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마음대로 내 나라를 정할 수 있다면 일본을 선택했을 것이다. - 애국가 작사 무렵 윤치호 일기 1893년 11월 1일
∙ 자유·평화·화합·단결·개국 이념 등을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국가 제정이 필요하다. - 안호상 국가제정추진위원장 1983년
∙ 호주 국가 첫 소절 단어 ‘young’을 ‘one’으로 바꾸면 호주도 하나의 호주로 바뀐다. - 베레지클리안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 총리 <시드니 모닝 헤럴드> 2020.11.11.
1회 애국가관련 여론조사). - ‘애국가’의 치명적 결함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의 뜻에 반하여 국가로 불려오고 있다는 반민주성 반헌법성이다. -강효백
◆도저히 복종할 수 없는 ‘화려’ 한 어명을 내린 죄과로 몰락한 연산군
'절검'을 강조하고 '화려'를 금기시한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군주 중에 유독 '화려'를 좋아한 이단아, 연산군(燕山君, 재위 1495~1506년), 그는 도저히 복종할 수 없는 '화려' 두 마디 어명을 내린 후과로 반정(反正, 쿠데타)당했다.
1. 헌납 최숙생이 아뢰기를, “여러 군(君)과 옹주들의 혼례 때 ‘화려’와 사치를 힘쓰지 말고 검약하고 소박한 것을 힘써서 아래를 거느리면, ‘화려’·사치한 풍습이 저절로 끊어질 것입니다."하니, 왕이 이르기를, "다만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유래가 벌써 오래되었으며, 법을 제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받들어 행하지 않는 것이니, 법을 제정하더라도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 연산군일기 48권, 연산 9년 2월 18일 을묘 1번째기사 1503년
연산군 몰락 3년전, 신하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하자, 임금은 아랫물이 맑아야 윗물도 맑다고 궤변을 늘어 놓는다. 왕과 왕족이 솔선수범하여 화려 사치를 금하는 법을 제정하자고 하자 연산군은 백성들이 법을 지키지 않을 건데 법을 고치면 무슨 소용있는가라는 궤변을 늘어 놓는다. 망할 징조가 보인다.
2. 곧 이어 전교하기를, "이것은 위생(魏生)의 시인데 시를 지으려면 이와 같이 ‘화려’해야 한다." 하였다. 연산군일기 63권, 연산 10년 7월 23일 경자 2번째기사 1504년
*몰락 2년전
3. 왕이 전교하기를, "시는 ‘화려’함을 귀히 여기거늘, 지금 지은 두 시사(詩詞)는 ‘화려’하지 못하니 고쳐 지어서 바치도록 하라." 하였다. -연산군일기 57권, 연산 11년 1월 30일 병진 1번째기사 1505년
*몰락 1년전
4. 흥청(興靑)*의 진연 등에 드는 비용이 많고 ‘화려’하다. 여객(女客)의 가슴에 이름을 달아 고움을 표시하다. 채화(綵花)를 꽂고 금은으로 꾸며서 정교하고 ‘화려’함을 다하였다.
- 연산군일기 58권, 연산 11년 5월 5일 기축 2번째기사 1505년
*몰락 1년전 흥청망청(興淸亡淸)은 연산군이 채홍사(採紅使)를 파견하여 각 지방의 아름다운 처녀를 뽑고 각 고을에서 기생들을 관리하게 하고, 기생의 명칭도 '흥청(興靑)'이라고 칭하였다. 연산군은 '흥청'들을 모아 화려하게 놀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실각해서 생긴 말이다.
5. 태평한 때에 상하가 서로 화목하고 조야가 무사하니, 비록 ‘화려’한 연석(宴席)을 자주 베푼들 무슨 안 될 일이 있으랴. - 연산군일기 59권, 연산 11년 8월 12일 갑자 1번째기사
6. 왕이 전교하기를, "부모가 상중에도 출사(출근)하는 인원은, 옥색옷을 입지 말고 화려한 옷을 입으라." - 연산군일기 62권, 연산 12년 5월 19일 무술 7번째기사 1506년
7. 앞으로 내관은 부모상을 당했을 때 부음을 듣고 집에 나아가 3일 만에 복을 벗고 곧 예궐하며, 승전 내관은 소임이 긴요하니 부음을 들은 이튿날 저녁에 집에 나가 복을 입은 3일의 이른 아침에 예궐하되 모두 화려한 옷을 입으며, 대궐 밖에 나갈 때에는 도로 복을 입도록 하라. 어기는 자는 제서유위률(制書有違律)로 논죄하라." 하였다.
