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하나둘 떠나는 12·12 쿠데타 주역들…남겨진 이들은 어디에

2021-11-2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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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장세동, 전두환씨 사망한 날 연희동 자택에 지팡이 짚고 등장

허화평·허삼수는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당시 유족 측 장례위원으로 등장

전씨와 우정 두터웠던 정호용, 2년 전 서울 고급식당서 전씨와 샥스핀 오찬

1979년 12·12 쿠데타 이후 서울 보안사령부에서 기념촬영하는 신군부 세력.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노태우 전 대통령, 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전두환씨. [사진=연합뉴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만큼 서슬 퍼런 권력을 휘두르던 12·12 쿠데타 주역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5공 실세들의 면면과 근황에 관심이 쏠린다. 5공 말기 2인자로 불리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쿠데타에 가담했던 쓰리허(허화평·허삼수·허문도), 전씨와 우정이 두터웠던 정호용 전 육군참모총장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기분까지 챙겨야 한다며 '심기 경호'란 용어를 만들었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전씨가 사망한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검은색 코트와 넥타이를 착용한 장씨는 '누굴 만났나', '어떤 말을 나눴나' 등을 묻는 취재진에게 "그런 거 묻는 거 아니다. 물어봐야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 일관했다. 또 5·18 당시 발포 명령이 없었느냐는 질문엔 입을 꾹 다물었다. 다만 전씨 사망에 대한 소회가 있느냐는 질문엔 "모든 사람이 느끼는 바대로"라고 답했다.
 

전두환씨 빈소 지키는 장세동 전 안기부장 [사진=연합뉴스]

장씨는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장이던 당시 12·12 쿠데타에 가담했다. 이후 대통령 경호실장과 국가안전기획부장 등을 지내면서 5공 시절 2인자에 올라섰다. 경상도 출신이 주축을 이뤘던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에서 호남 출신인 장씨가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던 배경엔 그의 남다른 충성심이 있다. 장씨는 전씨가 산책 도중 돌부리에 걸리면 심기가 불편해질 수 있다며 도로 평탄화 작업을 지시하기도 했다.

5공 막바지까지 승승장구하던 장씨는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안기부장에서 물러났다. 이후 장씨는 노태우 정권이 출범한 뒤로 치러진 5공 청문회에서 끝까지 전씨와 관련해 함구해 '의리의 돌쇠'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끝내 5공 비리에 연루돼 여러 차례 옥살이했던 장씨는 2002년 16대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대선 하루 전 사퇴했다. 2년 뒤인 2004년 17대 총선에도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하면서 현재까지 특별한 활동 없이 지내고 있다.
 

허화평, 고 노 전 대통령 빈소 조문 [사진=연합뉴스]

12·12 쿠데타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이자 5공 설계자로 불리던 허화평씨는 지난 10월 26일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뒤 유족 측 장례위원을 맡으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허씨는 취재진이 5·18 유족에게 사과할 것인지 묻자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5·18 사격 지시 관련 질문엔 "그건 저에게 물어보지 말아라. 대답하고 싶지 않다. 그때 내가 비서실장을 했기 때문에 아무 관계가 없다. 내가 사과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허화평씨는 전씨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청와대 정무1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1982년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당시 전씨의 친인척 공직 사퇴를 건의하면서 전씨의 눈 밖에 나 청와대를 떠났다. 이후 1992년 14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 행보를 이어갔으나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12·12 쿠데타 관련자에 대한 처벌을 추진하면서 구속됐다. 또 15대 총선에선 옥중 당선됐다가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의원직을 상실했고 16·17대 총선에선 연달아 낙선했다.
 

전두환, 5·18 사과 없이 사망 [사진=연합뉴스]

허화평과 육사 동기이자 하나회 멤버였던 허삼수씨도 노 전 대통령 별세 당시 유족 측 장례위원에 포함됐지만,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12·12 쿠데타 당시 보안사령부 인사처장이던 허삼수씨는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한 인물이다. 허삼수씨는 전씨 집권 이후 청와대 사정수석비서관에 임명되면서 전씨 핵심 측근 인물이 됐지만, 허화평씨와 함께 눈 밖에 나면서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88년 국내로 돌아온 허삼수씨는 13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했다. 하지만 당시 통일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 동구에서 맞붙어 패배했다. 14대 총선에선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한 뒤 당선돼 정계로 진출했지만, 15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구속됐다. 이후 허삼수씨는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증인석에 앉은 허문도 [사진=연합뉴스]

눈 밖에 난 허화평, 허삼수와 달리 전씨 집권 당시 끝까지 남았던 허문도는 중앙정보부 비서실장, 문화공보부 차관, 청와대 정무비서관, 국토통일원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기자 출신인 허문도씨는 언론 통폐합을 주도한 인물로, 청와대 정무비서관이던 1981년 5월엔 5·18민주화운동 1주년을 무마하기 위해 정권이 기획한 관제집회인 '국풍81' 행사에도 관여했다. 국풍81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행사로, 허문도는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을 약화하기 위해 해당 축제를 기획했다. 당시 행사엔 전국 194개 대학의 6000여명의 학생들과 연예인 등을 비롯해 1000만명에 이르는 인원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문도씨는 1989년 5공 비리 관련 국회 청문회에서 언론 통폐합은 잘한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허문도씨는 정치와는 인연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허문도씨는 1996년 총선과 1998년 경남지사 선거에서 잇달아 패배했다. 또 16대 총선을 앞두고 자민련 공천을 받았지만, 불출마했으며 2016년 76세로 사망했다.
 

전두환(오른쪽 위)은 12·12군사반란 40년이 지난 2019년 12월 12일 가담자들과 기념오찬을 하고 있다. [사진=정의당]


육사 시절부터 전씨와 우정이 두터웠던 정호용 전 육군참모총장은 12·12 쿠데타 이후 특전사령관에 취임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전씨가 집권한 이후엔 신군부 인맥 서열 3순위까지 오르면서 1981년 육군참모차장, 1983년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노 전 대통령 집권 당시엔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다.

2년 전인 2019년 12월 12일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고급 식당에서 정씨가 전씨 부부와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날은 12·12 쿠데타가 벌어진 지 꼭 40년이 된 날이었다. 당시 오찬엔 고급 샥스핀과 와인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전두환씨 빈소 [사진=연합뉴스]

한편 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씨는 전날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뒤 사망했다. 12·12 쿠데타 동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28일 만이다. 전씨는 전직 대통령이지만 내란죄 등으로 실형을 받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 전씨는 마지막까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사과 한마디 없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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