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악용한 성범죄 의혹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피해자가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조직의 제도와 문화를 뒤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강제추행이나 강간죄 등의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울 때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 혐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29일 경찰에 따르면 최근 경북 경산의 한 중소기업 대표가 여성 비서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해 서울 강남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다. 고소인 A씨는 자동차 부품 회사 대표인 B씨가 약 1년 4개월간 강제로 입을 맞추고 안마를 강요한 혐의 등이 있다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A씨의 다이어리에는 B씨가 1년 4개월 동안 44차례에 걸쳐 안마를 강요한 정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에는 복합쇼핑센터인 가든파이브라이프 관리단 회장이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신고당해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박 씨는 지난 5월 서울 송파구 가든파이브에서 여직원의 어깨를 끌어당기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성추행이 아니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저지르는 권력형 성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문제를 고발하기 어려운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장윤미 법무법인 윈앤윈 변호사는 “가해자가 지위를 악용해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못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도 피해자가 용기 내 나서지 않으면 ‘(성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용인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문제”라며 “조직 내에서는 권력 구조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제대로 고발할 수 있는 조직 제도와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폭행, 협박 등 강력한 요건이 필요한 강제추행, 강강죄 등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울 땐 더 포괄적인 범위의 범죄까지 인정하는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혜진 법률사무소 더라이트하우스 대표변호사는 “강제추행 혐의는 폭행, 협박이 조건상 명시돼 있지만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폭행, 협박 없이도 수직 관계나 지위를 이용했으면 (범죄 혐의가) 인정된다”며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로 충분히 기소할 수 있음에도 단순히 강제추행으로만 해석해서 불기소하는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