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주주가 유상증자라도 해서 부도를 막았다면 어땠을까. 그것도 안 된다. 부실만 늘어가는 상황에서 대주주는 이미 자기 지분을 대부분 팔고 없었다. '무주공산(無主空山)' 신세가 된 것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주주들의 몫으로 남았다. 이 회사의 이름은 자안바이오다.
자안바이오는 원래 한솔그룹 계열의 한솔CNP라는 회사였다. 대주주는 한솔케미칼이었다. 모바일, IT 기기의 코팅재 등을 생산하는 IT 디바이스 코팅재 전문 업체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주요 고객사다.
하지만 지난해 두 차례의 최대주주 변경을 통해 매각이 진행됐다. 최종적인 회사의 주인은 안시찬 자안그룹 대표지만 그 과정이 복잡했다.
회사가 급격하게 부실해진 것은 그때부터다. 지난 2019년 기준 자안바이오는 자산 346억원, 매출 438억원, 영업이익 4억원, 순익 4억원 규모의 상장사였다. 영업활동으로 26억원 규모의 현금흐름을 발생시켰고 16억원 규모의 투자도 집행했다. 재무활동 현금흐름은 마이너스로 부채를 늘리기보다는 갚아나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회사 주인이 바뀐 뒤 이 수치는 급변한다. 2020년 자안바이오의 총자산 규모는 1187억원으로 증가한다. 회사가 성장한 게 아니다. 대부분은 부채가 증가한 수치다. 전년 92억원에 불과했던 부채가 1년 만에 550억원으로 늘었다. 돈은 잔뜩 빌렸지만 손익구조는 더 나빠졌다. 유형 자산 대부분은 이 과정에서 담보로 잡혔다. 매출은 163억원으로 전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결국 89억원 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당기순손실 규모는 133억원이다.
올해 상반기 실적은 더 참담하다. 매출은 제자리걸음인데 영업적자는 100억원을 넘었고 당기순손실 규모가 969억원이다.
이처럼 손실 규모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를 따져보니 황당하기만 하다. 자안바이오는 자안그룹 소속이 된 뒤 그룹에 브랜드 사용료로만 373억원이 넘는 비용을 썼다. 연간 매출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이해하기 힘든 수치지만 영업비용이긴 하다. 명분은 장사하기 위해 쓴 돈이란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영업외 손실이다. 자안바이오는 자안그룹의 전환사채 등에 투자해 284억원이 넘는 손상차손을 입었다. 자안그룹을 상대로 123억원 규모의 미지급금(받을 돈)도 있다. 결국 대주주의 다른 회사에 투자해 피해를 키운 것이다.
그렇다면 자안그룹 대표 안시찬씨는 이 사태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지고 있을까.
안 대표의 지분율은 지난해 5월 4일 30.19%였다. 지난해 내내 이 수준을 유지하다가 연말부터 지분을 담보로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 대출을 받아가며 지분을 꾸준히 줄인다. 이후 20% 수준의 지분율을 유지했다.
하지만 올해 7월부터는 적극적으로 보유 지분을 내다팔았다. 지난 7월 1일 하루 동안에만 50억원 넘는 규모의 지분을 장내에서 매도했다. 이날 하루에만 자안바이오 주가는 24%가 빠졌다. 일반 주주들은 쏟아지는 매물의 정체도 몰랐다.
안 대표는 7월 6일에도 20억원 규모의 주식을 장내에 매도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지분을 매도해 현재 안 대표의 자안바이오 지분율은 1.29%로 줄었다. 이제 대주주도 아닌 셈이다.
이 시기 자안그룹이 부도를 맞았다. 부도액수는 8억5000만원이다. 설상가상으로 안 대표는 구속까지 된다. 수출 규모를 부풀리고 매출을 허위로 작성하고 회사 자금도 횡령한 혐의다. 자안바이오에서 가져간 돈을 어디다가 썼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이제 받아내기도 어렵다. 사법당국의 수사로 밝혀질 영역이다.
7월 한 달 동안 안 대표가 자안바이오 지분을 팔아 챙긴 돈은 93억4500만원 규모다. 지분을 팔아 안 대표가 챙긴 돈의 행방은 모른다. 적어도 자안바이오의 부도를 막기 위해 쓰진 않았다. 자안그룹에 쓴 것도 아니다. 역시 사법당국의 수사가 필요하다.
그 결과 자안바이오는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한국거래소는 보통 부실해진 종목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해 다시 살아날 기회를 주곤 한다. 하지만 '최종부도'는 그런 게 없다. 곧바로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된다. 현재 자안바이오는 법원에 '상장폐지결정 등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상폐 절차를 잠깐 멈췄다. 하지만 법원이 이 신청을 인정해줄 가능성은 극히 적다.
이런 정보는 사실 깊은 취재의 영역도 아니다. 회사가 급격하게 부실해지는 과정은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이 관리하는 전자공시에 담겨 있다. 문제는 재무제표와 각종 숫자를 보기 힘든 투자자에게는 아직 이런 정보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최근 금감원은 전자공시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봤다. 하지만 여전히 공시는 너무 착한(?) 정보 위주다. 대주주의 지분 매각이나, 지분가치를 위협하는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둘러싼 권리관계 등 투자자가 조심해야 할 정보는 파악하기 힘들다. 반면 회사가 발표하는 각종 호재성 보도자료를 접하는 것은 너무 쉽다. 악재는 감추고 검증도 안 된 호재는 알리기 쉬운 것이 현재 우리의 주식시장이다.
이제 자안바이오의 피해는 개인 주주들의 몫으로 남았다. 안 대표에게 따지고 싶어도 그는 안전(?)하게 보호를 받는 중이다. 이 사태는 그나마 자안바이오 주주들의 희생으로 마무리가 될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자안그룹은 상장사가 하나 더 있다. 투자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