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탄소중립] 충전 지옥에 보조금 오락가락…'앞길 구만리' 전기차 정책

2022-02-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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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 SEC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40% 달성을 위해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친환경차의 급격한 확대는 쉽지 않은 목표며, 사전 인프라 구축 없이는 전기차 충전 대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전기차 누적 등록대수는 23만1443대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71.5% 폭증한 수치다. 전기차 신규 등록대수는 2018년 3만1000대, 2019년 3만5000대, 2020년 4만7000대를 기록하다 지난해 10만대 고지를 넘어섰다.

다만 이러한 증가세에도 정부가 제시한 2030년까지 전기·수소차 450만대 보급 목표와 비교하면 ‘거북이걸음’에 가깝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남은 9년 동안 연평균 40만대 이상 전기·수소차 보급이 이뤄져야 목표에 근접할 수 있다. 문제는 보급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미흡한 인프라에 전기차 구매자들마다 ‘충전 지옥’을 경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 공공 전기차 충전기는 10만6701기다. 시간당 7㎾급 충전이 가능한 완속충전기는 9만1634기, 50㎾·100㎾급 급속충전기는 1만5067기로 나타났다. 특히 전기차 편의성과 직결한 급속충전기는 완속충전기(85.8%) 대비 14.1% 비중에 불과하다.

세계 주요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충전 인프라의 열악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전기차 100대당 충전기 수는 영국 318.5기, 독일 230.4기, 미국 185.3기, 일본 153.1기다. 한국은 50.1기에 불과해 벌써부터 전기차 소유자들 사이에 충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 충전 인프라 구축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민간 사업자의 충전 인프라 투자 참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정책 컨트롤타워 부재로 민간 사업자마다 시장 진출을 머뭇거리고 있다. 

제주도에서 전기차 충전소 60% 이상을 점유한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의 이규제 대표는 “완속충전기 지원금 약 600만원이 160만원으로 갑자기 깎이는 등 부처별로 관련 정책이 수시로 달라져 사업 방향을 잡기가 매우 힘들다”면서 “전기차 충전 시장은 대‧중소기업 협업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활성화할 여지가 많지만 정책적 개선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달 28일부터 100가구 이상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기를 의무 설치하는 정책도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에 따르면 100가구 이상 신축 아파트는 전체 주차 면적 중 5%를 전기차 충전 시설로 구축해야 한다. 기존 0.5%에서 10배 확대했다. 이미 지어진 아파트는 2% 이상이다.

하지만 국내 공동주택 2만5000여 개 단지 중 가구별 설계용량이 3㎾ 미만인 공동주택 단지는 약 30% 수준(7900여 개 단지)에 달한다. 시공 당시 가구당 적정 용량을 1㎾로 한정한 노후 아파트다. 한국전력이 준공 15년 이상인 아파트를 대상으로 변압기 교체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올해 관련 예산은 증액이 아닌 삭감이다. 

더욱이 국내 완성차 업계가 전기차 양산 대수를 급격히 끌어올릴 수 없는 근본적 문제에 처해 있다. 지난해 현대차 노조는 ‘아이오닉5’ 생산라인에 기존보다 30%가량 인력 투입을 줄이는 사측 계획에 반발해 ‘맨아워(노동자가 1시간당 할 수 있는 작업 분량)’ 협의에 들어갔다. 부품 수가 최대 3만개 이상인 내연기관차와 달리 최대 70% 적게 들어가는 전기차 생산 확대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설령 정부의 전기차 보급 목표가 이뤄지더라도 급격히 늘어난 전력 수요를 단기간에 충족시킬 수 없고, 맨아워 갈등부터 반도체 수급난과 같은 부품 공급망의 불투명성 등 난제가 산적한 상황”이라며 “친환경차 보급을 크게 확대해 탄소중립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는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이 크게 떨어졌다”고 잘라 말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전기차 '아이오닉5'를 생산하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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