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은 기운은 감지됐었다. 지난 17~18일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이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면서다.
불안한 미·중 간 갈등은 고스란히 다음 날 ‘알래스카 회담’으로 이어졌고, 이른바 ‘신냉전’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24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은 유럽연합(EU),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더욱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오스틴 국방장관의 인도 방문으로 미국 주도의 일본·호주·인도 4자 안보 협의체 ‘쿼드’ 강화에 나섰다.
문제는 양국 간 갈등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대표되는 북핵 문제 진전의 돌파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20일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대립이 격화할수록 한국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좁아지고 선택의 폭이 극히 제한된다”며면서 “미·중 갈등이 신냉전으로 악화하지 않도록 관련국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전략적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은 민주주의·인권이라는 가치를 명분으로 중국에 대한 공세를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북핵 이슈에 대해선 중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실제 블링컨 국무장관은 한국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에서도 국제사회에서 보여준 중국의 행동을 비판하고, 민감한 인권 문제도 거론했다.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과의 갈등이 격화할 경우, 자국의 협상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대북 제재에 협조하지 않는 방향으로 우리 정부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중국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북한이 북핵 협상 테이블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게다가 북한은 최근 말레이시아와의 단교 사태 등으로 미국과 갈등이 심화하고 외교적으로 더욱 고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 외무성은 자국 주재 북한 사업가를 미국에 넘긴 말레이시아에 단교를 선언하고 미국에도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곧바로 이 같은 전망은 현실화되고 있다. 미·중 간 알래스카 고위급 회담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양국관계 강화를 담은 구두친서를 주고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지난 23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시 주석에게 보낸 구두친서에서 “적대 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조중 두 당,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적대 세력들의 광란적인 비방 중상과 압박 속에서도 사회주의를 굳건히 수호하면서 초보적으로 부유한 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괄목할 성과들을 이룩하고 있는데 대해 자기 일처럼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국가명이 적시되지는 않았지만, ‘적대 세력’은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도 친서를 통해 김 위원장에게 “새로운 정세 아래에 북한 동지들과 손을 잡고 노력해 북·중 관계를 잘 지키고 견고히 하며 발전시키고 싶다”고 화답했다. 시 주석이 언급한 ‘새로운 정세’는 바이든 정부 출범을 뜻하는 것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