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 자본소득과 임금소득 함께 독점하는 ‘호모플루티아’의 등장, 부의 대물림 심화

2021-03-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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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자본가 노동자 이분법은 이제 무의미해져, 부의 독점 계급 신(新) 금수저 등장, 불평등 고착화

호모플루티아는 결혼, 교육의 독점 통해 신흥부자 계급 재생산

돈, 정보, 권력 독점하며 k자 양극화 한 축으로...LH사건 본질도 거기에

 
 

[이용웅 글로벌경제재정연구원장]





“자본과 임금노동은 하나의 동일한 관계의 두 측면이다. 마치 고리대금업자와 낭비하는 사람이 서로서로 제약하는 것처럼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제약한다. 그리고 이윤과 임금은 ‘반비례 관계’에 있어서, 자본의 이해관계와 임금노동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대립한다.”

칼 마르크스는 ‘임금노동과 자본’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구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가와 노동자는 결코 결합이 가능한 구조가 아니다.
사실 근대경제학이 등장한 이래 꼭 마르크스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 사회는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자와 생산수단을 독점하는 자본가의 이분법(dichotomy) 구조로 되어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게 복잡해졌다. 경계선도 애매해졌다.
때문에 21세기 자본주의 세계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등으로 쾌도난마처럼 이해하기는 어렵게 됐다.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노동자와 미국식 자유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노동자가 마르크스의 외침처럼 ‘만국의 노동자’로 뭉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들만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사람들은 혼란을 느끼고 있다. 자본주의를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또 다른 여러 가지 질문들이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자본가와 노동자 이분법 분리의 종말. 그리고 새로운 엘리트의 등장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홀로선 자본주의(Capitalism, Alone)>와 같은 책에서 자본소득가와 임금노동자의 교집합이 증가하고 있다고 예증한다.
전통적인 정치경제학에서는 자본소득가와 임금노동자는 엄연히 다르다. 당연히 자본가들은 노동자들보다 압도적으로 부유하다.
마르크스와 같은 좌파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불평등은 필연적으로 혁명을 불러온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신고전주의 신봉자이자 소득분배의 한계생산력설(限界生産力說) 설계자인 존 베이트 클라크는 사회적 계층은 더 큰 생산물을 만들어가며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이들 학자가 혁명을 주장하든 아니면 개혁을 주장하든, 자본가와 노동자계급은 서로 다른 계층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출처 '홀로선 자본주의']

하지만 최근 일련의 경제학자들은 자본가와 노동자를 분리시키는 이분법은 더 이상 지지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홀로선 자본주의>의 저자 브랑코 밀라노비치가 대표적이다.
밀라노비치는 이 책에서 지난 30년간 미국 가계소득의 추이를 조사한 결과 상위 10분위에 속하는 자본소득가들 중에 상위 10분위 노동임금자들도 있는데 이들의 숫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밀라노비치는 이런 특징에 대해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 ‘호모플루티아(homoploutia)'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 말은 동일한 가구(또는 개인) 안에서 높은 자본소득과 높은 노동소득이 결합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동일하다'는 의미의 homo와 ‘부’를 의미하는 ploutia를 합친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높은 노동소득과 높은 자본소득 모두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증가해왔다.
밀라노비치에 따르면 고전적 자본주의 시대의 부자들은 어쨌든 자본수입만으로 부자가 됐다. 고전적 자본주의 시대의 임금노동자들은 자본소득 상위 10%에 들어갈 만큼의 높은 자본소득을 충분히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 밀라노비치의 주장이다.
높은 자본소득과 높은 임금소득을 한손에 쥐게 된 ‘호모플루티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자본가이면서도 노동자이고 노동자이면서도 자본가인 신흥 부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규모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산업화 초기에 등장했던 부르주아만큼이나 다른 계층에 대해 배타적이다.
미국에서 2차대전 이후 낮았던 호모플루티아 비중은 1960년대까지 현격히 증가하다가 1980년대까지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85년 이후 다시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소득 상위 10%에 해당하면서 동시에 자본소득 상위 10%에 들어가는(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호모플루티아의 비중이 2018년에 30%까지 증가했다.

‘호모플루티아’가 등장한 이유를 두 가지로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고소득임금을 받는 많은 이들이 그들의 임금을 저축하고 투자에 사용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높은 자산수익을 얻게 된 것이다.
둘째는, 높은 수준의 자산가들이 대학교육을 사치스런 소비로 보는 것이 아닌,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녀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결혼마저도 비슷한 부류끼리 만나는 ‘선택적 결혼’으로 계층을 재생산한다.

