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13일 국민의힘이 진행 중인 국가정보원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강제종결했다. 민주당은 지난 10일까지만 해도 “야당을 존중한다. 필리버스터를 종료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불과 이틀 만에 이를 뒤엎고 전날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서를 제출했다. 이날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 180표, 반대 3표, 무효 3표로 필리버스터 종결안은 가결됐다.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내용(3년 유예)의 국정원법 개정안은 바로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국민의힘은 곧이어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탈북민 출신 태영호 의원이 첫 주자로 나섰다. 민주당이 바로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24시간 후 강제로 종료된다.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강제 종결 이유로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을 명분으로 삼았다.
민주당의 기류가 변화한 것은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 58명 전원이 필리버스터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다. 초선의원들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집권 여당과 문재인 독재 권력은 오직 180석의 힘을 믿고 온갖 불법과 탈법으로 모든 법안을 독식하고 있다”며 “오늘부터 초선 의원 전원이 철야 필리버스터에 돌입한다”고 했다. 조태용‧김웅‧윤희숙 의원 등이 차례로 본회의 단상에 올랐다. 윤 의원은 12시간 47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진행, 이종걸 전 민주당 의원이 2016년 세웠던 최장 기록을 갱신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24시간 내내 정부 비판 발언이 이어지고 여론이 반응하자, 민주당은 황급히 방침을 바꿨다.
코로나19 확산세를 명분으로 삼았지만, 이미 대부분의 법안이 처리된 상황에서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필리버스터로 인한 여론 악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및 인사청문회 등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법 제56조는 ‘본회의 의결이 있거나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회의 중에는 개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필리버스터 중엔 상임위원회를 열 수 없기 때문에 개정된 공수처법에 따라 공수처장 후보자를 추천하더라도 인사청문회를 진행할 수 없다는 얘기다.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 등 4개 부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이 내년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갈 경우 향후 정국 스케줄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 의결을 시도하거나 직권으로 상임위를 개회토록 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여당 편’을 들었다는 정치적 부담을 피해갈 수 없다. 국회법 절차에 따라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하는 게 부담이 덜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읽힌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이) 처음에는 호기롭게 하는 데까지 해봐라, 언제까지 할 수 있겠나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며 “초선 의원들이 모두 가담하고, 윤희숙 의원이 최장 시간 필리버스터 기록을 경신하자 이제는 야당의 입을 막겠다고 저렇게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