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한 청년이 일방적으로 맞고 있거나, 늦은 밤 여성이 봉변을 당하는 걸 볼 때 당신은 어떻게 할까.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칠까.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건 의무인가, 선의인가. 과연 법은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이런 논란은 시대에 따라, 구체적인 상황과 사람에 따라, 나라마다 다 다르다. 그럼에도 과거에 비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개념이 크게 줄어들면서 타인의 피해에 대한 무관심이 커졌다. 날로 커지고 있다. 선의(善意
)로 경찰, 소방서 등에 신고하거나 도움을 줬을 때 내가 도리어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이를 둘러싼 논란, 판결이 눈에 확 들어왔다.
#1. 지난 5월말 ‘성폭행당하는 여자 무시하고 지나갔는데 경찰에서 조사 전화 왔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한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왔다.
익명의 글쓴이가 적은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두 달 전 주말에 길 가고 있는데 남자가 차 안쪽에서 여자를 강간하려 하면서 폭행하고 있었다. 난 휘말리기 싫어서 갈 길 갔다. 물론 그 상황은 내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하지만) 성폭행 당하는 사람 도와줬다가 되레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냥 무시하고 달려서 지나갔다. 이후 피해 여자가 가해자를 신고하면서 나를 목격자로 이야기한 것 같다. 주변 CCTV 추적하고 신용카드 내역 추적해 지난주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경찰이 목격자인데 왜 신고 안 했는지, 그 당시 기억나는지, 참고인으로 좀 와줄 수 있는지 등을 물어봤다. 난 (참고인 출석) 싫다고 전화 끊었는데 이게 법적으로 강제성이나 불이익이 있나? 계속 전화 오는데 무시 중이다. 휘말리기 싫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을 통해 이 글이 퍼지면서 남녀, 세대 간 팽팽한 찬반양론이 일었다.
#2. 공교롭게도 음식점 화장실에서 여성을 부축하다 성추행범으로 몰려 검찰이 기소, 법정에 선 남성 얘기가 뒤이어 나왔다. 지난 8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대전지방법원 형사8단독 차주희 부장판사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정황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A씨는 2020년 봄 대전 한 식당 화장실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 온 여성 B씨가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자 B씨에게 먼저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양보했다.(남녀공용 화장실로 추정)
이어 B씨가 문을 닫지 않고 안에서 구토한 뒤 밖으로 나오다 자리에 주저앉자, A씨는 그를 일으켜 세워줬다. 이 과정에서 B씨는 “A씨가 정면에서 신체 일부를 만졌다”고 주장하며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경찰 조사를 받았고, 이후 검찰은 그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A씨는 내내 “B씨가 넘어질 때 아무 생각 없이 일으켜 준 것”이라며 억울해 했다.
연합뉴스 기사는 무죄 선고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이 사건을 다룬 차주희 부장판사는 폐쇄회로(CC)TV 녹화 영상 등의 증거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B씨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B씨 설명이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일관되지 않은 데다 화장실 구조 등 정황상 A씨가 '정면에서 신체를 만졌다'고 볼 만한 근거를 찾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B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니 돌아가 달라"고 했다가, 1시간여 뒤 지구대에 직접 찾아가 피해를 호소한 경위도 부자연스럽다고 봤다.
차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B씨를 부축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신체 일부가 닿았는데, B씨 입장에서는 일부러 추행했다고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이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갔을 때 뒤집힐 수도 있지만 일단 사건을 처음으로 판단한 1심 판사는 "이 남자 죄 없음"이라고 했다.
‘실체적 진실’은 법원이 밝혀내야 할 문제지만 이 건은 A,B씨 제 각각 다른 기억, 나만의 느낌, 배려, 양심, 불쾌, 남혐, 여혐 등이 다 뒤섞인 사건이다. 1심 결과만 놓고 보면 선의를 베푼 사람이 가해자가 된 경우다.
A씨처럼 생면부지, 모르는 여성을 도와주려다 오히려 가해자로 몰린 경우는 적지 않다. 커플 싸움을 말리려다 강제추행범으로 몰린 30대 남성, 버스 안에서 여고생 허벅지 멍자국을 발견했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린 50대 남성 등의 사례도 있었다.
#3. ‘착한 사마리안법’ 필요성이 제기된 5년 전 사건을 기억하는지.
2016년 8월 25일 대선 서구에서 승객을 태우고 가던 당시 63세 택시기사가 갑자기 온 심장마비에 의식을 잃고 앞차를 들이받았다. 그러자 택시 승객인 남성이 내리더니 트렁크에서 골프백을 꺼내 일행인 여성과 함께 다른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119에 신고해 병원에 이송했지만 택시기사는 결국 사망했다.
‘골프백 남녀’는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들을 처벌할 법적인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나온 얘기가 ‘착한 사마리안(사마리아인) 법’이었다.
이 법은 공동번역 성서 중 <루가 복음 10장>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안(good samaritan) 구절에서 비롯됐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한 예수에게 ‘꼰대’ 율법학자가 “이웃이 누구?”라고 묻자 예수가 한 답이 바로 착한 사마리안이다.
지금 세상, 한국 상황을 대입해 착한 사마리안 ‘가상 스토리’를 다시 만든다면 이 정도 일 듯싶다.(직업, 지명, 국가는 예시)
“한 중년 남성이 서울 서초동 서리풀공원에서 강도를 당해 길에서 죽어가고 있다. 정치인, 판검사, 변호사, 교수, 목사가 다 지나쳤다. 그러나 한국에 출장 온 방글라데시 사업가가 이 피투성이 한국인을 발견해 자기 차에 태우고 병원을 데려간다. 그는 병원비를 내고 부족하면 연락하라고 자기 전화번호도 적어둔다…”
만약 이런 가상 사건을 전제로 ‘착한 방글라데시인 법’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온다면 그건 오해를 부를 만한 작명(作名)이다. 사실 착한 사마리안 법 역시 그렇다.
이 법은 착한 일을 하지 않은 이들을 벌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상식사전은 착한 사마리안 법을 “자신에게 특별한 부담이나 피해가 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고도 구조에 나서지 않는 경우에 처벌하는 법”이라고 정의한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착한 사마리안법’을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14개국, 미국은 50개 주(洲) 중에서 30여 개의 주에 유사한 법을 적용한다.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 역시 엄격한 법을 시행 중이다.
프랑스는 응급구조 불이행 시 3개월 이상 5년 이하 징역 혹은 9000만원 정도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경우 1년 이하 징역을, 러시아와 북한은 일정 기간 징계 노동을 부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도 지난 19대, 20대 국회(현재는 21대 국회)에서 논의를 한 적이 있다. 특히 위 ‘골프백 남녀’ 사건 직후 당시 새누리당 박성중 의원은 이런 내용을 담아 응급구조 관련 법, 의무불이행죄 등 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최종 통과는 되지 못했다. 선의(善意)를 법으로 강제하고 의무화하는 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더 힘을 얻었다. 모르는 타인을 위해 내 자유를 희생하고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에너지를 쓰는 걸 법적으로 강제한다? 틀린 의문은 아니다.
이런 법을 만들어 성폭행 현장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에게 보상해 주는 거다. 경찰 조사, 법정 진술 등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 등을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이다. 좋은 일을 하는 착한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찾기 힘든, 멸종 위기에 처한 착한 사마리안을 되살리는 법이 필요하다.
*이 칼럼은 유튜브, 네이버TV에 주1회 방송하는 '아주3D', 팟빵 ‘닥치고 3D’와 함께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