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놀이터 조성, 유축기 대여사업, 미세먼지 대응 등 시민 삶의 질 개선에 꼭 필요한 제안이 집중돼 시민들의 편의를 높이는 계기가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시는 주민참예산 제도를 통해 안정적 재원확보.사업구조화.동 단위 사업 등 내실화에 큰 성과를 거두는 등 거버넌스 성공작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시민이 만든 숲속 놀이터···도심 속 힐링 공간으로 '재탄생'
야트막한 산의 지형을 살려 조성된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광교중앙공원에는 어린이들을 동화 속으로 초대하는 신비로운 숲 놀이터가 있다. 걷기 편한 공원 숲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산이 아늑하게 안아주는 듯한 새둥지같은 공간이 마법처럼 나타난다. 둔덕과 물길 등 지형을 그대로 살려 만들어진 숲놀이터는 동화 속 이야기를 따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놀이시설들이 가득하다.
벤치와 운동기구 등이 놓인 일반적인 쉼터형 공간을 어린이와 가족들의 꿈의 공간으로 변화시킨 것은 지난 2019년 주민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경사도가 완만하고 생태공원이 연결된 공간을 눈여겨본 주민 김모씨가 어린이 체험학습장을 조성하자고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제안한 덕분이다.
주민이 제안한 숲놀이터 조성은 2019년 심의과정을 거쳐 2020년 4억 3400만원의 사업비를 배정받는 데 성공했으며 이후 실시설계용역과 착공이 이뤄져 같은해 11월 말 도심 속 힐링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수원시민이 행정의 정수인 예산 과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거버넌스 제도로 시민들과 소통하며 시의 예산 및 재정 운영에 참여를 보장하고, 직접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형식이다.
시 주민참여예산제의 본격적인 시작은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까지 인터넷 의견 접수 등 소극적으로 운영되던 주민참여예산은 민선 5기가 시작되며 확산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시는 주민참여예산의 세부운영계획을 마련하고 조례를 개정해 적극적인 사업 시행의 근거를 마련, 제도가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보완하며 시민의 참여를 더욱 넓혔다.
주민은 누구나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편사항을 해소하거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사업 등을 제안할 수 있다. 인터넷과 민원실 접수는 물론 홍보 캠페인, 찾아가는 제안설명회 등 다양한 창구가 열려있다. 시는 매년 3~5월 접수 집중 기간에 각 동을 방문해 주민들과 함께 동네를 탐방하며 사업을 발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덕분에 첫해인 2011년 총 197건의 주민제안이 접수됐던 주민참여예산사업은 꾸준한 호응을 얻어 2018년 1036건으로 제안 건수가 대폭 늘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총 7278건에 달하는 주민제안이 접수돼 예산 과정에 시민참여를 이끌어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주민제안이 주춤하고 있지만, 올해 역시 688건의 제안이 접수됐다.
주민제안 사업의 적절성과 우선순위를 평가하는 심의 역시 시민이 한다. 주민의 제안은 언제든 접수 가능하지만 5월 말을 기준으로 심의가 이뤄진다. 시는 주민세 재원(개인균등분 주민세 전전년도 결산징수액)과 별도 재원(결산징수액의 20%)을 활용해 연간 48억원 상당의 사업을 진행한다.
제한된 예산 범위에서 효율적인 제도 운용을 위해 주민참여예산 위원회가 운영되는데 180여명에 달하는 위원들이 활동하는 위원회는 4개 분과별 시 위원회와 4개 구별 지역회의, 청소년위원회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된다.
제안사업은 위원회별로 사업에 대한 적격성을 사전검토하고 위원회와 담당 부서의 검토 및 현장실사, 지역 주민의 의견 수렴 등의 과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이후 주민참여예산 위원회의 심의와 조정을 거쳐 우선순위 사업들이 선정된다.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심의한 사업들은 예산부서를 거쳐 다음 해 예산안에 포함돼 수원시의회의 심의를 거친 뒤 연말쯤 최종 결정된다.
지난 10년간 1585건의 주민제안이 주민참여예산으로 실행됐고 올해 제안된 사업 중에는 127건이 예산안에 포함돼 시의회의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다.
