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기인법 20년] ④ 여성과기인에 '기울어진 운동장' 더 기울인 코로나19

2022-02-22 06:00
  • 글자크기 설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사태가 비대면 시대로의 전환을 앞당기면서 가사와 양육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기혼 여성 과학기술인들에게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경력의 지속·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또 다른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21일 학계에 따르면 한국연구재단(NRF)은 1901명의 박사학위 소지 연구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연구활동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수행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토대로 작년 12월 'COVID-19가 연구자들에게 미치는 불평등한 영향력'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이후 재택·원격 근무가 확산되고, 가사노동·돌봄이 증가하면서 기혼 연구자들이 겪는 일과 가정의 충돌 문제가 존재함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이 조사 결과 코로나19 이후 연구자들의 가사·돌봄(자녀 양육) 노동이 증가했고, 실질적인 연구 활동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하루 평균 가사시간은 코로나19 이전 2.36시간에서 이후 3.42시간으로 길어졌다. 보고서는 "이러한 경향은 여성 연구자 그룹에서 좀 더 강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요구된 '원격근무 수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 1순위로 '인터넷 접속 불안정'을 꼽았지만 '가사', '일상 육아', '아이 돌보기'를 응답한 비중이 컸다. 이에 보고서는 "연구자들은 가사, 육아, 아이 돌보기 등의 문제들로 인해 가정 또는 가정 이외의 장소에서 연구 활동에 온전히 몰입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미성년자를 양육하는 연구자 806명의 답변을 분석한 결과, 전염병 감염 우려로 인해 돌보미를 직접 고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체감하는 돌봄의 부담이 클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연구 성과를 상쇄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연구와 관련된 활동 가운데 논문 제출, 논문 심사, 주 저자 논문 작성, 과제 제안서 작성, 자료 분석 등 실제 연구와 논문 작성에 수반되는 활동이 감소했다는 응답이 많았다. 응답자 3명 중 2명(66%)꼴로 코로나19 기간에 연구 성과가 줄었다는 답이 나왔다.

◆ 자연과학·공학 분야 일·가정 충돌 두드러져

특히 자연과학·공학 분야 응답자의 연구 활동에서 결혼 여부가 연구 활동·성과에 모두 유의미한 차이를 나타냈다. 미혼 연구자일수록 연구 활동과 연구 성과가 기혼 연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것으로 해석됐다. 보고서는 "결혼 및 양육에 따른 가사 노동과 돌봄의 책임이 있는 연구자일수록 연구 생산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선행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자연과학·공학 분야 응답자의 연령대별 연구 활동·성과 차이도 결혼 생활과 돌봄의 책임이 있는 쪽이 불리함을 시사했다. 35~54세 연구자보다 기혼자 비중이 작을 것으로 추정되는 25~34세 연구자와 돌봄의 부담이 적을 것으로 짐작되는 55~64세 연구자의 연구 활동이 활발했다. 25~44세보다 결혼 생활과 돌봄 노동의 부담이 적을 듯한 45~54세 연구자의 연구 성과가 높게 나타났다.

자연과학·공학 분야 연구자들은 스스로의 '정신적 건강'을 묻는 문항에서도 미혼인 연구자일수록 기혼 연구자들에 비해 정신적 건강이 좋은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고, 돌봐야 하는 아이가 있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정신적 건강이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 산업계도 일·가정 양립 위기…제도 보완돼야

권지혜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위셋) 정책연구센터장은 "여성들이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 일을 하게 되고, 당연히 그만큼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는 상황"이라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게 돼 상시 돌보면서 일해야 하는 이중부담이 생긴 것은 연구기관뿐 아니라 산업계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이후 일·가정 양립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아예 직장을 그만둘지 고민하는 비중도 여성 쪽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딜로이트가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재직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일·가정 양립 환경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한 보고서(Women in the tech industry: Gaining ground, but facing new headwinds)의 진단이다.

NRF는 보고서에 "6세 미만의 아이를 주로 양육하는 여성 연구자는 상대적으로 연구 활동에 집중하기 어렵다"며 "미성년 아이를 돌보는 연구자에 대해서는 승진·정년 보장 심사 유예 제도(stopping tenure clock)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또 "자연과학·공학 분야를 세분화해 코로나19 이후 여성 연구자 경력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봤다.

법적으로 육아휴직과 같은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온전한 일·가정 양립의 실현이 어렵다고 평가된다. 권 센터장은 "A(주요 정부출연 연구기관) 같은 곳에서 일하는 30대 중반 여성 연구원들도 육아휴직을 길어야 6개월 쓰는데, 연구경력 단절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며 "(육아휴직에 따른 불이익이 없도록) 인사평가제도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래픽=임이슬 기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