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꿨나?] ⑭한국대중문화의 황금기, 아카이브 통해 미래의 길 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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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경 서울대 교수 화상 인터뷰(上)

"대중문화, 모두가 함께 만들어온 문화유산...보존과 재생산의 장 열어야"

"우리 앞엔 아무도 없는 단계...새로운 길 개척하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지금 한국대중문화는 앞에 아무도 없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개척해야 하는 그런 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2021년 한국대중문화가 다시 한번 세계를 뒤흔들었다. 코로나19 속 더욱 거대해진 온라인을 타고 날아올랐다. 한국대중문화가 나날이 위세를 더해가면서, 관련 분석도 홍수를 이룬다. 국내외 언론은 물론이고, 사회 곳곳에서 한국대중문화의 '무엇'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는가에 대한 수많은 말들이 오갔다. 쏟아지는 분석 속 가장 눈에 띄는 분석을 내놓는 이는 단연 홍석경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다.

단순 생산자에 대한 분석을 넘어 수용자의 시선과 함께 한국대중문화 확산 현상을 연구해 온 홍 교수는 문화의 양방향성이 가진 '역동'에 주목해왔다. 일방적 전파가 아닌 '수용'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를 설명하는 이유다.

 

지난 2019년 12월 한국언론학회 문화젠더연구회 주최한 'BTS 너머의 케이팝: 미디어 기술, 창의산업 그리고 팬덤문화'라는 특별 세미나에서 강연 중인 홍석경 서울대 교수. [사진= 한국언론학회]

'K-POP(케이팝)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꿨나?' 시리즈를 통해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인생의 새로운 길을 만나온 이들의 이야기를 취재해온 아주경제는 지난 15일 비대면 방식으로 홍석경 서울대 교수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홍 교수는 글로벌 대중문화 속에서 선두주자로 올라선 한국대중문화는 이제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이어 지금의 영향력을 오래 이어가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돌아보기'라고 짚어냈다.

'
한국대중문화아카이브사업추진단' 단장이기도 한 홍 교수가 체계적인 기록과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또 한국대중문화 수용자들이 보여준 다양한 열광의 얼굴들을 제대로 마주할 때 '영광의 시대'는 더욱 오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산자와 수용자가 함께 셀 수 없는 씨실과 날실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 한국대중문화의 황금시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주경제는 홍 교수로부터 기록 프로젝트의 청사진과 함께 현재 한국대중문화에 대한 진단과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한국대중문화, 모두가 함께 만들어온 문화유산"

4년 전부터 대중문화 기록을 위한 아카이브 프로젝트 제안을 해온 홍 교수는 대중문화를 '문화유산'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수용자들과 함께 공명하면서 성장한 한국대중문화에 이같은 체계적인 기록 작업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많은 이들이 한국의 대중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경제효과 몇 조와 같은 표현을 쓰면서 경제적 이익으로 환산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문화는 드라마든 케이팝이든, 한국의 동시대적인 문화유산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국민이 함께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케이팝의 핵심은 사실 팬덤입니다. 방탄소년단(BTS) 아미를 비롯한 해외 케이팝 팬덤들도,  199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이른바 '빠순이'로 폄하되던 그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여러 팬덤 문화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팬과 아티스트 사이의 끈끈한 유대와 팬들의 연대는 케이팝이 전세계에서 인기를 얻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한국적 맥락 속에서 대중과 함께 탄생했기 때문에 이것을 문화유산이라고 말씀 드리는 것이고, 공통의 자산으로 바라보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제작 환경 속에서 대중의 취향과 요구를 반영해 줄거리가 변해 최종 생산물이 나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결국 제작자의 역할도 있지만, 대중들이 사랑하고 욕망하는 것을 반영한 생산물은 문화유산으로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 교수는 또한 한국의 대중문화는 전세계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퍼뜨려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기 한국드라마가 인터넷을 통해 퍼지게 된 배경에는 팬들이 자발적인 자막 달기가 큰 역할을 해왔다. 공식 수출이 아닌 대중의 수용을 통해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케이팝도 마찬가지다. 뮤직비디오라는 1차 창작물을 두고 만들어진 리액션 비디오라든지 수없이 많은 팬들이 만들어 놓은 교차 편집 등 2차 창작물이 한국 대중문화의 전세계적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서울대학교가 제작한 유튜브 강연 영상인 '샤로잡다'에 출연했던 홍석경 서울대 교수. [사진=유튜브/서울대학교]


