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서울 토박이와 깍쟁이…다른 4·7 재보선

2021-04-0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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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신'을 만나 고향 얘기를 하면 적잖은 수고를 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내 고향은 서울”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서울로 ‘상경’, 태어난 곳은 서울이 아닌데 계속 자랐다거나 등등. 그래서 고향이 두 개 이상인 '서울 사람' 정치인, 관료들도 적지 않다. 호남이냐 영남이냐 정권 지역성에 따라 고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경우도 봤다. 그럴 땐 출신 고등학교를 보곤 했는데, 요즘에는 그것도 고향과 크게 상관없을 때가 많다.

▶1년 2개월 동안 서울특별시를 이끌 시장을 뽑는 4·7 재보선이 하루 앞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인 명부 작성 기준에 따르면 서울특별시 전체 인구는 964만 662명이다. 3월 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현황 959만 8484명 보다 다소 많다. 서울시민 중 확정된 선거인은 842만 5869명이다.

이번에 투표할 권리를 가진 특별시민 중 서울에 애향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말 그대로 서울을 ‘고향’이라고 여기는 이들 말이다. 자신을 서울 사람, 서울 토박이라고 생각하는.
 

[1963년 서울 동대문구 신작로. 사진=서울역사편찬원]

▶지금은 호주제 폐지로 없어진 단어인 ‘본적’은 호주(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의 출생지이다. 과거 내 본적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00리 산 1번지’, 나고 자란 곳이 서울이다. 태어났을 때 증조부가 살아 계셨으니 확실한 서울 토박이일까?

과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서울 토박이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서울시가 정한 ‘서울 토박이’ 규정이 있다는 걸 아는 서울 사람은 흔치 않다. 그 규정이 몇 차례 바뀐 것 역시 그렇다.

‘토박이’의 사전적 의미는 ‘대대로 그 땅에서 나서 오래 살아 온 사람’을 뜻한다. 이를 서울에 적용했을 때 ‘대대’가 얼마 동안인 지, 그 땅은 어디인 지 의견이 분분했다. 서울시는 그래서 그 기준 시기와 장소를 정했다.

▶서울이 조선 왕조의 수도(한양)가 된 해는 1394년. 서울시는 600년이 지난 1993년 ‘정도(定都) 600년 사업’을 추진했다. 이 때 ‘서울 토박이’의 선정기준을 “조상이 1910년 이전 한성부에 정착한 이후 현 서울시 행정구역 내에 계속 거주해오고 있는 시민”으로 했다.

한성부는 4대문을 중심으로 성(城)을 쌓은 도성 안 지역과, 그곳으로부터 10리(약 4㎞) 이내의 지역인 성저십리(城底十里)를 포함한 곳이다.

1910년 이전에 이곳에 정착한 이후 (이사를 했더라도) 현재 서울시 행정구역 내에 계속 거주해야 서울 토박이로 인정한다는 거였다.

필자의 고조부는 일제 시대 경기도 광주군, 지금의 서울 강남 지역에서 농사를 짓다 자식 교육 때문에 한강을 건너 서울에 입성했다. 1910년 이전에 한성부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위 기준에 따르면 우리 가족은 서울 토박이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이 기준으로 따지면 1930년대 청담동에 살았던 가족이 지금 계속 살고 있더라도 서울 토박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강남3구는 물론이고 성저십리 바깥 지금의 서울은 모두 경기도였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때 이 기준에 맞는 서울 토박이를 자진 신고하도록 했는데, 그 숫자는 1만3583명(3564가구)에 불과했다. 당시 1100만명 서울시민 중 0.12%만이 토박이인 셈이었다. 전수 조사나 통계가 아닌 자발적인 신고로만 확인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빡빡한 토박이 기준에 맞는 ‘서울 토박이’는 0.12%뿐이었다.
 

[2020년 11월 52년만에 개방된 청와대 뒤편 북악산 북측 성곽 탐방로.사진=연합뉴스]

▶서울시는 이걸 2004년에 바꿨다.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공식적으로 서울 토박이 정의를 내리고 조사까지 했다. 연구원이 서울시내 2만139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04년 서울 서베이’ 결과, 서울시민 가운데 조부모 때부터 3대가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 토박이’는 4.9%였다. 서울시민 100명 중 5명 꼴. 이때부터 “나는 서울 토박이 5%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호적제가 완전 폐지되고 등록기준지 제도가 시행되면서 서울 토박이 기준은 또 바뀌었다. 호적제가 있던 시절에는 본적 심지어 원적까지 있었지만 이제는 본인이 서울에서 태어나 계속 살고 있으면 서울 토박이 지위를 부여했다.

이 기준을 적용한 서울시 2010년 토박이 비율은 46.5%, 2017년 47.8%로 조사됐다. 이제 서울시민 절반 정도는 토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983년 서울 동대문에서 본 종로 모습. 사진=서울역사편찬원]


▶다시 선거 얘기로 돌아가자. 이 토박이 비율로 볼 때 이번 선거에서 스스로를 서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유권자가 적지 않다는 말이다.

서울 토박이들은 맹글다(만들다), 했걸랑(했거든), 삼춘(삼촌), 겨란(계란) 등의 서울 사투리를 듣고 쓰며 자랐다. 한강과 그 수많은 지류, 하천 가생이(가장자리)에서 놀던 유년의 추억을 가졌다.

서울 깍쟁이라는 말은 서울 토박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한반도 역사를 보면 서울은 '느릿느릿 양반 땅'인 충청도보다 더 나라 바뀜이 치열했다. 그래서 대대로 서울 사람들은 살기 위해 순둥순둥,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한국전쟁과 이후 산업화 시기 서울로 올라오거나 내려온 비(非)서울사람들이 자본주의에 찌들어 고향사람들 ‘코’를 베어갔기 때문에 서울 깍쟁이란 말이 생겼으리라.

이번 선거에 서울 사는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그럼에도 서울 토박이들은 깍쟁이들과 달랐으면 한다. 서울을 고향으로 여기고 앞으로도 계속 서울에 살고 싶어 하고, 서울을 사랑한다면 꼭 투표하길 바란다. 애향심 가득한 서울 사람이지만, 자랑스러운 경기도 시민이라 이번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게 참으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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