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주어진 공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관객이 흥미롭게 작품을 경험하도록 어떻게 조율할지를 고민합니다. 이번 전시를 찾은 관객들이 그들 자신과 작품과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도록, 호기심과 놀라움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 작가인 줄리안 오피가 가상 현실(VR) 고글을 쓴 이유다.
줄리안 오피의 개인전 ‘Julian Opie’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국제갤러리 K2·K3 전시장에서 개막했다.
그간 오피는 수원시립미술관(2017), F1963(2018) 등에서 개인전을, 그리고 서울, 부산, 대구, 전남, 김포에서 영구 설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한국에서도 꾸준히 작업을 선보여왔다.
2014년 이후 7년 만에 국제갤러리에서 세 번째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그중 가장 대규모의 전시다. K2, K3를 비롯해 정원을 아우르는 다양한 전시공간에 설치된 30여 점의 건물, 사람 그리고 동물 형태의 평면 및 조각 작품을 갤러리 공간에서 함께 체험할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성됐다.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는 7일 열린 간담회에서 “전시 배치를 위해 가상공간을 만든 건 오피 작가가 처음일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작가가 얼마나 세심하게 작품을 배치했는지 느낄 수 있는 전시다. 그를 대표하는 걷는 사람과 도시의 건축물인 ‘City 1’이 절묘하게 ‘하나의 여행 풍경’으로 연결됐다.
유서 깊은 런던 건물의 연상시키는 섬세한 선들은 전시 공간을 다채롭게 채울 뿐만 아니라 K2 옆 정원에 설치된 또 다른 건축 조각, 마천루 형태의 타워 작품과도 대조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오피 작가는 자신의 전시가 열리는 해당 도시에서 직접 포착한 이미지를 활용하여 전시작을 만드는 방식을 즐기는데, 지난 2014년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 선보인 ‘Walking in Sadang-dong in the rain.’(2014)이 그 대표적 예다. 당시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풍경을 담았다.
장기간 지속되는 코로나19 상황은 작가의 작업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작가는 물리적인 여행 대신 가상의 3D 구글 지도를 통해 인천을 둘러보았고, 전시작 중 하나인 ‘인천, 타워 2208. (Incheon, Tower 2208.)’의 단서를 얻었다.
인천에 위치한 무명의 건물은 전시장에서 수백 개의 창문, 특유의 직선적이며 기하학적 선 등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탄생했고, 정원에 놓임으로써 추상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도시풍경의 일부를 재현했다. 그는 상상이 아닌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다.
K2 2층 공간에 전시된 동물 작품은 그의 미니멀리즘을 잘 보여준다. 작가가 오랜 시간 지속해온 주요 작업군 중 하나인 동물 작품이 중점적으로 전시되는데, 사람을 모티프로 한 작업만큼 다양한 크기와 형태, 색으로 구성되어 있는, 생동감 넘치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고양이, 사슴, 수탉, 소, 강아지 등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동물의 이미지를 간결한 선과 색으로 표현했다.
단순하지만 마치 동물이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작품에 꼭 필요한 것만 담은 오피 작가 만의 남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윤 이사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이 그동안 친숙하게 여겨진 일상 풍경의 본질을 오피 작가 만의 미니멀리즘적 접근을 통해 재고할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1월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