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입자물리학계 권위자로 통하는 한국인 여성 과학자가 백인 남성이 주류인 미국 물리학회(APS)를 이끈다. 한국인이 APS 지도부를 맡는 것은 이 학회가 설립된 1899년 이래 120여년 만에 처음이다.
최근 APS 회장단 선거에서 부회장으로 뽑힌 김영기 시카고대학교 물리학과 석좌교수 얘기다. 미국 시카고대는 지난 13일 학교 온라인뉴스로 "탁월한 실험 입자물리학자가 APS 회장단 직책을 맡는 9번째 시카고대 교수가 된다"라는 제목으로 김 교수의 APS 회장단 선거 당선 소식을 보도했다.
이 보도에서 김 교수는 "APS의 임무는 인류의 이익을 위해 물리학 지식을 증진·확산하고, 물리학을 진흥하고 더 넓은 물리학 공동체에 봉사하는 것"이라면서 "동료들의 신뢰와 이 뛰어난 학회를 위해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 점에 깊이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과학적 전문지식에 대한 대중의 외면과 같은 문제가 증폭됐고 개방적인 국제 과학 협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대중과 폭넓게 신뢰를 쌓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또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형평성·다양성·포용력 그리고 다양한 인재를 물리학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큰 숙제"라면서 "대유행 기간 정부 정책의 급변은 정부 지도자들과의 효과적인 소통을 촉진하기 위해 APS 회장단의 전향적이면서도 침착하고 냉정한 목소리가 중요함을 보여준다"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실험입자물리학자로서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입자(fundamental particles)'의 질량의 기원을 연구해 온 권위자다. 지난 2000년 1월 과학저널 디스커버에 '주목할 젊은 과학자 20인'에 선정돼 '충돌의 여왕(Collision Queen)'이란 별명과 함께 '실험입자물리학의 세계적 리더'로 소개됐다. 2004~2006년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페르미랩)에서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실험을 위한 850명 규모의 국제 연구자그룹인 'CDF'의 공동대표로서 입자 생성·소멸 검출기 제작, 실험운영, 데이터분석 등을 주도했다. 2006~2013년에는 페르미랩 부소장을 역임했다.
1962년 경북 경산 출생으로 고려대 물리학과 학부·석사, 미국 로체스터대 박사,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원, 버클리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직을 거쳐 2003년부터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APS는 1899년 설립돼 5만50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학회다. 공공·정부와 활발히 교류하고, 다수의 과학저널을 발간한다. 교육, 대중과의 교류, 언론홍보 등 광범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세계 물리학자들의 학술단체 가운데 독일 물리학회 다음으로 회원 규모가 크다. 미국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을 탄생시킨 산실이자 정부의 과학정책 자문과 입법부의 입법활동 등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으로는 물리학계 최상위다.
역대 APS 회장 가운데 알버트 마이켈슨(Albert A. Michelson, 1901년), 로버트 밀리컨(Robert Millikan, 1916년), 아서 컴튼(Arthur Holly Compton, 1934년),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1953년), 로버트 윌슨(Robert R. Wilson, 1985년), 리오 카다노프(Leo Kadanoff, 2007년), 마이클 터너(Michael Turner, 2013년) 등 7명이 시카고대 과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