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성별을 선택한 게 죄? 변 하사가 직면한 '트랜스젠더 차별 공화국'

2021-03-0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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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10명 중 6명은 차별 경험··· 일상 생활 포기한 사례도 많아

"사회에서 성 소수자 죽음은 특별하지 않아... 장벽이 거대하다"

취업과 성별 변경 관련한 트렌스젠더 차별방지법 절실

“모든 성 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그 훌륭한 선례로 남고 싶고 이 변화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고 변희수 하사[사진=우한재 기자, whj@ajunews.com]


성전환 수술을 받고 트랜스젠더가 됐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한 변희수(23) 하사가 3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녀는 군 복무 중인 2019년 11월 성전환 수술을 받고 부대 복귀 후 이듬해 1월 군 당국으로부터 강제 전역 처분을 받은 인물이다.

군은 변 하사를 남성의 음경과 고환을 갖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신장애 3급'으로 판정하고 강제 전역 처분을 내렸다. 변 하사는 육군본부에 불이익 처분에 대해 재심사를 요청했지만 군은 "군인사법에 규정된 의무심사 기준 및 전역 심사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변 하사는 전역 하루 전날까지도 군 복무 의지를 확고히 드러냈다. 그녀는 시민단체 군인권센터가 연 기자회견을 통해 "수술을 하고 '계속 복무를 하겠냐'는 군단장님의 질문에 저는 '최전방에 남아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계속 남고 싶다'고 답했다. 성별 정체성을 떠나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변 하사에 대한 강제 전역 처분에 대해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전역 처분 취소를 권고했다. 하지만 군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고 변 하사는 민간인이 됐다.

이후 그녀는 트랜스젠더가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발판을 자처하며 다양한 인권 활동을 전개했다. 오는 4월에는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낸 전역 취분 취소 청구 소송 첫 변론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성적 지향성으로 인한 차별 없이 누구나 군인으로서 복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결국 이루지 못하게 됐다.
 
트랜스젠더 10명 중 6명은 차별 경험···일상 생활 포기하기도

한국에는 아직 수많은 변 하사가 있다. 이들은 본인 성별을 유전자 대신 스스로 선택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각종 차별을 겪는 중이다. 지난달 인권위가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591명 중 65.3%가 응답일 기준 1년 이내에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일부 트랜스젠더들에겐 차별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 활동 제약으로 작용했다. 트랜스젠더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인 57.1%는 아예 구직 활동을 포기했다. 또한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 봐 의료기관 이용(21.5%), 담배구입·술집 방문(16.4%), 보험가입·상담(15%), 은행 이용·상담(14.3%), 주택 관련 계약(8.1%) 등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서비스도 접근하기 어려웠다. 일부 트랜스젠더는 지난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신분증 확인이 부담스러워 투표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차별을 두려워하는 이유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아직 사회에 만연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들이 인터넷, 방송‧언론, 영상매체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표현을 접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97.1%, 87.3%, 76.1%에 달했다. 심지어 학교에서 교사가 성 소수자를 비난하는 발언을 들은 경우도 67%에 달했다.

실제로 지난해 1월에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하고 숙명여대 법학대학에 최종 합격했던 A 씨가 학내 반발로 등록을 포기한 사건도 일어났다. A 씨는 트랜스젠더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내 삶은 다른 사람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시되고 반대를 당한다. 대학을 가고자 하는 당연한 목표조차 누군가에게는 의심과 조사대상이다”고 호소했다.

혐오와 차별로 인한 고통으로 세상을 등진 이들도 많다. 지난달 24일에는 성 소수자 활동가이자 트랜스젠더인 김기홍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는 2017년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 공동조직위원장 등을 맡으며 성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운동에 앞장섰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자신처럼 트랜스젠더 정치인인 임푸른 정의당 예비후보를 위한 찬조연설에 나선 김 씨는 “성 소수자 사회에서 자살 기도, 죽음 소식은 특별한 일이 못 된다. 마주하는 장벽이 그만큼 거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직 트랜스젠더 인권을 위한 법은 없어··· 제도적 장치 마련 시급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회적으로 트랜스젠더를 보호하는 장치도 미흡하다. 인권위는 "트랜스젠더가 다양한 영역에서 혐오와 차별을 받는 반면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과 제도, 정책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트랜스젠더 인권 단체 '트랜스젠더해방전선'이 지난해 25개 정당에 트랜스젠더 관련 정책 질의서를 보낸 결과 녹색당, 민중당, 정의당 등 7개 정당만 답변서를 보냈다. 아직 트랜스젠더 보호 제도 마련을 위한 논의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전 세계적으론 성 소수자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행정부는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운동선수의 여성 경기 출전 금지 관련 소송에서 금지를 지지하는 이들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다. 또한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학습권 보장, 병역 금지 무효화 등 트랜스젠더 보호를 위한 법안에 서명하기도 했다.

유럽에선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2011년 폴란드에선 유럽 최초로 트랜스젠더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독일에서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출산하기도 했고, 영국은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남녀 같은 성별 구분이 없는 성 중립적인 화장실을 도입한 바 있다.

전문가들도 국내에 트랜스젠더를 위한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권위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여러 삶의 영역에 걸쳐 심각한 상황이다. 범국가적인 차원으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응이 필수적이다. 차별금지법이나 평등법 등 차별 관련 법령 제정‧개정을 통해 트랜스젠더 인권 보장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이 중요한 과제다"고 밝혔다.

성 소수자 차별 반대 시민단체 무지개행동의 이종걸 집행위원은 "트랜스젠더 문제는 가족, 학교, 사회 내에서 지속해서 문제가 드러난다. 주민등록번호에서부터 성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을 통해 성별 변경 진행하는 조건도 가족 동의서, 의료 보증서, 신체적 치료 여부 등을 따져 까다롭다. 게다가 구직 활동도 어렵고 직장을 가질 수 있는 교육도 쉽지 않다. 사회 전반적으로 트랜스젠더가 자기 존재를 받아들이고 끝까지 살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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