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가격은 그동안 폭등과 폭락을 거듭했다. 최근 1비트코인은 5만 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를 비트코인으로도 살 수 있게 하면서 4만 달러 미만인 모델3는 1비트코인으로 충분하다.
암호화폐는 투기며 사기라는 주장도 여전하다. '1비트코인=5만 달러'라는 것이 통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어서다. 그렇다고 이상한(?) 이 가상의 물건이 어느 한순간 훅 꺼져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각국 중앙은행이 암호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발행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면, 뭔가 있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적이다.
최근 우리 정치권과 금융위원회의 관련 발언들에 시시콜콜 뛰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이대남(20대 남자)에 참패한 집권 여당의 돌변한 암호화폐 옹호론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정치적 행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코인 가격에 눈치 없이 과격한 메시지를 쏟아낸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정무 감각을 탓할 뿐이다.
◆플랫폼 전성시대? 지는 해?
지금은 누구나 알듯이 플랫폼의 시대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네이버와 카카오는 물론 구글과 애플, 아마존, 미국 주식시장에 나가 100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쿠팡도 플랫폼 비즈니스다. 국내에서 수많은 라이더(Rider)를 이끄는 배달의민족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공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배달 아르바이트도 마찬가지다.
이들 회사는 많은 양의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만들어낸다. 데이터 추출 기법이 발달하고 통신 환경이 빨라지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분류하고 최적화할 수 있게 됐다. 마케팅 타깃이 정교해지면서 비즈니스의 새 길도 열렸다. 고객 데이터가 모든 것의 근원이다. 그것이 없다면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플랫폼이기도 하다.
1년 넘게 신경전을 벌이는 구글·애플과 페이스북을 비롯한 광고업계의 갈등이 이런 단면을 잘 보여준다. 디바이스(device) 운영시스템인 구글과 애플이 축적된 이용자의 사용 이력(유저 트래킹)을 페이스북에 주지 않겠다고 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페이스북은 이 유저 트래킹을 활용해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는데, 이것이 없으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악어와 악어새 같던 이들의 관계가 갑(구글·애플)과 을(페북·트위터)로 재편된 건 미국의 반독점 조사와 유럽의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에 따른 후폭풍이다. 페북은 애플과 구글을 '빅 브러더(big brother·독재자)라고 맹비난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 수밖에 없는 처지다.
◆2차 붐업 닻 올린 블록체인 P2P 거래 시장
이런 와중에 지난달 11일, 흔하디흔한 확장자 JPG를 쓰는 이미지 파일 하나가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디지털 미술가 비플(Beeple·마이클 원클맨)의 디지털 아트 '매일:첫 5000일(Everyday:The First 5000 Days)'이 6900만 달러(약 780억원)에 팔렸다.
이 경매가 주목받은 건 비트코인의 생성과 작동 원리인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NFT(Non-Fungible Tokens·대체 불가 토큰) 방식으로 '디지털 진품'임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실물거래 11주년을 앞두고 비트코인의 근본 기술에 기반한 자산 거래가 잇달아 이뤄지면서 블록체인 2차 붐업 기대도 한껏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3억 달러 수준이었던 NFT 시장 규모는 올해는 7억 달러를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필연적으로 빅 브러더 논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네이버는 인터넷 보안에 거액을 쏟아붓지만, 끊임없이 디도스 공격을 받는다. 그때마다 내 정보가 안전한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모든 데이터가 디지털로 저장된 상황에서, 이를 안전하게 지킬 방법이 있다면 누구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블록체인 기반의 위조 불가능한(=대체 불가) 디지털 인증(=토큰)인 셈이다.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파고든 블록체인 디지털 인증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환경이 이런 분산형 디지털 인증을 빠르게 견인하고 있다. 코로나 백신 접종이 이뤄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백신여권 도입을 논의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이 여권은 위조할 수 없다. 접종 날짜와 백신 종류는 물론 의사 소견까지 저장해 개인의 의료 기록을 세계 어디서든 인정받을 수 있다.
네이버·카카오·이통3사가 선보일 모바일 신분증과 운전면허증도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인증 방식이다. 국가 기관 증명서의 디지털 버전인데, 이 디지털 증명서는 위조되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기에 가능하다.
데이터의 소유권 문제도 명쾌해진다. 위조 불가능한 디지털 인증서는 모든 사적 계약에 활용할 수 있다. 이번 디지털 아티스트 작품이 화제가 된 것이 이런 케이스다. 이런 디지털 작품의 거래는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뤄진다. 지난 23일엔 코인 매체 블록미디어가 기사를 NTF로 발행해 2시간 만에 1이더리움(약 270만원)에 팔았다. 뉴스 토큰이 팔린 세계 두 번째 사례다.
게임업계도 이를 충분히 검증했다. 가상 고양이 육성 게임 '크립토키티'는 저마다 다른 특성을 가진 고양이를 모으고 교배하는 게임이다. 이 창조 디지털 고양이는 복제되면 안 된다. 그래야 사고팔 수 있다. 그 활용 범위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나, 김택진 넥슨 대표는 2017년 9월 국내 코빗에 이어 이듬해엔 거액을 들여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스탬프도 사들였다.
◆코로나19가 앞당긴 데이터 집중 해체와 분산화
블록체인 디지털 인증에 기반한 비즈니스는 모두 데이터를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분산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디지털(가상)과 (복제 불가능한) 인증이다. 데이터를 집중해 만드는 플랫폼 비즈니스에선 고민일 수밖에 없다. 특정 산업이 뚝딱 만들어질 리 없고,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갑자기 바뀌는 것도 아니어서 플랫폼의 위기라고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인증 시스템은 거대한 플랫폼 산업의 미래에 의문을 던지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이런 격변의 상황에서 거대한 흐름의 문제를 놓고 우리 정치권과 정부의 최근 암호화폐 논쟁은 '우물 안 개구리'의 전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정권의 대표 논객인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2018년 1월 한 토론에서 '블록체인은 되는데, 암호화폐는 안돼'라는 설명할 수 없는 얘기를 늘어놓을 때부터, 이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큰 흐름에서 이탈했는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당시 실세의 입장을 충실히 따랐을 뿐인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돌팔매를 맞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권이 4차 산업혁명 물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