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공산당 풀뿌리 일꾼들이 흔들린다

2021-05-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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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촌장' 뇌물사범 추락 사회적 파장

젊은간부 부정부패 연소화·지능화 추세

온라인 게임·도박 빠져 십수억원 빼돌려

감시망 피하려 택배로 뇌물받는 치밀함

휘청이는 기층조직, 기로에 선 中공산당

석사 출신의 촌민위원회 주임으로 주목을 받다가 뇌물 사범으로 전락한 예룽룽(가운데). [사진=핑난현 공청단 SNS 캡처]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 석사 출신 촌장이 부임 2년 만에 죄수로 전락했다."

중국 공산당원과 관료들의 부정부패 및 위법 행위를 감찰하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앙기율위)가 지난달 24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의 내용이다.
주인공은 푸젠성 닝더시 핑난현 링샤향 푸주촌 촌민위원회의 예룽룽(葉榮榕) 주임이다.

촌민위원회는 농촌 지역의 자치 조직으로 도시의 주민위원회와 더불어 중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의사결정 기구다.

푸젠농림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귀농해 농촌 진흥 사업에 투신한 예룽룽 주임은 중국 공산당 내 청년 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까지 나서 극찬한 '탈빈곤 전사'였다.

2018~2019년 각종 관영 매체에 소개되며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지만 이후 뇌물수수 의혹에 휩싸이며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사건의 파장은 간단치 않다. 최근 수년간 급증하고 있는 20~30대 하급 간부들의 부정부패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에 중독돼 공금을 빼돌리거나, 감찰 기관의 눈을 속이기 위해 택배로 뇌물을 받는 등 도덕적 해이가 선을 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젊은 간부들의 경우 공산당에 대한 경외심이 예전만 못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성장한 탓에 사치 풍조가 만연해 있다는 우려도 크다.

웨이창둥(魏昌東) 상하이사회과학원 염정법치센터 주임은 "부패는 연령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며 "어떤 연령이든 권력을 행사하면 부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타 촌장'으로 불렸던 예룽룽(왼쪽 첫째)은 부임 직후부터 뇌물을 받고 공사권을 넘기는 등의 비리를 일삼았다. [사진=핑난현 공청단 SNS 캡처 ]


◆하루아침에 파렴치한 된 스타 촌장

"일반인이 볼 때 주링허우는 경박하고 미숙한 세대다. 하지만 닝더시 핑난현 링샤향 푸주촌에서 새로 당선된 촌민위원회 주임은 이 단어(주링허우)에 새로운 정의를 부여했다."

2018년 11월 공청단 홈페이지에 소개된 예룽룽에 대한 묘사다.

1992년생인 그는 26세 때이던 2018년 8월 주민 투표를 거쳐 고향인 푸주촌 촌민위원회 주임으로 당선됐다.

'닝더시에서 가장 학력이 높은 농촌 주임', '주링허우 스타 촌장' 등의 수식이 따라붙었다.

대학 재학 시절에는 농민들에게 해충 박멸법을 전수해 눈길을 끌었고, 귀농 전까지 7년간 교량 건설이나 농촌 아동 교육 지원 사업 등도 벌였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농촌 사람이고 농업을 공부했다. 이제 다시 농촌으로 돌아와 배운 것을 실제로 활용할 뿐"이라고 말했다.

공청단과 관영 매체는 '농촌 진흥의 역군', '삼농(농업·농민·농촌) 사업을 위한 인재' 등으로 포장해 치켜세웠다.

하지만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초심을 잃기 시작했다. 2018년 말부터 대학 후배인 장(張)모씨, 고등학교 동창인 천(陳)모씨 등의 명의로 회사를 설립해 마을 내 다양한 공사의 발주와 시공자 선정을 독점했다.

공사 비용의 20% 정도를 수고비나 사례비 등으로 챙겼고, 따로 뇌물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7월 핑난현 기율위가 기명 제보를 받고 조사에 착수했다. 같은 해 9월 예룽룽은 사기·협박 등 혐의로 구속됐고, 12월에는 당적이 박탈됐다.

당국은 그의 뇌물수수 규모를 21만5800위안(약 3800만원)으로 확정했다.

중앙기율위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예룽룽과 공범 장씨는 조사 과정에서 위법 행위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다"며 "두 명의 주링허우 석사 출신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임무를 나눠 뇌물을 받아 챙겼다"고 비난했다.

이어 "그들은 스스로의 높은 지능을 십분 발휘하고도 기율과 법률에 문외한인 것처럼 가장했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으로 예룽룽 외에도 5명의 푸주촌 촌민위원회 간부가 처벌을 받았다.
 

중국에서 택배로 뇌물을 주고받는 행태가 횡행한다는 내용의 만평. [사진=바이두 ]


◆부정부패 지능화·연소화…모럴해저드 극심

예룽룽은 3800만원 안팎에 불과한 뇌물 때문에 탈빈곤 전사에서 농민들을 등친 파렴치한으로 전락했다.

젊은 나이에 지능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게 하급 간부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부정부패의 특징이다.

