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은 KCGI 등이 제기한 한진칼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1차 심문을 진행했다.
신주 발행 자체만 놓고 보면 큰 이견은 없다. 한진칼은 주력 자회사인 대한항공 비중이 크고 여기서 발생하는 배당금이 주 수익원이다. 산은이 주식 인수 형태로 자금을 지원하면 한진칼은 수익 규모에 따라 배당을 실시하면 된다. 부채 형태로 자산 확대 시 그 조건에 따라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한진칼 신주 발행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야 하는 대한항공이 그 이후에도 체력을 비축할 수 있는 방안이다. 다만 이 경우 특정 기업에 대한 자본 확충 특혜 시비가 발생할 수 있어 정당성 측면에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통상 국책은행은 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때 대출 형태로 지원한다. 산은은 부실기업에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으로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메자닌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이자율은 결코 낮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시아나항공이다. 산은은 아시아나항공 영구 CB를 인수하면서 연 7.5% 고금리를 수취하고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는 이자율이 오르는 구조로 자금을 지원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전환권 행사를 통해 대주주로 등극도 가능하다.
기업 상황에 따라 대출 형태가 아닌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 투자도 단행한다. 일반 우선주는 물론 전환우선주(CPS)나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도 해당된다. CPS나 RCPS는 보통주로 전환이 가능하지만 그 시기가 보통 발행 후 5~10년이며 RCPS는 발행회사가 만기에 되사는 조건도 포함된다. 배당 우대(수익 발생 시)는 물론 각종 조건을 달아 위험을 줄인다. 대표적인 사례는 현대중공업그룹과 산은의 대우조선해양 ‘빅딜’ 과정(RCPS 거래)에서 볼 수 있다.
산은의 한진칼 보통주 인수는 재무부담 경감에 부합하지만 자금회수 측면에서는 메자닌이나 우선주 대비 안전장치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이는 산은이 한진칼에 대한 경영 감시를 강조한 이유로 풀이된다. 안전한 자금회수 확보에 준하는 반대급부 명분이다. 기업 정상화를 우선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은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양사 주채권은행이다. 그 입지만으로 이미 과거 수많은 기업들에 대한 경영 감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산은은 대출 형태는 차치하더라도 왜 우선주 형태는 고려하지 않았는지 명확한 답변이 필요하다.
KCGI 관계자는 “산은이 통상 기업 지원 방식이 아닌 다른 형식을 택했는지 여부가 쟁점”이라고 말했다.
◆EB 투자와 대한항공 주식 담보...산은, 경영권 분쟁 우려
산은이 해명해야 하는 부분은 또 있다. 산은은 한진칼 제3자 배정 유증에 참여하는 동시에 교환사채(EB, 3000억원)도 인수한다. CB나 BW가 아닌 교환사채(EB, 3000억원)를 통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진칼이 발행한 EB 교환대상은 대한항공 주식이다. 이 투자를 통해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대한항공 주식에 대한 담보권(교환대상)이다.
앞서 산은은 지난 5월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ABS 7000억원, 영구채 3000억원 포함) 규모의 자금을 지원했다. 자구안(2조원 확보)이 이행되지 않으면 당시 한진칼은 대한항공 유증 참여로 취득하는 신주 전량(3000억원 규모)에 대해 채권단이 담보권을 행사하는 특별약정을 맺었다.
당시 산은 관계자는 “한진칼 경영권 분쟁 재점화 상황에 대비해 채권단에서 대한항공 주식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한진칼 경영권 분쟁을 줄곧 주시하고 있었다. 이번 EB 투자는 한진칼에 자금을 지원하면서도 대한항공 주식 확보를 통해 자금회수를 위한 일부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산은의 한진칼 EB 인수는 한진칼을 지원하는 동시에 경영권 분쟁에 따른 위험을 줄이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경영권 문제를 의식해 거래 구조를 만든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증과 EB 발행이 동떨어진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대한항공에 직접 자금을 지원했다면 CB 형태로 인수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