수원시민의 아이디어로 예산을 수립해 진행한 사업은 생활 속을 파고들며 시민의 삶이 편리해지는 데 일조했다.
대표적으로 임산부 유축기 대여사업을 꼽을 수 있다. 출산 후 모유 수유를 하는 산모에 꼭 필요한 유축기를 대여해 주는 사업이 주민참여예산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2017년 한 주민이 익명으로 제안한 유축기 대여사업이 접수돼 심의 과정을 거쳐 2018년 4293만여원의 사업비를 배정받았다. 이후 시는 2018년부터 출산 후 1개월 이내의 수유부에게 전동 유축기를 1개월 지원해주는 사업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단기간 사용하거나 어떤 제품이 잘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유축기를 구매 또는 대여하는 부담을 느꼈던 산모들은 시의 지원으로 무료로 유축기를 대여해 높은 호응을 보였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맘카페 등에서 활발하게 정보가 공유되면서 수원시만의 특색을 담은 출산지원정책으로 입소문을 얻고 있다.
미세먼지 대응과 관련된 사업들도 주민제안으로 현실화됐다. 지난 2019년 수원시민 8명이 각각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미세먼지 대응 관련 사업을 제안한 것을 사업구조화한 경우다. 당시 마스크 지원, 미세먼지 흡입식물 보급, 홍보 교육관 설치, 공기질 지키미, 미세먼지 의무교육, 대기오염측정소 설치 등의 주민 제안이 접수되자 각 실무 부서와 위원회가 숙의·토론을 거쳐 사업구조화를 통해 2020년 주민참여예산으로 선정했다.
2020년 1억1천만원의 사업비를 수립해 미세먼지 대응 사업이 시 전역에서 진행됐다. 이 사업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미세먼지 취약층에 7만2330장의 마스크가 지원됐다. 또 20명의 미세먼지 관리사가 양성됐고 이 중 우수한 4명이 시 초미세먼지 관리사로 채용돼 총 266회의 교육을 진행했다.
마을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주민참여예산제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권선구 서둔동에 위치한 벌터 어린이공원에는 자그마한 미니도서관이 설치됐다. 집 모양의 3단 진열장 안에 어린이 도서부터 일반 도서까지 수백여 권의 책이 있어 누구나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진열장에는 ‘주민 송모씨의 제안에 따라 주민참여예산으로 시행된 사업’이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다. 덕분에 이 놀이터는 아이들의 활기찬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수원시방범기동순찰대 서둔지대 옆 도로변에 설치된 흙먼지털이기에도 ‘주민 유모씨의 제안사업’이라는 표시가 돼 있다. 동네를 가장 잘 아는 주민의 제안으로 서호천 산책로 이용 후 흙이나 먼지를 제거하기 위한 편의시설이 설치된 것이다. 이 밖에도 산책로 진입계단 변경과 마을소식지 발간 등을 포함해 서둔동에서는 올해 총 6개의 주민참여예산 사업이 진행됐다.
시는 지난 해부터 주민참여예산제에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하고 실제로 마을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도록 주민자치회 시범동과 연계해 ‘동 단위 자치계획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동 단위 사업은 지역에서 필요한 사업을 주민 스스로 토론하고 결정하는 직접 참여 확대로 마을 자치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보인다. 올해 역시 주민자치회 시범동 8곳에서 제안된 460건의 동 단위 사업이 시의회의 최종 예산 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노력으로 합리적이고 내실 있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운영해 온 시는 지난 2017년 행정안전부 평가에서 우수, 2018년 최우수, 2020년 우수 자치단체로 잇따라 선정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상균 시 예산재정과장은 “수원시 주민참여예산제가 10주년을 넘긴 만큼 그동안의 발전을 넘어 수원특례시에 걸맞은 위상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주민의 삶에 밀착되고 주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는 오는 15일 수원청소년문화센터 온누리아트홀에서 ‘제5기 수원시 주민참여예산 위원회 성과보고회’를 열어 지난 2020년부터 올해까지 2년간의 활동 성과를 발표하고 앞으로의 발전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