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비이성적으로 커진 자산거품, 세계경제 뇌관 터지나?

2021-06-2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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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금리인상 초읽기?

 

 





2013년 노벨상 경제학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75) 예일대 금융학 교수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스티븐 로치 전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함께 미국 월가에서 3대 비관론자(perma-bear)로 꼽힌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저서 <비이성적 과열' (irrational exuberance>이 2000년 3월 초판이 나온 그달부터 주가 폭락이 시작되고 '닷컴 버블'이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맛보았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 서비스가 본격 확산되기 전인데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중소형 IT 기업들로 '묻지마'식 자금이 몰려와 별다른 호재도 없이 주가는 상한가를 치곤 했다. 주식이 폭락하자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었다. 2년반 동안 나스닥 지수는 78% 하락했다. 미국의 '닷컴버블'과 커플링 된 한국의 코스닥도 마찬가지였다. 1996년 출범한 코스닥은 4년도 안된 2000년 3월 10일 역사적 최고가 (2925.50)를 찍고나선 나스닥처럼 가파른 내리막길로 향했다. 돈을 날린 사람들은 엄청난 버블이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들이 버블 안에 갇혀 환호하고 있었음을 실감했다.

당시 많은 증시 애널리스트들은 새로운 잣대로 주식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름도 생소한 IT기업들이 실제로 매출이나 이익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PER(주가수익비율)이 단기간에 수십배가 뛰었다. 투자가들은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이 가져온 혁명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라며 흥분하고 들떠 있었다. 4년이 넘는 주식의 랠리 기간 앨런 그린스펀과 그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시장의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어떤 특단의 조치도 내놓지 않았다. 사실 그린스펀은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용어를 1996년 12월의 어느 연설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러나 시장의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통화긴축에 나설 것 이라는 어떤 암시도 없었다. 그는 오히려 "금융버블의 붕괴가 실물경제, 생산, 일자리, 그리고 물가안정을 해칠 위험이 있는지 우린 우려할 필요가 없다"며 시장을 안심시켰다. 투자가들은 연준이 실물경제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주가폭락을 그대로 방관하지 않고 행동에 나설 것으로 믿었다. 당시 그린스펀이 연준의장으로 있는 것이 주식시장 하락으로부터 보호받는 풋옵션을 가진다는 의미의,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이라는 말이 대유행했던 배경이다. 2000년 연준이 마침내 과열을 우려해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고 금리를 인상하자 주식시장은 급격한 내리막길로 향했다. 2001년 발생한 9·11테러까지 더해지면서 세계 경제는 공포에 빠졌다.  

주가 대폭락을 목격한 실러는 2005년에 '비이성적 과열'의 개정판을 출간했다. 여기엔 '집값 거품'에 대한 분석과 경고가 첨가됐다. 이후 공교롭게도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발생해 집값과 주식이 동반 급락했다. 그는 미국의 주택가격 동향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지표로 활용되고 있는 '케이스-실러 지수'를 고안한 경제학계의 거물이다. 아무리 권위있는 경제학자라의 경고라고 해도 한권의 책이 시장의 버블을 한방에 터뜨렸다고 말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되기전 인 '거품경제' 시절의 시장 상황, 특히 투자가들의 심리적인 측면을 지금 다시 살펴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지금 미국과 우리나라를 포함 전세계 주요국에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동시에 치솟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자산거품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빚내서 투자하거나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빚끌' 영끌' 현상은 수그러들지 않는 모습이다. 2030세대를 비롯 많은 투자자들은 오히려 집단본능에 휩쓸리며 거품은 갈수록 팽창되고 있다. 미국 연준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후 최대 규모의 돈을 찍어냈다. 지난 6일 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연준은 일부 자산 가격의 거품을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강한 어조로 경고했지만 금융시장은 발작(tantrum) 없이 전반적으로 평온했다. 연준이 자산거품 제거를 위해 선제적 금리인상이나 자산매입축소(태이퍼링) 등의 카드를 쉽사리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장의 믿음 때문이다. 

‘비이성적 과열'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서 '투기적 버블'이 형성되거나 사라지는 요인을 역사적인 사례에 기초해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한 실러 교수의 역작이다. 행동경제학의 대가로 꼽히는 그는 이 책에서 경제학을 사회적 심리학과 결합시켜 자산시장을 정밀 분석한다. 특히 '버블'이 나타날 때 시장의 특징은 대중의 상상력이나 심리변화가 크게 작용을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최근 이 책을 다시 한번 펼쳐 보니, 다음과 같은 대목이 특히 눈에 띈다.

"버블 시기에 오랫동안 가격이 상승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을 끊임없이 재평가한다. 버블이었다고 생각하고 가격이 너무 높다고 여겼던 사람들은 이전의 평가에 의문을 던지고, 펀더멘털이 가격상승을 일으켰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은 몇몇 전문가들이 버블이라고 진단한 후에도 가격 상승이 수년 동안 지속되면 아마도 전문가들이 틀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가격상승을 일으킨 것이 정말 펀더멘털이 맞다고 생각하고, 이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서 기술주가 고점에서 50% 이상 하락한 2000년말에 한 여성과 그녀의 남편과 이침을 먹었던 기억을 소개한다. "가족을 위해 투자를 시작했다는 그녀는 1990년대에는 자신이 천재인 줄 알았다고 했고, 그말에 남편도 동조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존감은 박살나고, 시장에 대한 인식은 모두 환상이고 꿈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몇몇 사람들은 주식시장 하락에 매우 심각한 심리적 반응을 보였지만, 집단적인 열광은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여전히 주식시장이나 주택시장이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과신하는데...이들 시장의 추가적인 상승은 결국 더 큰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러는 1990년대 주식호황 시기의 기업 분위기를 서부개척시대 '골드러시'에 비교한다. 주가 고공행진 속에서 기업들은 사업결정을 왜곡하고, 기업에 윤리적 기준은 쇠퇴했다. 주식시장 급상승은 세수확대로 이어지고, 정부는 지출 증가를 억제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다 주식이 폭락하자, 경제가 침체됨은 물론 많은 국가들은 심각한 재정적자에 허덕인다.

