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 캠프 등에서 여론조사를 여러 차례 한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 이내로 들어왔다고 생각한다.”(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29일 YTN 라디오 발언)
서울시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가 30일 윤 의원의 발언이 공직선거법 위반인지 따져보고 있다. 여심위는 “(윤 의원 언급은) 민주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로, 선거법 제108조 제12항 제1호에 따라 공표보도가 불가능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여심위 홈페이지에 등록되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는 공표할 수 없는데, 이를 위반할 경우 최고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여론조사 결과 되레 여론 왜곡·통제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의 선거법 위반 사례가 심심찮게 나타난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건 공표가 금지된 여론조사의 공표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자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윤 의원, 제1야당의 대선후보와 당 대표를 지낸 홍 의원이 여심위에 등록되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그만큼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른바 ‘밴드왜건 효과’ 때문이다. 밴드왜건 효과는 우세를 보이는 후보 쪽으로 투표자가 쏠리는, 편승효과를 뜻한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의존하는 게 편하기 때문인데, 선거에선 ‘사표 심리’ 때문에 이런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를 막기 위해 여론조사상 뒤지는 측에서 지지층 이탈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우리가 이기고 있다’거나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고 언급하는 경우가 생기는 셈이다.
여론조사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인데, 문제가 되는 건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의 정합성이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여론조사는 주로 유‧무선 전화에 의존한다. 사안이 생길 때마다 하루 이틀 정도 전화를 돌린 뒤 ‘국민의 여론이 이렇다’고 내놓는 식이다. 대부분이 자동응답(ARS) 방식을 사용한다. 전화면접원 조사가 아니다 보니, 실제 여론보다는 ‘인지도’가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여론을 전달해야 할 여론조사가 오히려 여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밴드왜건 효과도 있지만 침묵의 나선이론도 있다. 현재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박영선 민주당 후보보다 20대 지지율이 높은 것으로 나오지만, 20대의 여론조사 응답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보니 민주당을 지지하는 20대들이 오히려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지지율과는 차이가 있는데, 왜곡된 조사결과가 지속적으로 발표되면 실제 여론이 되기도 한다. 여론조사로 인한 심각한 왜곡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언론의 공생 구조
여론조사를 통해 특정한 결과를 이끌어 내기도 쉽다.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를 할 때, 특정인을 넣거나 제외하는 방식으로 설계해 특정인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도록 할 수 있다. 여론조사 문항에 편향성(바이어스)을 유발할 수 있는 문구를 유발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다. 엄 소장은 “예를 들어 유선전화 30%, 무선전화 70%로 설계해서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를 하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지도는 50%가 넘게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보수층에서 유선전화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쇼킹’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대부분의 언론이 이를 인용해 보도한다. 여론조사 기관은 인지도를 높이고, 이를 보도한 언론은 조회수를 늘린다. 공생 구조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왜곡된 여론이 실제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엄 소장은 “여론조사 기관의 탐욕과 옐로 저널리즘이 만난 기형적인 구조”라며 “이게 실제 여론을 왜곡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 여론조사기관 대표는 사석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여론조사를 너무 풀어줬다. 선관위가 정한 공표 기준만 맞추면 어떤 결과든지 공표할 수 있다”며 “선관위의 기준을 맞추면서 특정한 결과를 유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했다.
차제에 여론조사 전반을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의 경우 대부분 여론조사가 ‘전화 응답’에 의존한다. 이메일 조사나 패널 조사 등 ‘여론의 추이’를 살필 수 있는 다양한 조사 방식을 도입해 여론 계량의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 선거컨설팅 업체가 여론조사 업체를 병행하는 경우도 많은데, 제도적으로 이를 정비해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가짜뉴스→음모론→정치 회의론’ 악순환
#3. 지난 6일 강경보수 성향의 한 유튜브 채널에 ‘단독보도 윤석열 총장 서울시장 출마 선언 임박’이라는 게시물이 업로드됐다. 내용은 윤 전 총장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게 아니라, 출마해야 대통령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의견이 담겼다. 제목만 본다면 ‘낚시’, 더 나아간다면 ‘가짜 뉴스’인 셈이다. 이 영상은 같은 채널에 게시된 다른 영상보다 평균 10배가량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튜브 공간에선 이런 종류의 가짜 뉴스가 횡행한다. 조회수를 올리는 게 목적이고, 조회수가 곧 돈으로 연결되다 보니 사실과는 다른 정보가 급속하게 전파된다. 지난 총선 당시엔 보수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이 급속하게 확산됐고, 최근엔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 불신을 조장하는 영상들이 생산·공유되고 있다.
선거가 시작되며 공방전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튜버들은 오 후보의 내곡동 셀프 보상 의혹을,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유튜버들은 박 후보의 도쿄 아파트를 공격하는 식이다. ‘조회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구체적인 사실을 검증하기보다는 흑색선전으로 도배되는 게 현실이다. 자극적인 표현을 쓸수록 조회수가 올라간다. 형법 또는 정보통신망법 등에 처벌 규정이 있지만, 표현의 자유와 민감하게 맞닿아 있는 주제다 보니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튜브에서 상품에 관한 걸 검색하면 유사한 다른 상품에 관한 영상이 자동으로 뜬다. 이게 정치 분야에도 적용돼 사람들을 극단적인 성향에 빠지게 만든다”며 “자극적으로 만든 영상에 노출되면서 이게 진짜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오보와 가짜뉴스는 같은 영역 아니다
정치권에서 ‘가짜 뉴스’ 근절을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전히 논란의 소지가 있다. ‘제도권 언론’에 불만을 가진 민주당은 언론과 유튜브를 같은 카테고리로 묶어서 처벌하려 하고, 유튜브 지형에서 우세한 국민의힘은 법안 처리를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권 언론은 데스킹을 통해 가짜뉴스가 대부분 걸러진다. ‘오보’와 ‘가짜 뉴스’는 분명히 다른 영역인데, 이를 하나의 잣대로 규율하려고 하면서 효과적인 가짜 뉴스 근절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의원들이 ‘가짜 뉴스’ 대책으로 내놓은 법안들은 대체로 ‘제도권 언론’을 향한 게 많다. 윤영찬 의원이 내놓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경우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거짓 사실로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해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원욱 의원이 내놓은 형법 개정안은 TV·라디오를 포함해 신문·잡지 등 출판물에 의한 허위사실 명예훼손에 대해 징역 7년 및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 의원 개정안에 따른다면 언론과 포털도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된다.
언론중재위원회 등 보도로 인한 피해의 구제가 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가능한 상황에서 언론과 유튜브를 동일하게 규율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 교수는 “제도권 언론에는 게이트 키핑 기능이 있다. 1인 미디어인 유튜브엔 게이트 키핑 기능이 없다”며 “시사선정성이라고 표현하는데, 구독자와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인 방송을 하고, 이게 퍼지면서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것은 반대”라며 “유튜브 채널은 자정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유튜브엔 징벌적 손해배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