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소통하자고?...기업들 '탄소제로위원회'에 회의적 시각

2021-02-0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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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때는 모른 척, 지금은 기업과 소통 강조

"하지 못하는 걸 하라고 한다"..."벌 받는 기분" 하소연

"산업부 전략보다는 기업 환경이 더욱 중요" 지적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추진 중인 업종별 ‘탄소중립협의체’를 두고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는 뒤늦은 소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탄소배출권과 관련한 기업들의 건의 사항은 묵살하고, 도리어 이제 와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대책을 내라고 압박한다는 것이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탄소중립협의체 시리즈 두 번째인 '석유화학탄소제로위원회’가 이날 오후 대전 유성구 소재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앞서 지난 2일 출범한 철강업계 탄소중립협의체인 '그린철강위원회'에 이은 것이다. 산업부는 향후 시멘트, 정유, 자동차 업계 순으로 위원회를 만들어 갈 계획이다.

위원회 회의는 각 기업들이 탄소중립 정책을 공유하고 업계 전문가들이 탄소중립 기술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산업부는 표면적으로는 회의 과정에서 업계 건의를 듣고 관계부처‧유관 기관과 협의해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산업부는 연말 발표 예정인 ‘산업대전환 전략과 비전’을 위한 자료 취합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업종별 탄소중립 위원회 출범이 끝나면 각 위원회 회의 내용을 토대로 연말 산업대전환 전략과 비전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각 기업들의 탄소중립 R&D(연구개발)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다만 현재까지는 구체적인 지원 방법이 나온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산업부 측은 업계 건의사항 정책 반영에 관해서도 위원회를 위한 별도 절차가 있는 것이 아닌 기존에 존재하는 각 부처 소통 창구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위원회 참여 기업들은 "벌 받는 기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석유화학 기업 관계자는 “굴뚝에서 연기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기업들을 모아두고는 연기가 왜 나오냐고 묻고,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하고 있다”며 “국내 석유화학 업계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말뿐인 위원회가 아니라 규제를 완화하고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비판은 앞선 그린철강위원회 출범식에서도 나왔다. 당시 출범식에 참석한 한 철강사 관계자는 “산업부가 경쟁사들끼리 모여 어떤 얘기를 하길 바라는지 모르겠다”며 “일단은 들어보자고 모이긴 했지만 단순 의견 공유가 기업 발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탄소배출권 등을 둔 정부의 일방적 소통에 이미 실망한 기업들이 산업부가 추진하는 탄소중립위원회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산업부가 준비 중인 산업대전환 전략을 두고 “산업부가 기업 전략을 짜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기업들이 스스로 잘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앞서 중대재해법 등에서 규제 당사자가 되는 기업과 소통하지 않으면서 산업대전환 전략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비판했다.

올해 초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주요 경제 단체들은 신년사 등을 통해 "한국 기업에만 족쇄를 채우는 규제는 거둬달라“로 하소연했지만 중대재해법 제정 등에 있어 기업 의견이 반영된 것은 사실상 전무하다.

정부와 기업의 일방적인 소통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소통을 바라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탄소중립위원회는) 당장 기업들의 건의사항을 듣고 해결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유관부서와 협의를 진행해 나가면서 건전한 탄소중립 경영이 정착하길 지원하자는 취지”라며 “이 같은 내용은 산업부가 추진 중인 탄소중립 전환촉진에 관한 법률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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