- 연산군일기 62권, 연산 12년 5월 19일 무술 8번째기사 1506년
연산군 말기의 ‘화려’ 어명은 해를 가면 갈수록 상궤를 벗어난다. 그래도 1에서 5까지의 화려 어명은 참을 만한다. 그러나 중종반정이 일어난 연산군의 마지막 해 1506년 왕의 ‘화려’ 어명은 선을 넘어도 너무 넘는다. 상중의 관리들에게 상복을 입지 말고 화려한 복장으로 출근하라는 어명은 화려함을 배격하는 성리학을 체화한 조선의 예사 관리들에게는 도저히 복종할 수 없는 ‘반정(反正)유발어명’ 이었다. 또한 왕의 명을 스스로 재촉하는 화려 방탕한 자살 어명이었다.
이로부터 100일이 채 지나지 않은 1506년(연산 12년) 9월 2일 조선 최초의 반정으로 폐위됐다 금상(今上·중종)이 경복궁에서 즉위하고 왕을 폐(廢)하여 교동현(喬桐縣)으로 옮겼다.
-연산군일기 63권, 연산 12년 9월 2일 기묘 1번째기사 1506년
◆‘화려강산’ 그 의혹이 화려한 단어의 출생 비밀은?
*'화려华丽‘ 라는 단어는 후한시대 대학자 순열(荀悅,148~209년)의 저서 『신감申鉴』에서 처음 등장한다. "무익한 물건을 구하지 말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쌓으려 하지 말고, 화려한 장식을 절제하라(不求无益之物,不蓄难得之货,节华丽之饰)". 즉 ‘화려’는 그 낱말의 탄생부터 절제하고 경계해야 하는 ‘사치’와 비슷한 부정적 용어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치의 동의어 ‘화려’와 독립국가의 영토 의미보다는 정치적 자치권이 취약한 '영지(領地)’라는 의미의 ‘강산’의 합성어 ‘화려강산’은 1890대 이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그 어떤 문헌에도 없다. 2020년 현행 애국가 후렴에만 있을 뿐 국립국어교육원 출간 『국어표준대사전』에도 없는 ‘화려강산’의 출생의 비밀은 도대체 무엇인가?
다음 애국가 작사자(압도적 다수설)이자 무궁화 도입자인 윤치호의 그의 내면 고백일기와 ‘윤치호’에 관한 일본어판 위키피디어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내가 마음대로 내 나라를 정할 수 있다면 일본을 선택했을 것이다.-
*1893년 11월 1일 윤치호 영문 일기
(도쿄에서 상하이로 떠나기 직전)
만약 내가 마음대로 ‘내 나라’를 정할 수 있다면 일본을 선택했을 것이다. 나는 지긋지긋한 냄새가 나는 중국이나 인종에 대한 편견 및 차별이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 미국 또는 지긋지긋한 정권이 존재하는 한 조선에서도 살고 싶지 않다. 오, 축복 받은 일본이여! 동양의 낙원이여! 세계의 동산이여!(1)*
*1893년11~12월 상하이 <일본어판 위키피디어 尹致昊>
상하이(*1984년 청일전쟁 전야 당시 상하이엔 일본 밀정들이 득시글했다.)에 잠복해 있던 윤치호는 남궁억(?)의 방문을 받았다. 둘은 서로 조선의 상징으로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정했으며 그로부터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가사를 넣었다.(2)*
◆‘금수강산’, ‘화려강산’에 비해 압도적 다수
3·1운동 격문,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 조선민족혁명당, 신한민보, 광복일보, 신한국보, 합성신보, 백범 김구등 임시정부요인 안중근 윤봉길 애국지사 1900년대~1945년대 '금수강산' 만 사용하였고 ‘화려강산’은 입에도 담지 않았다.
1. 3.1운동 격문 대다수도 ‘금수강산’
3.1운동 당시 15건 격문중 14건 ‘금수강산’을 ‘화려강산’은 1건(3)*에 지나지 않는다.(괄호안은 단체)
1) 한인 학살사건에 대한 선언서(대한독립단임시위원회)
우리 삼천리 금수강산의 소중한 자원들을 모두 빼앗아 갔으며 우리의 산업까지 집어삼켰습니다.
2) 찬동문(경성천도교본부)
삼천리 금수강산에 초목이 만발하고 10여년 동안 갇혀 있던 세상에 물고기가 뛰어 노는 듯...