실러는 저서에서 1990년대 후반 이후 나타난 부동산 시장의 급등은 신비롭기도 하고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인구증가나 토지부족이 주택가격을 상승시킨다? 미국은 토지가 전혀 부족한 나라가 아니고 인구도 오랜기간 완만히 증가할 뿐이다. 건축 자재에 대한 수요증가 때문? 장기적인 추세를 분석해 보니 수요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다. 세계적인 금리인하 움직임 때문? 저금리가 주택가격 상승의 주요 요인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역사적으로 볼 때 중앙은행이 금리인하를 한 적이 많지만, 1990년대 후반처럼 미 전역에서 일제히 부동산 호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주식시장 호황 때문? 주식시장과 주택 시장은 별도로 움직인다. 1920년대 미국의 주택시장은 주가 급등에 필적할 상승이 나타나지 않았다. 1929년 대공황 직후 주택시장은 폭락장세이던 주식시장을 추종하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이전 미국에서 주택가격이 급등한 적은 단 한번 있었다. 2차대전 직후다. 그러나 이때에도 '투기적 과열'이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았다. 남들보다 먼저 주택을 살려는 '패닉바잉' (panic buying) 이야기도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1997년 이후 집값의 상승액은 봉급에서 저축한 금액을 훨씬 초과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대중들은 주택가격의 장기적인 안정성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한다. 주택구매가 자산가치를 급속하게 증가시키면서 미래를 위해 한푼 두푼 열심히 모아 저축하는 습관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일반 사람들은 꾸준히 저축을 하다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주택을 구매했다. 그런데 주택시장에도 투기적 요소가 침투하면서 우리의 삶도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실러는 진단했다. 아무튼 한두 가지 설명만으로 주택시장 움직임을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한가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본격 확산되기 시작하던 작년 초 경제활동 제한과 심각한 실업사태로 대부분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집값의 폭락을 예상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자가 늘어나면  주택모기지론 상환을 하지 못하는 거주자가 늘어나고 2채의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한채를 팔아 현금을 확보할 것으로 내다보았지만 그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1930년대 대공황 이래 가장 심각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역의 주요도시 주택 가격은 솟구쳤다. 미국뿐 아니다. 한국, 중국, 독일, 영국, 페루, 뉴질랜드...세계 곳곳에서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팬데믹이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긴 셈이다. 지난해 록다운 초기에 나타난 '화장지 사재기 열풍'처럼 '집사기 열풍'이 불게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고삐 풀린 주택가격 붕괴직전? 

최근 들어 다시 미국의 자산시장 거품론을 부르짖는 실러 교수는 특히 집값이 가장 과열되었다고 주장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3월 전국주택가격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3.2% 급등했다. 15년 3개월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5월 기존 주택 매매가격의 중위 가격은 전년 동월대비 23.6% 상승한 35만300달러(약 4억원)로 역사상 최고가를 매달 경신중이다.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에서 재정이 풀리고 금리가 대폭 낮아진데다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복잡한 도심 아파트에서 넓은 교외주택으로 이동하려는 수요를 자극한 것이 주요 요인이다. 실러 교수는 지난달 23일 CNBC에서 "지난 100여년간 데이터를 보더라도 주택 가격이 이렇게 높았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주택 가격이 붕괴하기 2년 전인 2003년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물론 세계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은 주택 가격 급등에 우려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지난해와 달리 고삐 풀린 주택 가격이 쉽게 조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왜냐면 백신 보급으로 경제봉쇄가 풀리면서 세계 경제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로금리 수준으로 내려간 금리는 주택가격의 가장 큰 버팀목이다. 인플레이션 상승을 어느 정도 선까지는 허용하고 경제회복에 우선을 두며 최대한 금리인상을 늦춘다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입장이 돌변하지 않는다면 주택시장의 거품은 꺼지지 않고 적어도 1~2년은 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탄탄한 경제 성장이 견인한 과거 호황기 때 연준은 금리를 올려 거품을 터뜨리는 역할을 자임한 반면, 현재는 아예 '저금리가 자산 거품을 키운다'는 개념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지난 22일 의회 청문회에 나와 조기 금리인상에 선을 그으며 시장을 다시 한번 달랬다.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무서워 금리를 너무 빨리 올리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의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자산거품이라는 게 경기 호황 때에만 나타났다. 지금은 경기침체인데도 더욱 활개를 친다. 최근엔 자산가격 급등에 이어 세계경제의 회복국면으로 국제 원자재와 소비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나타나거나 저금리와 유동성 팽창이 자산시장 거품만 계속 키울 것이라고 판단되면 연준이든 한국은행이든 돈줄을 서둘러서 죌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미국발 금리인상에 대한 우려로 신흥국들은 벌써부터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며 통화긴축에 나서고 있다. 내년도 대선을  앞두고 우리 정부는 재정을 더욱 풀어댈 태세이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말 소득대비 주택 가격비율이 전년대비 13%나 올랐다. 가계부채도 지난 한해 150조원이나 불어나 비상이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을 흡수할 방법은 결국 금리인상이다. 금리인상은 너무 서둘러서도 안되지만 이리저리 눈치보다 실기하면 기업과 국민들의 고통만 커진다. 이런 가운데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가 '연내' 금리정상화에 나설 것이라고 사실상 단언한 것은 시장에 대한 백신접종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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