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인수합병(M&A) 엔진에 재시동을 걸었다. 최근 바이오기업 천랩을 인수하며 제약 시장에 다시 뛰어든 CJ그룹은 미디어 사업 강화를 위해 SM엔터테인먼트(SM) M&A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회장의 공격적인 M&A 행보는 2030년까지 3개 사업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오른다는 ‘2030 월드베스트 CJ’ 실현을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30일 투자은행(IB)업계와 재계에 따르면 CJ그룹은 최근 SM의 M&A에 집중하고 있다. SM은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100% 회사인 라이크기획을 흡수합병하고 이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18.72%와 기타 지분 5%가량 등 총 20% 이상 지분을 매각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괄 프로듀서가 보유한 지분 가치는 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프로듀싱 업무 등을 담당하는 라이크기획을 합병하고 기타 지분까지 더하면 매각가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오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8년 CJ헬스케어를 매각한 CJ제일제당은 지난달 천랩 인수를 통해 ‘신약개발’에 다시 진출했다. 30년간 육성한 제약·바이오 기업을 매각한 지 3년 만이다. 인수 금액은 983억원이다.
천랩은 2009년 설립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특화 기업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군집(microbiota)과 유전체(genome)의 합성어다. 인체 내 미생물 생태계를 다뤄 건강을 도모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다수 제약·바이오 기업이 마이크로바이옴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손꼽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CJ제일제당이 가진 미생물·균주·발효 기술에 천랩의 마이크로바이옴 정밀 분석·물질발굴 역량과 빅데이터를 접목, 차세대 신약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제약(레드 바이오) 분야의 천랩을 인수하며 3대 바이오 사업 포트폴리오를 모두 갖추게 됐다. CJ제일제당은 PHA(바이오플라스틱) 등 친환경 소재를 만드는 ‘화이트 바이오’, 아미노산 등 식품소재·첨가물을 만드는 ‘그린 바이오’ 사업을 진행해 왔다.
김정섭 신영증권 연구원은 “CJ제일제당의 천랩 인수로 기존 식품과 바이오 사업에서의 시장지배력 강화와 중장기 사업 동력 확보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 ‘신의 한수’ 된 슈완스 인수
CJ그룹의 M&A 재시동이 사업 확장의 새로운 전기가 될지 주목된다. 앞서 이 회장은 2018년 말 2조원을 들여 미국 냉동식품업체 슈완스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이 지나치게 높아 일각에서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실제로 CJ제일제당은 2019년 재무안정성이 급격히 악화되는 등 유동성 문제를 겪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19년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하고 CJ가 보유한 자산은 물론 계열사 등 매각을 통해 진화에 나섰다.하지만 작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 회장의 베팅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 가정간편식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이제 그룹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슈완스를 포함한 CJ제일제당의 미국 식품 매출은 2018년 3649억원에서 2020년 3조3286억원으로 무려 10배 신장했다. 올해 1분기에는 CJ제일제당 해외 매출의 절반 이상을 슈완스가 차지했을 정도다.
CJ그룹은 한동안 M&A 시장에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슈완스의 저주’를 풀어내며 자신감을 되찾은 CJ그룹이 천랩 인수를 필두로 M&A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의 경우도 그룹의 비상경영 선포 직전까지 국내외 물류사 M&A에 적극적이었다”며 “물류 계열사를 중심으로 한 M&A 작업에도 다시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은 2018년 2300억원을 투입해 미국 물류 기업 DSC로지스틱스를 인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