3) 대한독립 일주년 기념 축하 경고문 (대한민국회)
여러 임금들께서 피땀을 흘려가며 지키고 보전한 금수강산을 강한 이웃나라의 침탈을 받아
4) 국치기념경고문( 대한청년외교단중앙부)
우리 혈족들이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피눈물을 뿌리고, 우리 청년들이 피와 뼈가 쓰리고
5) 금수강산 삼천리를 회복하기 위해, 단군 자손 이천만은 싸우기를 한 방울 피까지 (AKP단)
금수강산 삼천리를 회복하기 위해, 단군 자손 이천만은 한 방울 피까지 다해 싸우기를 ...
6)공직에 있는 동포에게 경고함(미상)
삼천리 금수강산은 우리 조상들께서 남기신 유산이 아니며 하늘이 부여하신 빼어난 자질을 .
7) 피눈물을 흘려라 (대한민국 국민대회 결사단)
피눈물을 흘려라 삼천리 금수강산을 짓밟던 꼭두각시의 발굽을 몰아내고
8) 대한국민노인동맹단 취지서(대한국민노인동맹단)
우리 단군 할아버지께서 대동 천지의 금수강산을 우리 민족의 생활의 근거지로 개척하시고
9) 조선국민보 제1호 (간도한족독립선언운동 의사부)
독립의 깃발을 내걸고 자유의 종을 울렸다. 금수강산은 기뻐서 춤을 추고
10) 원수를 갚는 노래 (怨復讎歌) 미상
반만년 전해 오는 조국과 자유 삼천리 금수강산 살진 국토를 빼앗은 큰 원수를
11) 동포에게 급히 알리노라!! - 권남선 등
산하는 아름답기만 하다. 과연 그렇다. 우리의 금수강산은 맑고 아름답다.
12) 대한독립선언서[경남 하동 배포] (박치화)
용맹하게 나아갑시다. 우리 오천년 신성한 역사와 삼천리 금수강산을 가진 우리 동포여!
13) 독립가(목포정명여중)
십 년을 참고 참다 이제야 터졌네 삼천리의 금수강산 이천만 민족 살았구나 살았구나
14) 경고문(조선노동회경성단)
온갖 꽃이 만발하는 금수강산에 천하에 비길 것이 없는 독립의 나무를 심었으니
2. 대한민국임시정부 포유문 금수강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경에 정착한 직후 임시약헌의 개정을 통해 주석제를 도입하고 김구를 주석으로 선출했다. 주석은 일반 국무를 처리함에는 ‘총리격’을 가졌고 그 외 정부를 대표하며 국군을 총감하는 권리를 설정했으니 ‘국가 원수격’을 가지게 됐다. 국무위원으로는 이시영, 조완구, 조소앙, 차리석, 조성환, 박찬익 6인이 선출되었다. 김구 이하 국무위원들은 「포유문布諭文」(1940. 10)을 발표하여 이번의 지도체제 정비가 ‘비상시국’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임을 알리고, “배달의 씨 다 일어나거라. 무엇을 하였든 자이던 다 각각 일어나거라. 우리 원수 외적을 쳐 물리치고 <금수강산>의 덫및을 거듭 빛내고 자손자손이 자유로 살아가자고 피바람 사나운 비에 싸우고 버티어 바른 힘줄을 이어오든 이 임시정부로 모이라. 있는 힘 가진 재능을 모두 바치라”고 호소했다.
3.대한민국임시정부 군관학교 제1회 졸업식
(독립신문 1920년 6월 10일 2면 )
우리는 우리 나라가 망할 때부터 우리밭에 우리 손으로 씨를 뿌려 우리 손으로 수확하여 우리소반에 올려 놓는 <금수강산(錦繡江山)>안에서 마땅히 향유할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생활을 하기를 맹서했습니다 작년 3월 1일에 독립운동이 시작됨으로로부터 우리는 우리에게 당한 이 책임을 다하지 아니하면 천만대 후손에게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4. 대한민국 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 제1권 제1기
광복군은 성공할 것이다. 우리 국가의 주권을 왜적에게 빼앗기고 또 우리의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왜적에게 유린을 당하고 있으니 국권과 강토를 찾지 아니하면 밖으로는 세계인류의 공영을 도모할 수 없고 안으로는 동포가 생존과 발전을 할 수 없다.
5. 조선민족혁명당 창립대표대회 선언(1935. 7. 5)
일본제국주의는 이후 자원이 풍부한 우리 금수강산(錦繡江山)을 일본의 상품시장, 기업 투자장으로, 또 공업원료와 식량 및 저렴한 노동력공급지로 변화시킴으로써 일본제국주의를 성장 발전시켰다.
