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기록에도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등을 달아주는 일을 빠트리지 않았다. 특히 잉어등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바램을 담은 것이다. 잉어가 힘차게 물을 거슬러 올라가 폭포관문을 통과하면서 용이 된다는 ‘등용문’ 이야기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쓰시마(對馬島)에 들렀을 때 초등학교 운동장과 병설 유치원 건물에서 하늘 높이 힘차게 흔들리는 잉어모양의 연(鳶)을 더러 만나곤 했다. 가이드가 설명했던 등용문 스토리에 대한 기억이 새삼스럽다.
서거정(1420~1488)이 한양10경을 노래한 시 가운데 ‘종로거리의 관등(觀燈 등 즐기기)’에도 어린이들의 모습을 빼놓지 않았다. “동쪽거리와 서편 시장가 모두 대낮같은데 아이들이 뛰는 것이 꼬리 긴 원숭이보다 빠르네(兒童狂走疾於貁)“라고 하면서 어린이들이 연등축제의 또다른 주인공임을 알려준다. 설이나 추석처럼 사월초파일에도 때때옷을 입혔다. 어린아이에게 설빔 추석빔처럼 ‘초파일빔’으로 지금의 어린이날처럼 대접했던 것이다. 그날 색동옷을 입은 남녀 어린이들로 거리가 형형색색 꽃밭을 이루었다고 한다.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이 어린이날을 5월로 정한 것도 아마 등불놀이 나온 아이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천도교 회관 마당에는 어린이날 제정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울만큼 의미있는 날이 되었다. 돌비석에 조명이 더해지면 그대로 석등이 된다.
어린이라고 해서 마냥 수동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적극적 능동성에 대하여 성현(1439~1504)은 ‘용재총화’에서 “아이들이 종이를 오려 깃발을 만들어... 떼를 지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등불 만드는 도구를 모으는 호기(呼旗)놀이를 했다”고 기록했다. 부모가 달아주는 등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등을 만들기 위하여 직접 등 재료와 필요한 비용을 모금하는 어른스러움도 함께 갖추었던 것이다.
근대 우편업무를 시작한 사적지인 우정국 앞쪽에 솟대처럼 세워놓은 수많은 등간(燈竿 등을 단 기둥)도 이채롭다. 홍석모(1781~1857)가 정리한 ‘동국세시기’에는 “등간에는 자녀 숫자대로 등을 달아 주위를 밝히면 길(吉)하다”고 했다. 경쟁하듯 남들보다 높이 달려고 애를 썼다는 조상들의 자식사랑 흔적이기도 하다. 그 자식들은 색동옷 차림의 연꽃동녀 초롱동자가 되어 불교중앙박물관 입구에서 오가는 이들에게 천진불의 미소를 날리며 서있다. 조계사 일주문 앞 룸비니 동산은 아기부처님 모습과 어머니 마야부인을 형용한 명품 등 때문에 인증샷의 명소가 되었다.
어쨋거나 연등투어의 백미는 조계사 마당이다. 넓은 마당에 색색의 팔각등 수만개가 아예 하늘을 가렸다. 등불로 지붕을 만든 거대한 텐트처럼 보인다. 땅은 물론 하늘까지 ‘희망과 치유’의 빛을 밝히고 있다. 이제 코로나19가 마무리되면 연등축제는 예전처럼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 5월관광의 으뜸자리를 되찾게 될 것이다.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