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로펌들의 경찰팀 신설이 계속되고 있다.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독립적 수사 주체로 인정받게 되면서 기업들이 경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는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수사 상당수를 경찰이 맡을 것이라는 관측과 맞물려 대형 로펌들의 경찰팀 신설을 부추기고 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오랜 기간 경찰팀 꾸리기에 공을 들였다. 경찰 출신 변호사 등 전문가만 70~80명이 포진해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형사팀을 운영하고 있다.
법무법인 세종은 최근 '경찰수사대응팀'(SPID, Shin&Kim Police Investigation Defense Team)을 발족하고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장을 지낸 양근원 전 용인서부경찰서장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양근원 전 총경은 경찰대 2기로 1986년 경찰에 입문해 25년간 사이버수사, 디지털포렌식 분야 전문가다. 우리나라 최초 경찰청 컴퓨터(사이버)수사대장, 인터폴 디지털크라임센터 부국장 및 디지털포렌식실장, 경찰청 사이버수사과장, 용인서부경찰서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디지털포렌식학회 및 경찰청 디지털포렌식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세종은 지난 5월 서울 강남경찰서장,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사이버수사기획과장 등을 거친 이재훈 변호사를 영입했다. 이 변호사는 경찰수사대응팀 팀장을 맡고 있다. 경찰수사대응팀에는 사이버범죄, 경제범죄 수사팀장 출신의 강광민 변호사, 수원남부경찰서 경제범죄팀장을 지낸 김주형 변호사를 비롯해 김태승, 서정원 변호사 등 경찰 출신 변호사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지난해 김정훈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을 고문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법무법인 광장에는 경찰 출신 변호사 13명이 일하고 있다. 이성한 전 경찰청장도 이곳에서 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 전 국가수사본부 안보범죄분석과장(총경)을 역임한 정채민 변호사도 지난 9월 영입했다.
정 변호사는 16년간 서울종로경찰서와 방배경찰서 수사과장, 송파경찰서 및 동대문경찰서 형사과장,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과장을 역임하며 지능·경제·사이버범죄 분야를 두루 경험했다. 경찰청 국수본이 출범한 이후 안보범죄수사과장을 맡아 산업기술 유출과 방산 비리 수사 역량 강화를 위해 힘썼다.
정 변호사는 경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광장 기업형사그룹에서 기업과 금융, 영업비밀, 산업안전 분야 등을 담당하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지난해만 최현 전 대전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해, 장우성 전 경찰청 외사국 총경, 황동길 전 경기남부경찰청 시흥경찰서 수사과장을 영입했다. 이어 올해도 수원남부경찰서 수사과 출신의 안무현 변호사 등 3명을 더 충원해 총 10명의 경찰 출신 전문가들이 포진해 경찰팀을 구성하고 있다.
태평양 형사 분야 총괄책임자인 이진한 변호사는 "최근 금융 분야의 형사 관련 분쟁이 증가 추세이며, 검경 수사권 조정 본격화를 앞두고 경찰 수사단계에 변호사의 조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관련 경험이 풍부한 검·경 출신 전문가를 고루 영입해 협업을 도모하며 더욱 입체적이고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화우는 중대재해사건 분야의 경찰 수사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경찰대 출신 김균민 변호사(38기)와 대구·부산지방경찰청장을 역임한 허영범 고문 등 전문 인력을 합류시켰다.
특히 올해 형사대응팀을 조직 개편하며 경찰수사대응팀도 신설했다. 12명 규모의 화우 경찰수사대응팀은 지난해 8월 영입한 허영범 전 부산경찰청장이 고문을 맡고 있다. 화우는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져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 공장 변압기 점검 중 감전돼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아낸 바 있다.
법무법인 율촌도 지난해 경찰수사대응팀을 새로 만들며 경찰 출신 변호사 3명을 영입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수사팀장 출신 최인석 변호사가 팀장을 맡고 있다.
여기에 권성국·허우영·강승완·이대식·김일동·김상영·김동훈 변호사 등이 경찰대 또는 경찰청 출신이다. 또한 경찰청 디지털포렌식팀에서 활동한 박정재 전 팀장이 전문위원으로 뒤를 받치고 있다.
이외에 법무법인 지평과 법무법인 동인 등도 경찰수사대응팀, 디지털포렌식대응팀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여러 경찰 출신 변호사들을 영입해 경찰 단계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전관예우 이은 전경예우 신조어 등장 우려
대형 로펌의 경찰 모시기가 과열되자, 이에 따른 부작용 우려도 나온다. 전·현직 판·검사들 사이에 형성된 '전관예우'가 ‘전경예우’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게 골자다. 경찰은 이미 현직 경찰관과 경찰 출신 변호사와의 사적 접촉을 금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경찰청 반부패협의회는 올해 6월 중·장기 반부패 추진계획(2021~2025년)을 발표하면서 접촉 제한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
아울러 법무부는 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특혜를 막기 위해 퇴직 후 출신 기관의 사건 수임 제한 기간을 기존 1년에서 최대 3년까지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법조 브로커 퇴출을 위해 일반 퇴직 공직자가 법무법인에 취업하면 변호사법상 ‘사무직원’으로 등록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로펌들의 경찰 출신 영입경쟁이 고위직과 저년차를 가리지 않자, 로스쿨에 경찰대 출신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사법시험준비생모임 등에 따르면 올해 경찰대 출신 로스쿨 신입생은 8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경찰대 입학 정원이 100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입학생의 약 80%가 로스쿨로 진입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