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요구에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할 경우, 무역분쟁이 한창인 중국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 그렇다고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면 한층 증설이 필요한 미국 투자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삼성으로선 그야말로 딜레마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오는 12일 국가안보·경제 담당 보좌관 주재로 삼성전자, 제너럴모터스(GM) 등과 함께 반도체 부족에 대비하는 긴급 대책회의를 연다.
특히 이 자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반도체 칩을 손에 들고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후 처음으로 반도체 기업을 소집한 자리란 점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미국이 비단 자국 기업의 반도체 공급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 반도체를 다루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미국 중심의 반도체 패권주의에 동참할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미국 현지 내 생산기지 확보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삼성의 적극적인 미국 투자가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중국은 지난 3일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반도체 협력 강화를 요구했다. 양국 간의 반도체·5세대(5G) 이동통신 부문 협력을 강조한 것이지만, 사실상 삼성의 대중 투자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1·2공장을 운영 중이다. 여기에 지금까지 총 150억 달러가 투입됐지만, 중국 정부는 삼성에 추가 투자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미·중 갈등이 단기적인 문제가 아닌 상수(常數)가 됐다는 점에서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참석자 수위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 출범 후 첫 백악관 회의 소집이란 상징성이 크지만, 총수 부재 상황에서 ‘책임감 있는’ 해법을 제시할 인물을 정하는 것부터 난제인 탓이다. 현재로선 반도체(DS)사업 부문 수장인 김기남 부회장이나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이 참석자로 유력시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 등을 고려해 화상 참여 등 여러모로 참석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도 삼성전자의 또 다른 부담이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줄타기 중인 정부의 입장과 국내가 아닌 해외투자에 따른 일자리 창출 문제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미·중 갈등 상황에 더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으로 인해 삼성전자가 정부를 대신해 총대를 메야 하는 상황”이라며 “총수마저 수감된 상태라 삼성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