결국 ‘호모플루티아’의 등장은 자산소득과 노동소득 모두 장악하는 부자들의 증가를 말하는 것이며, 이들 계층은 그렇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과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상류층으로 차별화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들 상류층은 또한 자녀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할 것이며, 이는 다시 높은 수준의 임금소득을 창출한다.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는 계층의 사회적 이동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쓰는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상류층에 대한 과세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에 대해 밀라노비치는 “왜냐하면 그들의 높은 소득은 마땅히 더 받을 만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노동에서 생기기 때문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 독자들은 ‘금수저’라는 말을 떠올릴 것이다. ‘호모플루티아’는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고 ‘금수저 계층’이라고 하면 대충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갔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없어졌다.’
이런 말들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호모플루티아’이자 ‘금수저’인 것이다.

◆'호모플루티아' 한국에서는 '금수저'로 통해··· 코로나 이후 K자형 양극화 위험 높아져 

물론 밀라노비치가 제시한 수치들은 주로 미국을 대상으로 했다. 자본소득 상위 10%이면서도 동시에 노동소득 상위 10%에 들어가는 비율이 미국의 경우 30%에 육박하지만 ‘홀로선 자본주의’에서 제시된 수치를 보면 한국의 경우 여전히 16% 선에서 머물고 있다.

하지만 최근 자료들을 보면 한국 역시 자산의 불평등이 가속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의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영국의 부동산업체 나이트프랭크는 ‘2021 부 보고서(wealth report)’에서 지난해 한국에서 순자산 3000만 달러(약 339억원)가 넘는 초고자산가들의 숫자가 7364명으로 전년(6918명) 대비 436명(6.3%) 늘어났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시국에 슈퍼리치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은 글로벌 평균보다 그 속도가 더 빨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에서 순자산 3000만 달러가 넘는 초고자산가의 수는 지난해 52만1653명으로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물론 ‘호모플루티아’라는 계층이 부동산보다는 주식 등의 자산소득에 기반을 둔 개념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바로 적응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호모플루티아’가 그들만의 결혼, 그들만의 이너서클을 만들어 내면서 계층을 재생산하고 부의 대물림을 고착화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에 최근 명문대 출신들만 만나게 하는 ‘스카이피플’ 같은 존재가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부동산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이제는 소득 수준에 따라 대출금액과 이자 등이 전부 차별화되고 있다. 일정 소득을 얻지 못하면 주택을 구입하기 위한 대출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설계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빈부격차가 더욱 커지면서 동학개미, 서학개미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호모플루티아’에 진입하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가령 백신 전문기업인 SK바이오사이언스의 일반 공모주 청약 첫날에만 14조원 넘는 뭉칫돈이 몰린 것을 보면 자본가가 되려는 보통 사람들의 욕망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64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소득 5분위(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002만6000원으로 2.7% 늘었다. 두 계층 간 소득증가율 격차를 벌린 것은 근로소득이다.
또 소득 분배지표인 지니계수(0에 가까울수록 평등함을 의미)는 2019년 균등화 시장소득(근로·사업·재산·사적이전소득) 기준 0.404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전인 2016년(0.402)보다 오히려 상승했다. 이번 정부 들어 소득 불평등이 더 심화됐다는 의미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을 기준으로 한 지니계수를 보면 양극화 현상은 더 두드러진다.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8년(0.588)부터 지난해(0.602)까지 3년 연속 상승세를 유지했다. 5분위의 평균 순자산을 1분위로 나눈 5분위배율은 2016년 6.06배에서 지난해 6.69배로 벌어졌다. 아파트 가격 강세로 고소득층의 자산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늘면서 소득 양극화를 더 부추긴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소득의 차이는 곧바로 자산소득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밀라노비치의 ‘호모플루티아’를 ‘금수저’로 바꾸고 자본소득을 부동산 등 총 자산소득으로 치환하면, 우리나라의 불평등 기조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고 ‘K자형 불평등’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주목된다.
 코로나 사태가 부자들을 더욱 부자로,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불평등 기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홀로선 자본주의>의 한국어판을 감수한 김기정 연세대 정외과 교수는 “핵심은 특정집단이 자본과 정치권력을 과밀하게 독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고 강조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LH 직원들의 투기사건을 보면 권력과 정보를 독점하는 이너서클의 존재가 K자형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정부가 자랑하는 'K시리즈'가 불명예스러운 불평등 심화를 상징하는 단어로 둔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보다 깊이 있는 정책조합이 절실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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