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생태계 위협하는 공정위] 보호는 커녕 M&A 늑장 심사만…기업은 속탄다

2021-12-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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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M&A 2년 넘게 뒷짐만

소극적 태도에 정상 경영활동 '발목'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사진=아주경제DB]


인수·합병(M&A)을 앞둔 기업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장 큰 리스크 가운데 하나다. 공정위가 기업결합 결정권을 쥐고 있어서다.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공정위지만 대형 M&A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 발목을 잡고 있다.

29일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위에 신고된 기업결합 건수는 총 865건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 확산과 이에 따른 국내외 경기 침체에도 2019년(766건)보다 100건 가까이 늘었다.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기업 움직임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2년째인 올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 자료를 보면 국내 500대 기업들은 올해 들어 3분기까지 M&A 126건을 진행했다.

기업 M&A가 모두 순조롭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대형 M&A는 공정위 기업결합 심사 허들에 막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 세계 조선업계 빅딜로 꼽히는 현대중공업그룹 조선부문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대표적이다. KDB산업은행은 지난 2019년 3월 현대중공업을 대우조선해양 인수 후보자로 확정했다. 한국조선해양은 같은 해 7월 공정위에 기업결합 신고서를 내고 심사를 신청했다. 동시에 중국·일본·싱가포르·카자흐스탄과 유럽연합(EU)에도 M&A 허가를 요청했다. 

심사 신청 3개월 뒤인 2019년 10월 카자흐스탄이 기업결합을 허가했다. 지난해 8월엔 싱가포르, 같은 해 12월에는 중국이 '조건 없는 승인'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공정위와 EU, 일본은 여전히 심사 단계다. 허가 신청국 가운데 한 곳만 불허해도 M&A는 무산된다.

공정위는 EU와 함께 대우조선해양 M&A 키를 쥐고 있는 기관으로 꼽힌다. 하지만 2년 넘게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EU를 비롯한 다른 경쟁당국 눈치를 보느라 심사에 매우 소극적이다. 현대중공업이 인수 후보로 정해진 2019년 3월 김상조 당시 공정위원장이 "공정위가 먼저 결론을 내려 외국 경쟁당국이 우리 판단을 참고하게 하겠다"고 했지만 헛된 약속이 됐다.

EU 집행위원회가 지난달 23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심사를 재개하자 비로소 공정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정위는 이번 주 경쟁 제한성을 심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기업 측에 보내고 기업 의견을 들은 뒤 전원회의를 소집할 예정이다.

심사 보고서가 올해 마지막 주에 전달되는 만큼 기업결합을 심의할 전원회의는 내년 초에나 열릴 수 있다. 3년째 미뤘던 결정이 또 다음 해로 넘어가는 것이다. 

공정위 늑장 심사에 관계자들은 속을 태우고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9월 "EU가 아마존·구글 등을 규제하려 하면 미국 경쟁당국이 보호하고 나서는데 우리는 '다른 데 하는 거 보고 하자'는 기분이 든다"면서 공정위를 향해 "심히 섭섭하고 유감스럽다"고 토로했다.

이날 '조건부 승인'으로 가닥이 잡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한항공 모회사인 한진그룹과 산업은행은 지난해 11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합의했다.

대한항공이 올해 1월 공정위에 기업결합 심사를 신청했지만 공정위는 방대한 자료 분석을 이유로 심사 일정을 예정보다 6개월 이상 뒤로 미뤘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은 지난 1년간 적잖은 속앓이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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