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 내 유력 정치인들의 연이은 성 비위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이를 정쟁 도구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최근 진보진영 쪽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보수진영도 사실 젠더문제에선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진영을 떠나 근본적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아울러 젠더 문제를 선거용으로 사용하거나 '내로남불식' 대처로 일관한다는 지적이다.
같은 날 국가인권위원회는 약 180일간 직권조사를 끝내고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업무와 관련해 피해자 A씨에게 행한 성적 언동이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A씨를 성폭행한 전직 서울시장 의전공무원 재판을 통해 법원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A씨를 성추행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밝힌 데 이어 두번째로 나온 '공식 인정'이다. 하지만 법원이 '성추행'이라고 표현한 것에 비해 인권위가 '성희롱'이라고 정의하면서 둘 사이에는 상당한 온도차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피해자다움'도, '가해자다움'도 없다
장혜영 의원은 피해사실이 공개된 직후 입장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다움'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건 발생 당시부터 지금까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피해자라는 것에 정해진 모습은 없고, 그저 수많은 피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다움'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있지 않다"며 "누구라도 동료·시민을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권력형 성 비위 사건에서 그동안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던 진보 인사조차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비판이다.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비슷한 지적을 내놓았다.
인권위는 성 비위가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고 판단했다. 정치적 논리나 진영 문제가 아닌 '권력'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 사건 종합의견을 통해 "통상적으로 권력 우위에 있는 남성이 여성에게, 직장 내 높은 지위에 있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게,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성희롱을 행사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시장은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반면 피해자는 하위직급 공무원으로, 두 사람이 권력관계 혹은 지위에 따른 위계관계라는 것이 명확하다"며 "위계와 성 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조직 문화 속에서 성희롱은 언제든 발생할 개연성이 있으며, 본 사건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가부장적 문화...'진보 대 보수' 진영적 접근 경계해야
학계에서는 진영을 떠나 권력형 성 비위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정치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현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는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활동가들이 문제제기하고 사생활이 무너질 걸 알면서도 (공개)하는 이유는 혼자를 위해 하는 게 아니다"라며 이를 진영논리로 정쟁 도구로 삼으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진보 진영에서 터지는 성 비위 사건을 보수 진영에서 문제제기하는 것 자체도 맞지 않다고 봤다. 그는 "민주당·정의당 쪽에서 터져 마치 한쪽만 가부장적 문화가 남아있고, 도덕성에 타격을 입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보수 진영에서는 문제제기조차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파 진영 여성들이 성희롱·성폭력과 관련 문제 관련 발언을 했을 때 피해가 오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진보 진영은 활동가들이라는 지지 기반이 있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그것조차 없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측면에서 피해 자체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번 정의당 대처는 잘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는 "가해자가 범행을 인정하고 빠르게 사과한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당뿐만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서 모든 권력이 남성 중심인 상황을 깨고, 여성을 쉽게 생각하는 문화에 대해 각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박 전 시장 건에 대해서 오히려 진보 진영 내부에서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주변에서 피해자에게 비난을 하는데, 이는 고인을 돕는 일이 아니다"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