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달 중순 미국 텍사스주 출장길에 오른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중 최대 이슈인 17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현지 파운드리 제2 공장 건설 부지를 확정하기 위해서다.
현재로선 텍사스주 오스틴시와 테일러시가 가장 유력한 유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애리조나주의 굿이어·퀸크리크, 뉴욕시 제네시 카운티 등도 유치 경쟁에 가세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최종 결정은 이 부회장이 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를 기점으로 미국 내 파운드리 장기 생산 계획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길에 그동안 소원했던 반도체 관련 고객사 대표들과 만나 협력 관계도 돈독히 다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와 현지 미팅을 잡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반도체 공급난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퀼컴으로부터 안정적인 칩 수급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는 지난 8일(현지시간)까지 반도체 글로벌 기업의 주요 정보를 제출받았지만, 다수의 기업들이 ‘고객사 정보’를 표기하지 않아 성에 차지 않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적으로 받아든 정보가 미흡하다고 판단할 경우, 바이든 정부는 추가 자료 제출 요구나 자국 내 직접 반도체 생산체제 동참을 강요할 공산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 방미,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을 만나 우리 기업의 애로 사항을 설명할 예정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로서는 투자 결정권을 쥔 기업 오너의 한마디를 더 유심히 들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고(故) 이건희 회장 1주기를 추모하며 ‘뉴 삼성’ 의지를 내보인 이 부회장이 이번 미국 출장길에서 반도체 현안 해결사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며 “정부 대 정부 간 협상은 정치 헤게모니가 작용하지만 반도체 공급망 이슈는 철저히 경제 이슈라, 미국 정부도 삼성전자가 자국 내 어떤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부회장은 현재 가석방 신분이지만 해외 출장에는 제약이 없는 상태다. 다만 미국에 가려면 법무부 장관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또 전자여행허가서(ESTA)로는 미국에 입국할 수 없기에 별도의 단수비자 발급도 필요하다.
공판 일정도 출장 시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이슈다. 삼성물산 부당합병 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은 오는 11일 공판이 예정돼 있다. 다만 오는 18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인해 휴정이 결정됐고, 이후 25일 공판이 속행될 예정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이 부회장 측은 출발 시기를 신중하게 고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11일 공판을 끝낸 직후 주말인 14~15일께 미국행 항공권을 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까지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 여부는 미정”이라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