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감염병 사태는 그동안 진행되던 세계화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우선 일차적인 영향을 보자. 감염병 사태로 인해 무엇보다도 국가 간, 지역 간뿐만 아니라 국내, 지역 내 사람의 이동도 극도로 제한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외를 막론하고 관광, 여행, 교통 등 사람의 이동에 의존하는 활동들은 크게 위축되었다. 당연히 사람의 이동에 의존하는 형태의 세계화는 후퇴하고 있다. 국가 간 이민도, 일시방문을 통한 교류도 거의 멈춘 상황이다.
일차적인 영향과 이차적인 영향 중 어느 것이 더 클까. 물론 감염병 사태가 끝나면 세계는 감염병 이전의 생활방식과 업무방식으로 돌아갈 것이다. 과연 그럴까. 원상으로 돌아가는 부분도 있지만, 항구적으로 변화되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감염병 사태는 경제위기이기도 하다. 아니, 지난 반세기 동안 발생한 경제위기 중 가장 큰 위기다. 지난번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인 2009년에 세계경제는 0.1% 마이너스 성장하였다. 선진국들은 3.3% 마이너스 성장하였지만, 신흥국들이 2.8% 성장하였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보면 제로 성장에 가까웠다. 이와 비교하면, 이번 감염병 사태에 따른 경제 위축은 훨씬 컸다. 세계경제는 2020년에 4.4% 마이너스 성장하였다. 선진국들이 5.8% 마이너스 성장하고, 신흥국들도 3.3% 마이너스 성장하였다. 흔히들 지난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역사상 최초의 글로벌 경제위기라고 했는데, 실은 이번 감염병 사태가 역사상 최초의 지구상 모든 지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위기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화의 추세를 계량화하는 대표적인 지표는 무역량이다. 2000년에서 2008년까지 세계무역량은 연 5% 정도 성장하였다. 그러다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나자 2008년에서 20009년 사이에 10% 정도 축소되었다. 위기 뒤에는 무역이 회복되어 다시 성장했지만 성장세는 크게 꺾여서 2010년에서 2019년 사이에 연 1.5% 정도밖에 성장하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은 세계화의 부작용 또는 급속한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인 측면이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글로벌 경제위기가 세계화의 기세를 꺾고 속도조절을 유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처럼 이번 경제위기 이후에도 진행되던 세계화의 기세가 꺾일 것인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그랬던 것처럼 감염병 사태가 진행된 2020년에도 세계무역은 급격히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계무역이 2.7% 성장하였고, 2021년에는 그 2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었지만 물자의 이동은 늘어난 것이다. 고전적 국제무역이론의 일부인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는 ‘사람의 이동을 물자의 이동이 대체한다’고 하는데, 이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이동이 축소되면 물자의 이동이 오히려 증가될 수 있다. 무역량을 세계화의 지표로 본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는 달리 세계화는 일단 멈추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이기도 한 이번 감염병 사태 이후, 세계화의 기세가 중장기적으로 꺾일 것인가. 경제위기가 세계화의 내재적인 부작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럴 수 있다. 그래도 비대면 세계화는 지속될 것이다.
채수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수학과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카이스트 대외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