이자 블랙홀이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여서 ‘지역감정의 이슈’로 재생산해낸다. 인사(人事)가 특히 그렇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을 때도 됐다.
 
국민통합, 동서갈등 해소부터
 
한국정치의 모든 폐해와 비효율의 근원이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음을 국민이라면 누구나 안다. 바꾸고 싶지만 엄두를 못 낸다. 영호남 지역구도의 판박이나 다름없는 지금의 정치구도 하에서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선 때면 후보들마다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외치지만 안 되는 것이다.
 
원론적으론 제3자가 개입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영호남 지역감정은 경위야 어떻든 두 지역 유권자들의 자유의사 표현이고, 오랜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적어도 근대 민족국가(nation state) 시대에 살고 있는 깨어있는 시민이라면 통합이 분열보다 더 공동선에 가깝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민주시민의 척도로 삼는 이른바 시민문화(civic culture)의 관점에서도 그렇다.
 
필자는 대선과정에서 윤 당선인이 만든 동서화합미래위원회에서 잠시 일할 기회가 있었다. 이제는 해체됐고, 인수위 산하에 새로 구성된 국민통합위원회가 그 기능을 대신하게 된다지만 나로서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30여 명의 전문가들과 여론주도층 인사들로 구성됐고, 위원장은 4선의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이 맡았다.

위원회가 어떤 명문화된 활동지침을 가졌던 것은 아니나, 기조는 정치적 현실주의(political realism)에 기초한 포용(包容)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포용은 ‘남을 아량 있고 너그럽게 감싸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곧 용서와 화해다. 위원들 모두가 그런 정신과 원칙 아래서 위원회가 운영되어야 한다는 데 이심전심으로 통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놀랍게도 우리는 어느새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정신과 철학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맹세코 처음부터 그런 의도나 방향성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DJ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평가와도 무관한 것이었다. 필자부터가 DJ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포용정책)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사람이다. 그럼에도 DJ를 빼고 국민통합을 얘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선비의 문제의식과 商人의 현실감각”
 
영원한 ‘DJ맨’으로 통하는 박 위원장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아니다. “현재의 민주당, 특히 이재명의 민주당은 DJ의 민주당과 다르다”는 게 그의 소신이고, “정치인은 국민보다 반보(半步)만 앞서가라.” “정치인은 선비의 문제의식과 상인(商人)의 현실감각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DJ의 정치철학을 신봉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강요할 사람도 아니고,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윤 당선인은 작년 10월 11일 김대중 기념관을 방문해 “선비의 문제의식과 상인(商人)의 현실감각. DJ의 정신을 국민 모두가 이어받겠다”고 방명록에 썼다. 또 다른 장소에선 “국민의힘이 지금의 민주당보다 DJ정신에 더 가깝다. 당선되면 민주당과 합리적으로 협치해서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공언했다.
 
11월 11일 목포를 찾았을 때 “DJ는 자신을 힘들게 했던 분들을 다 용서하고 국민통합이라는 큰 밑거름으로 IMF 국난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DJ 정신 하면 가장 먼저 내세울 것이 국민통합”이라고도 했다. 선거 직전(2월 23일)에는 보수정당의 대선후보로 처음 DJ 생가(신안군 하의도)를 방문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DJ의 위대한 국민통합의 정신을 잘 계승해야 한다”고 했다.
 
DJ에게 큰 빚을 진 尹 당선인
 
이런 언급 또한 우리 위원회의 ‘포용’의 정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표(票) 앞에서, 더욱이 호남에서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느냐, 고 반문할 것이다.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그 의미를 굳이 깎아내릴 필요가 있을까. 윤 당선인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DJ에게 큰 빚을 졌고, 그 빚을 갚아야 할 처지에 놓임으로써 결과적으로 동서갈등 해소와 국민통합에 보탬이 될 거라고 나는 기대한다.
이번 대선에서 DJ는 윤 당선인에게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윤석열이 당선되면 ‘검찰공화국’이 되고, 한반도는 다시 독재와 냉전의 먹구름에 뒤덮일 거”라는 이 민주당의 집요한 공격과 마타도어(흑색선전)를 DJ가 막아준 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좌와 우, 진보와 보수 간에 또 하나의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의 기제가 추가된다면 그게 국민통합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2월 28일 광주에서 열린 대구·광주 지식인과 시민사회단체인사 555인의 윤석열 지지선언은 우리 위원회의 활동에 정점을 찍었다. 영호남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선을 목전에 두고 공동으로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개 표명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희망컨대 정치에 앞서 영호남이 민간 차원에서 ‘지역감정’이라는 만들어진 벽(壁)을 함께 허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날 멀리 대구에서 승용차를 몰고 달려왔던, 진지하고 비장하기까지 했던 그 얼굴들을 잊을 수가 없다.
 
영호남 지역감정과 동서갈등에 관해서는 일단의 헌신적인 연구자들에 의해 상당한 진전이 이뤄진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지역평등시민연대 주동식 대표다. 광주의 복합쇼핑몰 부재(不在)를 전국적인 이슈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긴 싸움 끝내야
 
그는 박정희 주도의 산업화(자원배분) 과정에서 호남은 소외돼 하층계급으로 전락했고, 이 하층계급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지역감정 격화의 시작이었다고 본다. 여기에 5·18 민주항쟁의 비극이 겹치면서 호남은 민주화의 성지가 되었지만 동시에 반(反)근대, 곧 반기업, 반시장, 반대한민국의 정서도 함께 껴안게 됐다고 본다.
 
그는 “호남이 민주화를 통해 근대화의 완성자라는 위상을 확고히 하려면 그 이전 단계인 건국과 산업화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하면 이승만과 박정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마찬가지로 영남도 김대중을 수용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그 긴 싸움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윤 당선인의 어깨에 그 무거운 짐이 지워졌다.
 
또 다른 연구자인 조귀동은 <전라디언의 굴레>(2021년)라는 주목할 만한 저서에서 호남 출신 재경(在京) 엘리트와 지역의 토호세력과 시민사회세력, 3자가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을 놓고 어떻게 유착, 공생하고 있는지를 파헤친다. 두 연구자 모두 호남의 민주당 정치인들이 그런 관계를 묵인, 조장하고, 심지어는 이용해왔다고 주장한다.
 
대구와 광주가 서로 피해자?
 

앞으로도 연구는 더 활발해져야 한다. 필자는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요즘도 광주를 ‘피해자’ ‘약자’라고 하면 대구 시민들은 과연 동의할까.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하지 않을까. 광주, 대구가 모두 피해자면 대체 수혜자는 누구인가.
 
윤 후보가 대구에서 광주 복합쇼핑몰 얘기를 꺼냈을 때 한 대구 시민이 물었다. “왜 대구에서 광주 얘기를 하느냐”고. 윤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광주의 발전이 대구의 발전이고 대구의 발전이 광주의 발전”이라고. 그 한마디에 광주가 고향인 나는 감동했다. 대구의 한 지인(74)도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 한마디를 우리는 왜 이제야 듣는 것일까.
 
당선 일성으로 국민통합을 다짐한 윤 당선인에게 거는 기대가 실로 크다. 부디 대구와 광주가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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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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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두환 노태우 시절도 전라도 지원 많이 해줬고 좌파들 집권하면서 전라도 많이 밀어줘서 대구가 지금 더 가난하다 역차별 받아서
    도시를
    균형발전시켜야 서로가 화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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