지난 2월 중앙기율위가 발간한 부정부패 사례집 '중국기검감찰잡지'에 따르면 항저우시 위항구 시민센터의 20대 창구 직원 톈치하오(田琦浩)는 11개월 만에 595만 위안(약 10억3700만원)의 세금을 착복했다.

장시성 상유현에서 빈곤퇴치 업무를 담당하던 1994년생 중간 간부 쩌우(鄒)씨는 빈곤층 22명의 자료를 거짓 보고해 53만 위안의 보조금을 가로챘는데, 면직 당시 그의 나이는 24세에 불과했다.

지난 4월 중앙기율위는 '부패 연소화'를 경고하는 글에서 "젊은 간부들의 청렴결백함은 당과 국가 사업의 미래와 직접적으로 관계돼 있다"며 "부패 연소화 현상에 대해 반드시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신문주간은 시베이공대 마르크스주의학원의 첸저우웨이(錢周偉) 박사가 발표한 논문을 인용해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출생)와 주링허우 간부들은 젊고 고학력이며, 직급이 낮은 대신 권력은 큰 게 특징"이라며 "경력이 짧은데도 (부패) 액수가 크고 범행 수법이 지능적이고 극단적"이라고 밝혔다.

또 "다양한 전자 기기를 익숙하게 다룰 수 있어 정보 위·변조와 훼손 등에 능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언론에 자주 회자되는 건 택배로 뇌물을 주고받는 수법이다. 감찰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서다.

중앙기율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규율을 위반해 뇌물을 받았다가 처벌된 사안은 1만5746건으로 전년 대비 20.2% 증가했다.

특히 택배나 온라인 금융을 통해 뇌물을 수수하는 건에 대한 단속이 늘고 있는 추세다.

관영 주간지 랴오왕(瞭望)은 지난 3일 관련 사례들을 고발했다.

산둥성 칭다오시 라오산구 자연자원국 소속 회계사인 후이(惠)모씨는 2019년 9월 택배로 고작 2000위안(약 35만원)짜리 선불 카드를 받았다가 적발돼 직급이 강등됐다. 청탁을 받고 입찰 과정에서 혜택을 제공한 대가였다.

지린성 쑹위안시 농업첨단기술구 관리위원회의 사오(邵)모 주임은 4년에 걸쳐 8만 위안어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7월 재판에서 징역형을 받았다. 뇌물은 택배로 건네졌다.

베이징 소식통은 "거리가 멀고 직접 대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택배가 가장 간편한 뇌물 전달 수단이 되는 것 같다"며 "택배는 누구나 이용하기 때문에 간부의 사무실이나 자택에 택배를 보내도 별 의심을 받지 않는다"고 전했다.

쾅원보(匡文波) 인민대 교수도 랴오왕에 "택배 겉포장만 보면 직접 산 건지, 가족이 구매한 건지, 다른 사람이 보낸 건지 판단하기가 어렵다"며 "개인정보 보호도 강화되면서 택배는 뇌물을 주고받는 양측에게 이중 보호막을 제공한다"고 꼬집었다.

◆"경외심 낮고 유혹에 취약하다"

저장성 닝보시 전하이구 자오취안가도(街道·동) 경제발전서비스센터의 장위(張裕) 부주임은 촉망 받는 젊은 간부였다.

28세에 부주임으로 승진하며 "가장 젊은 중간 간부"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의 인생이 수렁에 빠진 건 온라인 게임 때문이다. 이른바 게임 머니를 마련하기 위해 18만 위안의 뇌물을 수수했다.

광시좡족자치구에서는 한술 더 뜬 인물이 출현했다. 류저우시 루자이현 위생계획생육국 출납원이던 양광시(楊光曦)는 900만 위안이 넘는 공금을 유용해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가 공금에 손을 댄 건 온라인 도박에 중독되면서부터다. 도박으로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재무 담당자의 서명과 도장을 위조하는 식으로 94회에 걸쳐 공금을 빼돌렸다.

펑신린(彭新林) 베이징사범대 국제반부패교육연구센터 주임은 "주링허우가 처음 직장에 들어오면 수많은 외부 유혹에 직면하게 된다"며 "(젊은 간부들은) 40대 이상과 비교해 소비에 더 신경을 쓰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당과 조직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이 과거에 비해 희석되고, 갈수록 배금주의가 만연하는 것도 부정부패가 늘어난 원인으로 꼽힌다.

웨이창둥 주임은 "25세의 젊은이가 권력에 가까워지고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 심리적 균형을 잃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며 "법률과 기강에 대한 경외심도 결핍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8년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층 간부 중 51%가 '업무에 열정이 없다'거나 '열정 수준이 평범하다'고 답했다.

재산권 등에 대한 제약이 심하다는 응답자가 72.89%에 달했고, 미래가 불안하다는 응답자는 43.47%였다.

반면 일반 시민의 47.7%는 기층 간부에 대해 '업무에 불성실하고 민심을 헤아리지 않는다'고 느꼈고, 39.1%는 '부패와 권익 침해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중국 공산당은 중앙을 지방이 받치고, 지방을 기층 조직이 받치는 일사불란한 피라미드 체제로 100년을 버텨 왔다. 새로운 100년의 문턱에 선 공산당은 흔들리는 풀뿌리 일꾼들을 다잡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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