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일본 정부는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기조 변화를 진정성 없는 '보여주기식 행보' 정도로 보고 있어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의 호응을 끌어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반일(反日)·극일(克日)'에 집중했던 정부가 최근 '한·일 화해 모드'로 뒤늦게나마 기조를 선회했지만, 양국 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에 힘이 실린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1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청와대에서 (한·일 관계와 관련해) 의지를 갖고 여러 검토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고민하는 이유로는 조 바이든 미국 신(新) 행정부의 한·미·일 3각 공조 복원 의지 영향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일 양국 정부에 연일 한·미·일 3국 협력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일 갈등 해결을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2일 첫 전화 협의를 통해 한·미·일 협력 지속이 중요하다는 데에 공감했다.
블링컨 장관은 하루 전인 11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한·미·일 3국 조율 등을 통한 역내 협력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미국 국무부는 전했다.
이와 함께 한·일 갈등이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정부 인식도 기조 선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일 양국은 지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로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의 관계를 맞았다.
이에 더해 최근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겹치며 양국 관계는 또 한 차례 고비를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진행한 신년기자회견에서 정부의 한·일 갈등 해결 노력과 관련, "(최근 위안부 판결 문제가 더해져) 솔직히 조금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배경에서 한국 정부가 양국 관계 개선책을 제시한다고 해도 일본 정부가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우려를 더한다.
일본 측은 최근 한국 정부의 기조 변화에 대해 '결국 바이든 정부 코드 맞추기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양 교수는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과연 일본 측이 요구하는 어떤 가시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그 과정에 예고된 여러 난관이 많아서 실질적인 관계 개선까지는 아직 요원하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한·일 갈등 해결 과제 앞에 놓인 난관으로는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들의 동의 문제와 국내 여론 외에도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가는 점과 대북 정책 위주의 외교·안보 라인 인적 구성이 꼽힌다.
양 교수는 "(정부의) 지금까지 관성으로 보자면 한·일 관계에 대한 우선순위가 (남북 관계보다) 위에 있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