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 <영화 ‘헌트’에서 드러난 미국 사회의 분열>

2021-03-0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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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엘리트들의 트럼프주의자 사냥게임 그려 논란불러.

‘큐어넌’등 각종 음모론에 두동강나는 미국 사회에 대한 직설적 냉소.

 
 

[이용웅 글로벌경제재정연구원장]





부유한 엘리트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일반 사람들을 몰래 잡아다 들판에 풀어놓고 잔인하게 인간사냥을 한다.
넷플릭스에서 소개되는 크레이그 조벨 감독의 영화 ‘헌트’의 선전문구이다.
이 내용만 보면 보통 평범한 B급 할리우드 공포영화처럼 보인다. 아니면 그저 시시한 액션물? 영화팬이라면 오래전 개봉되어 히트쳤던 공포물 ‘호스텔’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2005년에 개봉됐던 ‘호스텔’은 순진무구한 대학생들이 피해자들이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니던 대학생들이 매력적인 동구권 여자에 낚여 슬로바키아의 한 호스텔로 유인된 후,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살해당한다는 스토리다. 가해자들은 가진게 돈밖에 없지만 인간이 고문을 당하면 얼마나 고통을 당할 수 있는지를 체험하고 싶은 사이코들이다.
죽여도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고통을 주면서 사람들이 차라리 죽여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호스텔’은 사실 너무 끔찍하다.
그럼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공포물이었기에 정치적 메시지는 없었지만 부유한 사람들이 인종을 가리지 않고 젊은이들을 고문하고 도륙하는 플롯은 부자들에게 반감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그렇다고 당시 어느 누구도 ‘호스텔’이 ‘가진자들’에 대한 반감을 유도한다는 정치적 해석을 내리지는 않았다.

이런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는 앞에 소개한 ‘헌트’의 소개문구는 비슷한 고어물처럼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헌트’를 제작한 사람들이 ‘호스텔’을 참조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플롯이 워낙 유사하다.
사람들을 잡아다 고문을 하거나 죽이는 스토리가 거의 유사하고 ‘호스텔’에서 그 무대가 동구권의 슬로바키아인 것처럼 ‘헌트’의 살육 무대도 동구권 그 어느 나라이다. 동구권의 치안부재를 노골적으로 비웃는 설정으로 충분히 문제가 될 소지는 있다.
 
 

[.]영화 '헌트'의 한 장면



*영화속 ‘저택게이트’는 현실의 ‘피자게이트’의 변형

하지만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의 면면을 보면 ‘헌트’는 ‘호스텔’과는 달리 아주 희한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잔혹한 장면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냐”는 의문에 빠지게 된다.
‘헌트’의 원제가 <레드 스테이트 대 블루 스테이트>였다는 사실을 알면 영화를 처음부터 이해하기가 좀 쉬었을지도 모른다.
이 제목이 뜻하는 것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강세 지역 간 대결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만약 영화가 ‘스테이트’운운의 제목으로 나갔다면 관객들은 미국 정치의 갈등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금방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을 납치해서 살육을 한다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들은 다시 한번 혼돈에 빠질 것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잡아다가 살육잔치를 벌인다는 말이냐.

승객들이 얼마 되지 않은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누군가 깨어나 “여기가 어디냐”고 외친다. 캐비어와 수백만원짜리 와인을 즐기려던 일부 승객이 당황하는 가운데 왠 여인이 등장해 하이힐로 “여기가 어디냐”고 외치는 첫 패해자의 눈을 찍어낸다.
잔혹하기 이를데 없는 서막이다.
그리고 납치된 피해자들이 재갈이 물린채 들판에 내동댕이쳐지는데 동시에 커다란 상자가 등장한다.
납치된 사람들이 상자를 열자 돼지 한 마리가 뛰쳐나오더니 온갖 무기가 그 속에 담겨져있다. 일단 사람들은 정신없이 무기를 챙긴다.
제법 얼굴이 알려진 엠마 로버츠가 주인공인가 했는데 처음부터 얼굴이 총에 맞아 짖이겨진다. 영화속 크리스털 역을 맡은 베티 길핀만이 자기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금방 눈치를 채고 신중하게 몸을 움직인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총알들. 산채로 입에 재갈이 물린채 들판에 버려진 사람들은 그저 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몸이 반토막이 되어 죽는 장면이 예사롭지 않게 등장한다.
이 악몽의 현장에서 탈출하는 세 사람이 있다.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정신없이 뛰다보니 높은 담장이 가로막혀 있고 가까스로 그 담장을 넘어 다시 달리니 텅빈 시골길이 나온다.
“여기가 어딘가”
두렵고도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면서 다시 달리는 그 세사람 앞에 주유소를 겸한 시골길 편의점이 보인다. 이네들이 편의점 안에 들어가자 어리숙하게 보이는 늙은 노부부가 그곳을 지키고 있다.
아칸소 주 어디라는 말을 듣고 경찰에 신고하는 등 법석을 떠는데 한 사람이 이렇게 외친다.
“내가 그토록 주장했던 ‘저택게이트’가 사실이었다. 그 놈들(좌파 엘리트들)이 우리를 잡아가 큰 저택에 가두어 두고 사냥을 한다. 저택게이트는 사실이었다”고 외치면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거듭 하소연을 한다.
하지만 그 편의점은 위장에 불과하고 미국 어느 시골이 아니라 동구권 그 어느 나라에 만들어진 가짜 편의점이었다.

