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프랜차이즈 'BBQ' VS' BHC'의 ‘치킨전쟁’은 권모술수‧법적 소송‧횡령과 갑질 논란으로 뒤엉킨 3류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최근 ‘윤홍근 BBQ회장 횡령사건’에 박현종 bhc 회장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치킨전쟁’은 놀라운 반전과 함께 극을 향해 치닫고 있다.
두 회사는 2013년부터 물류·상품 계약, 영업비밀 침해, 손해배상 등을 두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며 갈등의 골은 깊어져왔다. 7년간 소송만 22건, 소송액만 4000억원이 넘는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지요. 매년 매출 30~40% 올라갔다고 언론에 떠들 때 가맹점주들은 얼마나 피땀 흘리는 줄 압니까?“(MBC 'PD수첩' 중) 본사 갑질에 14년 넘게 해온 가게를 하루아침에 내놔야했던 한 50대 BHC 가맹점주의 절규다.
2013년 BBQ로부터 분사한 후 매년 영업이익률 30~40%를 기록하며 수백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챙긴 BHC. 그런데도 가맹점주들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치킨프랜차이즈 ‘빅3’로 올라선 BBQ‧BHC의 갈등 내막과 ‘성공신화’ 속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BBQ, 자회사 BHC, 사모펀드에 매각…박현종 회장, BHC 인수=
두 회사의 법적공방은 지난 2014년 BBQ가 BHC를 사모펀드에 매장 수를 부풀려 1130억원에 매각하자 사모펀드 측이 국제상공회의소(ICC)에 중재판정을 내면서부터 시작됐다. ICC는 2017년 BBQ가 98억원을 배상하라고 중재판정을 내렸다.
매각 당시 BBQ 측 총괄은 박현종 당시 글로벌사업부 대표. 그는 BHC가 분리되면서 BHC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고, 4년 후 사모펀드로부터 BHC를 사들여 오너가 됐다. 매각을 총괄했던 박 회장이 본인이 잘못했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나 다름없어 BBQ는 당황했다고 한다.
재판이 끝난 후 BBQ 측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과거 BHC 직원들이 쓰던 컴퓨터를 포렌식하는 과정에서 각종 증거들이 쏟아졌는데, 이중 박현종 회장이 매각 당시 총괄하며 주고받았던 메일만 798건이 발견됐다. 국제소송이 진행중일 때 BBQ 내부전산망에 BHC 측이 무단 접속한 기록도 남아있었다. BBQ는 이를 근거로 박 회장을 고발했고, 지난달 검찰은 박 회장을 기소했다.
이밖에도 BBQ가 10년간 소스 등을 BHC로부터 공급받겠다는 계약을 해지하면서 BHC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고, BBQ는 박 회장을 포함한 임직원이 영업비밀을 빼갔다며 맞고소한 일도 있었다.
‘BBQ죽이기’에 BHC 박 회장이 관여한 의혹도 최근 몇몇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이른바 ‘윤홍근 BBQ회장 횡령 의혹’ 사건을 제보한 인물을 배후에서 박 회장이 사주했다는 내용이다.
2018년 KBS는 전 BBQ 직원인 제보자 A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윤 회장이 회사 자금을 자녀유학비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보도 이후, BBQ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경찰 수사가 이뤄졌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올해 10월, A씨는 한국일보 보도를 통해 ‘제보는 거짓’이라고 돌연 말을 바꿨다. 그는 박 회장이 비행기표를 끊어주며 직접 들어와 제보하도록 종용했고, 경찰과 언론, 변호사도 연결해줬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사건 배후로 지목된 BHC와 최초 보도한 KBS는 'A씨가 BBQ에 매수당했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오너리스크’가 터질 때마다 매출 급감으로 어려움을 겼었던 BBQ·BHC 가맹점주들은 마음을 졸이며 뉴스를 보고 있다. '치킨전쟁'의 진실은,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뉴스가 나올 때마다 브랜드 이미지는 추락하고, 함께 매출도 고꾸라진다.
실제 2018년 윤 회장의 갑질‧횡령 보도 이후 BBQ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몰렸다. 그해 11월 BBQ 가맹점주 매출이 급감했고, BBQ는 50%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319억원을 지출해야 했다. 이후 치킨업계 1위던 BBQ는 지난해 매출 기준 3위로 떨어졌다. 매출 2위 BHC(3186억원)와 3위 BBQ(2438억원) 매출 격차가 2018년 72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750억원 수준으로 확대됐다.
‘치킨전쟁’의 또 다른 피해자는 소비자다. BBQ와 BHC가 경쟁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가격을 올리는 바람에 ‘2만원대 치킨’을 먹게 됐다.
최근에는 BBQ가 1000원 부족한 30000원짜리 신제품 '치본스테이크'를 내놓으면서 치킨 가격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크기가 큰 닭다리 6조각에 특색 있는 소스를 바른 이 치킨은 조각당 5500원에 육박, 소비자들로부터 ‘비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BHC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해 인기몰이로 업계 2위 일등공신인 ‘뿌링클’ ‘맛초킹’ 메뉴는 배달료까지 합치면 2만원을 훌쩍 넘는다.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에는 계육 등 식자재비 외에도 과도한 광고비와 판촉비, 가맹점 관리비 등이 포함돼있다.
그러나 어느 업체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경기도가 한국유통학회와 ‘치킨 프랜차이즈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본사가 점주에 공급하는 물품 중 닭고기, 소스류 등 주 원재료의 약 80%는 본사로부터 강제로 사야 했다. 유산지(종이호일), 치즈 등 부재료의 강제 구입 비율도 약 50%를 차지했다.
그리고 “닭고기당 광고비 300원을 부담시키는 본사정책에 반대한 뒤에 위생 점검 시 면도 불량, 운영시간 위반을 이유로 가맹 해지경고를 받았다”는 가맹점 사례도 있었다.
실제 BHC는 ‘치킨 튀김기 강매’ 논란을 빚기도 했다. 본사가 한 대에 90만 원에 달하는 튀김기를 구매하도록 가맹점에게 강요했다는 내용이다. ‘무조건 진행되어야 되는 사항이며, 협의가 없고 전화하셔도 소용없습니다’라고 적힌 본사의 문자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BHC가맹점주들은 또 “BHC를 거치는 순간 (원재료 가격이) 두 배가 넘는다”며 2018년 본사와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가맹점주들은 박 회장이 주도로 사모펀드에서 회사를 인수한 후 높은 금융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가맹점에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박 회장은 그해 국감에 출석해 “가맹점주들과 상생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집회에 참석한 가맹점주들에게 민·형사 소장과 계약갱신 거절 등의 통지서를 날렸다.
‘오너리스크’에 매출이 급감해도, 본사 갑질로 불공정한 계약을 맺거나 심지어 일방적으로 계약이 해지되더라도 가맹점주들은 묵묵히 견딜 수밖에 없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노동자들처럼 '가맹점의 단체협상권'을 제도화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공정위가 입법 예고한 가맹사업법 개정안에는 가맹점주들이 요구해온 △가맹본부의 협의 의무화 △가맹계약 갱신요구권 10년 제한 삭제 △영업지역 독점배타화 등이 전부 누락됐다. 대신 가맹점주 단체 구성 신고제와 광고판촉비 가맹점주 사전 동의권 등은 포함됐다.
본사 갑질로부터 최소한의 기본권과 재산권을 지킬 수 있도록 가맹점주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어느 때보다 더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말뿐인 '상생'이 아니라 '따뜻한 연대'의 손길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