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1절 102주년을 맞아 3·1운동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애국 투쟁이었다며 일제의 탄압을 규탄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일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실장인 위광남 부교수와의 대담 기사를 통해 "강도 일제를 반대하는 3·1 인민봉기가 일어난 때로부터 102년이 됐다"며 "3·1 인민봉기는 우리나라 민족해방 투쟁사에 자기의 뚜렷한 자욱을 남긴 전민족적 반일 항쟁으로서 오늘도 전체 조선 인민의 기억 속에 역력히 남아 있다"고 밝혔다.
신문은 "3·1 인민봉기는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애국 투쟁이었다"며 "그러나 일제는 우리 인민의 정의로운 항쟁을 야수적으로 탄압하는 극악한 범죄적 만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도 3·1을 맞아 일본을 규탄했다. 신문은 "영토팽창 야망과 인간증오 사상을 버리지 못한 일본 반동들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피 비린 과거 죄악에 대해 반성하고 응당 사죄와 배상을 할 대신 파렴치한 역사 왜곡과 조선반도(한반도) 재침 책동에 의연히 매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3·1 운동이 평양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 시작된 대중적인 독립시위 투쟁을 첫 봉화로 하여 봉기는 전국적 판도로 급속히 번져졌다"며 3·1 운동이 서울의 탑골공원이 아니라 평양에서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위 부교수는 노동신문 대담에 "평양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일제 헌병과 경찰은 총출동해 현장에서 평화적 시위자들에 대한 폭행을 감행했다"며 "3·1 인민봉기는 평화적인 시위였지만 일제는 완전무장한 침략무력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3·1절을 반(反)외세 성격을 부각하며 의미를 두지만, 국경일·공휴일로 지정하지는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