홍 교수는 이제 주류로 자리잡은 한국 대중문화가 자신의 자산을 돌아보고 정리할 때가 됐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지적재산권의 개념이 확실히 자리 잡히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플랫폼에서 지적재산권 제한이 가해지면서 2차 창작물을 만들고 싶어도 제한적으로 원소스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한류 확산의 바탕이 된 2차 창작물을 통해서 원작자가 이익을 얻게 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지적재산권의 문제로 사용시간도 제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카이브를 통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카이브를  구축한다면  수요자들이 원하는 영상을 찾아 선택하고, 이들을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방송사와 연결시켜서 제대로 사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각 방송사들이 자신들의 영상을 다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런 (한국대중문화라는 공통의 아카이브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접근은 아직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외에서도 급격하게 늘어나는 유튜버, 인플루언서들이 창작할 때 제대로 된 파트너를 찾을 수 있는 (쉬운) 길을 만들어주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앞에 아무도 없는 단계···새로운 길 개척해야"
물론 대중문화 아카이브 사업은 굉장한 기술과 연구가 필요한 사업이라고 홍 교수는 지적한다. 그러나 방송과 영상의 포털이 만들어지고 표준화가 될 경우 얻게 될 문화·경제적 이익을 고려할 때 (사업을) 추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기술의 발달로 인공지능을 통해 방대한 자료의 분류와 검색이 가능한 점도 사업 추진에 힘을 싣고 있다. 
 

아카이브가 중요한  또다른 의미는 기록을 통한 문화유산 보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 수많은 영상들이 이미 올라와 있지만, 이 영상물들은 시장경제 속에서 언제든 쓸려 나갈 수 있는 것이고, 보존되는 것들은 아닙니다. 이전에 말씀드린 대로 이것을 문화유산으로 접근한다면 우리는 보존가치가 있는 것들을 선정해서 안전하게 남길 수 있는 것이죠. 이같은 작업은 이후 한국대중문화 연구에도 더 없이 좋은 자료를 남길 것입니다. 각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산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각 방송사들이 산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곳에 모인 대중문화기록의 플랫폼이 구축되면 향후 10년, 20년, 50년 어쩌면 100년 뒤 오늘의 한국을 연구하려는 이들에게 매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석경 서울대 교수. [사진=홍석경 서울대 교수]

홍 교수는 한국대중문화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도 아카이브 작업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과거를 체계적으로 되돌아보는 작업이 없이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기억과 기록을 통한 대중문화플랫폼을 구축할 때 앞으로 한국대중문화의 비상을 위한 계단은 만들어진다고 홍 교수는 지적했다.  
 

한국 대중문화가 큰 사랑을 받으면서 우리는 드디어 이제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너무 정신없이 앞으로만 갔다가 이제는 우리가 앞으로 갈 때 앞에 아무도 없는 단계가 왔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이 왔는데, 이걸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길을 왔는지를 알아야 될 필요가 더 큽니다. 우리가 누군지, 우리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은 뒤돌아보기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학술적으로 얘기하면 우리 사회에 문화적 정체성을 구축이라는 그런 것들은 아카이브 없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문화적 측면에서 우리에게 국립박물관이 없는 거랑 똑같은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제가 이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물론 대규모의 사업이며,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일이기에 현실화되기까지의 과정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물론이고, 각 생산물의 수많은 저작권자들이 협력에 나설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 교수는 사업의 진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각 참여자가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지가 확실히 이해될 경우, 상호 이해의 장은 어느 정도 마련됐다고 봅니다. 물론 장기간 추진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차기 정부의 중요한 문화프로젝트가 됐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지속적으로 이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거구요. 이전에도 콘텐츠진흥원을 통해 이런 아카이브 구축 아이디어가 있기는 했지만 현실화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좋은 쪽으로 바뀌어 더욱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아카이브 형식과 선별, 활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대중문화에 대한 기록 구축이 가장 잘 돼 있는 국가인 프랑스는 이미 이것을 활용한 연구가 수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아카이브를 활용한 연구를 평가해 상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한국에서 이뤄진다면 결국 대중문화에 대한 담론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이어 다시 창작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10월 29일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에서 열린 한국대중문화아카이브사업추진단의 <한국 대중문화 아카이브 구축: 기술, 제도, 추진전략> 세미나. 이날 홍석경 교수는 기조 발제로 '한국대중문화아카이브연구원의 필요성'(18:55~29:25)을 발표했다. [출처=유튜브/SNU 한국대중문화아카이브사업추진단]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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