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최신형 정치팀장·정리=신승훈 기자] 강신업 정치평론가 겸 변호사는 본인의 상황을 ‘권토중래’, ‘와신상담’이란 두 사자성어로 표현했다. 지난해 바른미래당 ‘영입인재 1호’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약 6개월간 현실정치를 압축적으로 경험했다.
강 변호사는 여의도 정치권에서 한 발짝 물러나 다양한 사회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변호사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면서도 방송 출연, 칼럼 기고를 통해 사색과 연구의 결과물들을 공개하고 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은 어디일까. 강 변호사는 고민하지 않고 “정치”라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2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 정국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진단했다. 다음은 강신업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짧지만 강렬했던 여의도 현장 정치를 경험했다. 안에서 본 한국 정치의 실상이 궁금하다.
“여의도 정치는 ‘정글’이다. 여러 가지 야망과 이권이 부딪치는 곳이다 보니까 철저히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는 살아남기 힘든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의 이익만 존재하는 곳이다. 본인보다 누군가가 낫다고 해도 그 사람을 추대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여의도에는 ‘추대문화’ 자체가 없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은 어디에서 기인한다고 보나.
“정치권에 뛰어든 사람 중에 정치가 전문적인 것이 아니라고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당선) 되기만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강조했는데 철인이란 수양을 하고 교육을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인품을 기르고 실력을 길러 그야말로 현인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배지만 달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한데 이 때문에 우리나라 정치가 아마추어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추 장관은 인사권, 감찰권, 수사지휘권 드디어 직무배제에 이르기까지 헌정사상 거의 행사되지 않거나 극도로 자제된 권한을 무분별하게 행사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쫓아내야만 한다는 조급성을 보이고 있다. 윤 총장이 현 정권에 칼을 들이댄 것을 안 것이다. 울산선거 부정, 라임·옵티머스 사태, 원전비리 등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추 장관한테 있는 것이다. 이에 윤 총장은 저항하고 있다. 이것이 이 사태의 본질이다.”
-문재인 정부의 명분은 검찰개혁이다. 법조인 출신이 본 문재인식 검찰개혁의 문제점은 없을까.
“실제 정권이 검찰개혁을 한다고 했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검찰개혁은 제도를 통해 ‘시스템 개혁’을 하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FBI처럼 중앙수사본부를 둬 여기에 수사권을 주고 검찰은 기소권만 갖도록 하면 된다. 또 전관예우 병폐를 없애기 위해선 판·검사 시험과 변호사 시험을 완전히 분리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검찰의 ‘법관 사찰’ 문건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찰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라고 보나.
“재판부를 사찰했다고 이야기를 하려면 불순한 목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캔다든지 불법적으로 도청을 했다는 것이 나와야 한다. 지금 보면 결국 검찰의 공소유지에 필요한 참고자료가 대부분이고 그 내용도 인터넷에 회자되는 이야기를 취합하고, 법조인 대관에 나오는 얘기가 대부분으로 보인다. 이것이 관행이라고 해서 합법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총장 직무를 배제시키고 징계를 통해 해임할 만큼 중대한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사찰 의혹을 받는 문건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비판받을 부분이 아닌가.
“중요한 지점이다. 그러나 변호사들도 법조인 대관을 보고 저 판사가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 어느 대학교를 나왔는지 정도는 알고 재판에 들어간다. 또 다른 사건보다 중대하고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칠 재판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윤 총장이 직접 만든 것도 아니고 넘겨주라고 한 것을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도 있다. 결국 추 장관이 법관사찰을 핑계 삼아 윤 총장을 쳐내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추미애·윤석열 사태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윤 총장이 외로워질 수 있는 상황에서 검사들이 들고일어났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또 대한변호사협회, 참여연대, 시민단체에서 윤 총장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법조인의 대다수는 추 장관이 ‘법치주의를 파괴했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의 결단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비겁하다고 본다. 비겁한 이유는 법을 알아서다. 문 대통령은 본인의 행위가 가져올 파장을 알고 있다. 행위 하나하나가 법적 평가가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어떤 지시나 판단을 내렸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직권남용이나 권리행사방해죄 등에 엮이기 싫은 것이다.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레임덕은 시작됐다.”
-내년 4월 서울시장 재보선 판세는 어떻게 전망하나.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민주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원래 박원순 전 시장의 사망,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사퇴 이유를 보면 당연히 야권이 유리해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돌출변수가 있다. 지난 총선을 보면 총선 직전에 돈(재난지원금)을 풀었다. 그래서 이번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선제적으로 재난지원금 얘길 꺼낸 것이다. 매표행위를 희석시킨 것이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도 여권에선 100% 돈을 풀 것으로 보인다. 돈을 받으면 실제 표심이 흔들리게 돼 있다. 그래서 아직 우리나라가 후진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야당이 이길 수 있는 필승 셈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올드보이들이 대거 나오면 미스터 트롯식 세탁이 없는 한 새로운 감흥을 일으키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주자들이 모두 나서서 미스터 트롯식 경선을 해서 다른 사람이 본인의 어깨를 밟고 올라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이타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친다면 야권이 승리하지만, 본인 생각만 하면 질 것이다.”
-내년 재보선이 끝나면, 곧바로 대선 정국이다. 차기 대선은 어떻게 전망하나.
“야권은 서울시장을 가져와야 차기 대선이 쉬워진다. 서울시장을 뺏기면 어려워질 것이다. 기초의원이 전부 민주당인 상황에서 조직선거로는 쉽지 않다. 또 여권에는 이낙연, 이재명, 정세균 등 대권주자가 있지만, 야권에는 대선 주자가 없다. 과연 윤석열 총장이 유력한 대권주자가 되느냐가 문제다. 원래는 힘든 일인데 지금 추미애 장관이 밀어 올리고 있다. 야권의 대권주자는 현 정권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어야 하는데 윤 총장이 그 지점에 있다. 만약 야권에서 윤 총장을 영입한 뒤 공정경쟁을 통해 야권 대표주자로 만들면 여권 후보와 1대1로 붙어도 승산이 있다고 본다.”
-다만 윤 총장이 제2의 황교안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동의하나.
“윤석열 총장은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와는 다르다. 황 전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사라져야 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윤 총장이 권력의지를 가졌는지 반신반의했었다. 그러나 국정감사장에서의 행보라든가 추 장관의 탄압을 버티는 것을 보면 ‘내가 검찰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카리스마가 보인다. 이런 의지가 권력의지로 승화되고 있다.”
-최근에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민법과 형법은 적어도 2500년의 역사를 지녔다. 형법을 보면 절도는 6년 이하 징역이지만, 사기죄는 10년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절도는 대개 배가 고파서 훔치는 것이다. 그러나 사기는 배가 안 고파도 본인 욕심 때문에 사기를 치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법철학이 깔린 것이다. 그런데 특별법 만들어서 무조건 강하게 처벌하는 현상은 법치를 파괴하는 것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여야 정치권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인터뷰 도중 못한 말이 있다면.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란 말을 좋아한다. 최고의 개혁은 물과 같다고 한다. 상선약수를 실천한 군주가 바로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 글을 알고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글만 알면 실제 사람 간에 차이가 없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민도를 올리고 이 나라에 평등과 자유가 번영하게 했다. 결국 세종대왕식 통치가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