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업은 지금] 2만곳 영업? "폐업조차 못하는 심정 오죽하랴" 여행사의 절규

2021-02-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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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자원금 갚아야 폐업 가능…아르바이트로 고정비도 감당 어려워

"코로나19 여파에 힘들다고 하더니, 그래도 2만개 넘는 여행사가 아직 운영 중인가보네요." 사정을 모르는 이가 이렇게 물었다. 
"말도 마세요. 죽을 지경입니다. 융자 원금을 갚아야 폐업할 수 있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폐업을 합니까.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죠." 한 중소 여행사 사장이 울분을 토했다. 그는 "폐업하고 싶어도 폐업할 수 없는 상황에 몸도, 마음도 점점 피폐해져만 간다"고 토로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바이러스 감염에 하늘길이 막히자 여행업계는 '개점 휴업' 상태에서 최악의 1년을 보냈다. 팬데믹 상황 무급휴직을 비롯해 조직 축소, 휴·폐업에 이르기까지 '고정비 다이어트'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등록된 국내 여행사 수는 2만곳. 숫자만 놓고 보면 업계 상황이 '최악'은 아닌 듯 보이지만, 업계에는 문을 닫고 싶어도 닫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가 최근 내놓은 관광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까지 등록된 국내 여행업체(일반·국내·국외여행업) 수는 총 2만1647곳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2019년과 비교했을 때 감소한 곳은 불과 636개뿐이다. 지난해 3분기에 비해서 국내여행업은 오히려 150개 증가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초부터 불거진 코로나19 사태에 국내 여행업계 피해 규모만 10조원이 웃돌 것이라고 예측됨에도, 폐업한 여행사가 적다는 데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다. "아직 2만곳이나 되네. 상황이 좀 괜찮은가봐. 주가도 오르던데, 엄살 아니야?" 혹자는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업계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참담하기만 하다. 

지난해 최악의 보릿고개를 넘긴 여행사들은 백신 상용화 기대감에 힘입어 올해 업계 상황에 '볕'이 들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이에 다수 여행사는 올해 출발하는 해외여행상품 선예약을 받는 등 '희망'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1000명 웃돌던 확진자 수는 300~400명대까지 떨어졌지만, 정부는 여전히 모임 등을 제한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을 유지하고 있어 여행업은 달린 간판에 불도 못 켜며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장은 빚을 갚지 못해 폐업신고도 못한 채 대리전과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로 사무실 월세와 관리비 등을 충당하는 실정이다. 직원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여행업계 한 관계자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 2만여개 여행사 중 영업활동을 하며 매출을 내는 곳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매출은 1년째 제로에 수렴하는 상황에서 고정비는 다달이 나가는데, 왜 여행사들은 폐업을 하지 못할까. 바로 '관광융자' 때문이다. 

지난해 여행사 상당수가 문체부 등 정부와 지자체가 마련한 긴급융자를 받았다. 폐업을 하려면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관광기금 융자를 받은 한 여행사 대표는 "매출은 없는데 임대료와 관리비, 4대보험 등 고정비는 매달 충당해야 한다. 직원도 내보내고 고정비 감당이 힘들어 대리운전도 하고, 택배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빚 갚을 일이 깜깜하다"고 말했다.

업계 전반이 벼랑 끝에 몰렸다. 지난해 자유투어와 NHN여행박사, 롯데관광 등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한 데 이어 최근에는 국내 대표 여행사인 하나투어마저 구조조정 절차에 돌입하는 등 여행업계 실업대란이 목전에 와 있다. 

정부는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여행업 특별지원팀을 가동하고 여행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전직 지원을 하기로 했지만, 업계는 회의적이다.

최근 국민청원에 청원글을 올린 청원인은 "코로나19 사태 시작 직후인 3, 4월에는 예약분 취소·환불 처리때문에 성수기처럼 사무실이 내내 분주했다. 여행관광업계의 매출은 제로로 수렴했고 거의 모든 영업활동이 올스톱됐다. '전대미문'이란 표현이 실감나게 수십년 여행업에 종사한 사람들도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중국과의 사드 분쟁, 이어진 일본과의 무역 분쟁, 역대급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3연속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계. 청원인은 이미 영업제한을 받고 있음에도, 정부가 지정한 '영업제한·금지업종'에 비해 턱없이 미비한 지원을 꼬집었고, 영업 네트워크의 훼손, 노하우의 상실 등에 대한 복구와 복원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행업은 평화에 기여하는 산업이자 평화에 의존하는 사업이기도 하다"며 "여행업은 인간망에 기대는 사업이기에 기계화로 점차 사라져 가는 단기적인 일자리 창출에 지금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높은 기여가 가능하다는"고 강조하고, "더 늦기 전에 절실한 도움의 손길을 달라"고 호소했다.

정부를 향한 외침이 비단 청원인의 글뿐만은 아니다. 지난달 업계는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며 처음 거리로 나서 목소리를 냈다. 

업계는 "관광융자는 결국 빚이다. 빚내서 빚 갚는 '돌려막기식' 행위를 언제까지 지속할 수는 없다. 여행 생태계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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