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일대 재건축 단지들이 안전진단 일정을 연기하며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현 정부가 정밀안전진단을 움켜쥐고 있는 한 통과 가능성이 낮은 만큼 내년 대선 이후를 노리겠다는 판단이다.
상계주공 3단지 재건축 추진모임은 지난 5월 말 노원구에 정밀안전진단을 신청하고 업체선정 입찰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최근 노원구에 취소 의사를 전달했다.
추진모임 관계자는 “정밀안전진단 업체선정 입찰 자체를 포기했다”며 “태릉우성 아파트가 60.90점으로 안전진단에서 고배를 마신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태릉우성이 C등급을 받은 것은 정밀안전진단이 객관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예비안전진단(현지조사)-정밀안전진단-적정성 검토 순으로 진행된다. 안전진단은 A~E등급으로 구분되고, A~C등급 유지·보수, D등급 조건부 재건축, E등급 재건축 확정 판정으로 나뉜다. 민간업체에서 수행한 안전진단에서 D등급이 나오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나 국토안전관리원의 적정성 검토를 통해 최종 통과 여부를 가린다.
문제는 적정성 검토 문턱에 걸려, 정밀안전진단을 다시 준비해야 하는 단지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들어서만 강동구 명일동 ‘고덕주공9단지’, 노원구 공릉동 ‘태릉우성’, 양천구 목동 ‘목동11단지’가 적정성 검토 단계에서 최종 탈락했다.
더구나 재건축 단지들을 중심으로 적정성 검토가 객관적 기준이 아닌 정책적 판단 하에 이뤄지고 있다는 불만이 많다. 정밀안전진단을 준비 중이던 노원구 일대 단지들은 “정부가 태릉우성 사례를 통해 노원구 재건축 아파트는 정밀안전진단에서 무조건 탈락시키겠다는 본때를 보여준 것”이라는 말이 돈다. 무엇보다 구조안전성 점수가 높게 나온 점을 두고 “불합리하다”,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실제 강동구는 지난 6월 ‘명일동 고덕주공9단지’ 재건축 정밀안전 적정성 검토 결과(유지보수, C등급)에 대해 이를 검토한 공공기관인 국토안전관리원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적정성 검토 결과(62.70점, C등급)가 1차 안전진단(51.29점, D등급)보다 무려 10점이나 넘게 올라서다.
‘상계주공6단지’도 적정성 검토 진행을 최근 보류하기로 했다. 지난 3월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하계장미’도 속도 조절을 고심 중이다.
더구나 내년 대선이 치러지는 등 정치적 변화가 예고된 점도 안전진단 속도 조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4월 국토교통부에 재건축 안전진단 요건 완화를 요구한 점 등에 비춰 내년에는 변화가 이뤄지지 않겠냐는 기대감이다.
상계주공 3단지 관계자는 “향후 구조안전성 비율을 낮추는 내용 등의 법안이 개정됐을 때 이미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들까지 변화된 법을 소급적용해줄지도 의문”이라며 “내년 대선까지는 무조건 연기하는 게 옳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