미국 정치에 민감한 관객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저택게이트’가 다름 아닌 ‘큐어넌’의 주장을 은유하는 것이라고 눈치를 챈다.
미국에서 열렬한 트럼프 지지세력으로 유명한 큐어넌이 퍼트리는 음모론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피자게이트(Pizzagagte)이다. 영화속 ‘저택게이트’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파자게이트’는 지난 2016년 대선 과정에서 발생한 음모론이다. 이 음모론은 위키리스크에서 힐러리 클린터의 선대 본부장 존 포데스타의 이메일을 해킹해서 폭로를 하면서 시작이 되었다.
메일 중에 pizza, pasta, cheese 등의 단어가 몇 차례 등장하자 트위터, 유튜브 등에서 활동하는 우익 음모론자들은 '치즈 피자'가 아동 포르노 그래피의 은어로 사용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힐러리 클린턴등 민주당의 고위 관계자들이 인신매매와 아동성착취를 하는 악마숭배자 조직 소속이고 그 근거지가 워싱턴 D.C의 코멧 핑퐁(Comet Ping Pong)'이라는 이름의 피자 가게의 지하실이라고 퍼트리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도 사회 유력인사들의 친목 대화방에서 오간 이야기가 유출되면서 ‘저택게이트’가 시작된다.
“각하새끼가 한 짓 봤어?” “열받네” “사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저택에서 ‘개탄스러운 것들(deplorables)’ 쓸어버리는 게 최고” 등등의 대화록이다.
진보 엘리트들 즉 좌파 민주당 추종자들이 저택으로 사람들을 납치해 우파 인사들을 사냥한다는 음모론인데 영화속 좌파 엘리트들은 “이런 음모론의 희생양이 될바에는 차라리 진짜 우익 유튜버 등을 납치해 죽여버리자”고 의기투합한다.
여기서 ‘deplorables’이라는 단어는 막무가내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세력을 통칭하는 의미로 이미 미국사회에서는 보통명사화된지 오래됐다.

영화에는 또 하나의 복선이 등장하는데 트럼프주의자들의 살육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좌파 엘리트들은 흑인 등 유색인종이 포함된 다양한 인종적 색깔을 보여주는데 희생자가 되는 트럼프주의자들은 한결같이 백인들이다.
그래서 살육자중 한명은 “왜 흑인은 잡아다 죽일 수 없는 것이냐”고 하소연아닌 하소연을 한다.
흑인은 트럼프주의자도 우익분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좌파 엘리트를 대표하는 아테나(힐러리 스웽크)와 트럼프주의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크리스탈(베티 길핀)의 혈투로 마무리를 하는데 문제는 크리스탈은 전혀 트럼프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좌파들이 사람을 잘못 잡아온 것이다. 크리스탈은 정치적 인물은 아니었고 다만 아프카니스탄 참전용사로 킬러본능으로 무장된 여전사였을 뿐이었다.

아테나는 크리스탈을 ‘스노볼’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스탈린을 상징하는 나폴레옹과 트로츠키를 상징하는 스노볼이 등장한다.
그런데 좌파 엘리트들이 하필이면 트럼프주의자 중에서도 가장 열성적인 인물로 의심되는 사람을 ‘스노볼’이라는 별명으로 부른 것이다. 반면에 자기들은 스스로 스탈린으로 치환했다. ‘스노볼’은 트로츠키처럼 실패한 혁명가임을 풍자한 것이다.
‘스노볼’이라는 별명에는 트럼프추종자들은 트로츠키처럼 미국 주류 흐름을 바꾸지 못하는 실패자들이라는 비아냥이 숨겨져 있다.
그럼에도 아테나는 크리스탈에게 “너는 동물농장을 읽어보았느냐”고 묻고는 “읽었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놀랜다.
트럼프주의자들처럼 무식한 집단이 ‘동물농장’을 읽었다고 하자 좌파엘리트의 화신 아테나가 “설마 너처럼 무식한 것들이”라는 놀람이다.
물론 크리스탈은 우익분자도 트럼프주의자도 아니었다.

‘헌트’는 트럼프 시대로 상징되는 미국 사회의 비극적 갈등을 극명하게 노출시키는 영화이다.
이와 비슷하게 미국사회의 분열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또 하나 있다.
조던 필 감독의 ‘어스’가 그것인데 이 영화는 현존하는 미국인들과 똑같은 복제인간들이 지하에 갇혀있다가 지상에 올라와 똑같이 생긴 미국인들을 무차별 살육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 복제인간들이 트럼프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었다는 것이다. 인간과 복제인간으로 두동강이 난 미국사회가 서로 갈라져 죽고 죽이는 살육전을 펼친다는 내용이 바로 ‘어스’이다.

‘헌트’나 ‘어스’ 모두 공포물이라는 외양을 띄지만 ‘트럼프와 반 트럼프’로 갈라선 미국사회를 풍자하는 측면에서는 똑같다.
참고로 ‘호스텔’이 등장한 2005년은 부시 대통령 집권시로 대테러전쟁이 왕성하게 전개되는 시점이었다. 당시 영화속에 등장하는 살인자들은 모두 부유한 우파 세력들이었고 피해자는 여러 유색인종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들 영화들은 따지고 보면 모두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갈등을 단순하게 보여줄 뿐이다.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 후보는 대선 당시 트럼프추종자들에게 ‘월가의 대변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좌파 엘리트들이 ‘못가진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생각은 이제 말 그대로 편견이 되어버렸다.
최근 열렬한 반트럼프주의자인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가 반려견을 잃어버린 뒤 반려견을 찾아주면 5억원을 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개값이 사람값보다 더 비싼 것 아니냐”는 냉소가 SNS에서 퍼진 것을 두고 보면 요즘 미국이나 한국이나 좌우갈등이 꼭 고전적인 의미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헌트’가 미국 사회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혼돈에 빠진 이념적 지형도에 대한 상당히 기괴한 풍자극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은 포퓰리즘이 좌우 모두를 멍들게 하고 있음을 눈치챌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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