6.<합성신보> 제16호, 1908년 5월 16일 일본헌병대 압수
열사의 흘린 피와 눈물은 국권을 만회하기에 족하고 간사한 무리들의 흉악한 계책은 민력을 소멸시킴에 충분하다고 분개하고, 4000년 역사의 <금수강산>을 왜놈의 말먹이로 맡겨둘 수는 없다고 외치며 모두 결사하기를 주장했습니다.
7. 고향의 노래(윤봉길 의사가 젊은 시절 고향에서 야학을 운영할 때 만든 작품)
가야산 맑은 기운 가슴마다에 서리었고, 천하절경 수덕산 눈앞에 펼쳐지네, <금수강산> 삼천리 무궁화 강산, 영원토록 빛나리라 우리 고향 시량리.
▪ 추헌수, 『한국독립운동』 2, 1972, 375~376쪽.
8.<신한국보> 제1호·제2호
동해의 자라도 마음이 있다면 우리처럼 슬퍼할 것이다, <금수강산>은 빛을 잃고, 광명한 일월도 또한 어둑어둑하다, 이는 누구의 죄인지 조금 생각하라, 우리 죄 너의 죄 구별이 있다, 가련한 우리 학교여, 자나 깨나 우리 마음, 나태한 악습과 의뢰하는 사상을, 모두 모두 한칼에 베어버리자
일제 강점기 ‘금수강산 vs 화려강산’ 게재 횟수 일간지 38: 1, 잡지 64: 2
일제 강점기(1910~1945년) 일간지와 잡지에 금수강산과 화려강산의 게재 횟수를 전수분석했다. ‘금수강산’은 <동아일보> 30회 <시대일보> 2회 <신한민보> 3회, <중외일보> 3회 일제강점기 발행 일간지에 모두 38회 실려있는데 비해, 화려강산은 <동아일보>에 단 1회 나온다. 그것도 무궁화 삼천리 애국가 후렴가사 뒤에 단 한 번 나온다. <대한협회회보> <태극학보> <대동학보> <개벽> <별곤건> <동광> <삼천리> 등을 비롯한 일제강점기 회보나 잡지 항일 친일 성향 불문 모두 64회나 나온다. 반면, ‘화려강산’은 대표적 친일잡지 <삼천리>에 단 2회 나오는데 그것도 역시 애국가 후렴 가사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세트로만 나온다.
∙ 국가란 나라의 주권, 독립과 존엄성을 대표하고 나라의 역사와 전통, 민족정신, 가치관, 목표, 국체와 정체를 반영하는 노랫말이다. 역사가 유구한 나라들도 시대변화에 따라 국가를 꾸준히 변화시켜 가고 있다. -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
◆‘화려강산’을 ‘금수강산’으로 고쳐 부르자
애국가 속에만 있는 고독한 단어 셋 : ‘바람서리’, ‘공활’, ‘화려강산’
애국가 속에만 있고 일상에서 전혀 쓰이지 않는 단어가 세 개 있다. 2절의 바람서리(태풍으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4)*, 3절의 공활(空豁 텅빈 골짜기)(5)*, 후렴의 ‘화려강산’.
그러나 ‘바람서리’와 ‘공활’은 사전에는 있는 단어지만, 화려강산은 국립국어교육원 출판의 「한글 대사전』등 국어사전에조차 없는 단어다. 더구나 바람서리는 2절과 공활은 3절에 있어서 보통 잘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화려강산’은 1절만 부를 때도 불러야 하고 4절까지 부른다면 4번이나 불러야 하는 후렴구에 속해 있어 더 문제다.
지난 600여일간 애국가를 톺아보면서 필자가 참을 수 없이 분노하고 실망한 것은 단 한가지다. 바로 필자가 문제점 100가지를 제기하면 단 한 가지 불명확한 점을 침소봉대하여 나머지 99가지 모든 문제에 대한 신뢰성을 훼손하여 덮어버리려는, 또 이를 암묵적으로 동조하려는 대다수 주류 지식인들의 고질적 습성이다.
솔직히 말해 아래 표에서도 독자 여러분은 단 한가지라도 미심쩍은 부분을 찾아내어 모두를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필자도 이해한다. 평생 자랑스럽게 불러왔던 애국가였으니 솔직히 말해 2년 전 필자도 그랬을 것이다. 애국가의 ‘국’(國)이 대한민국이라고 철석같이 믿어왔으니.
그러나 세계 다수 국가의 국민들은 국가 상징 가운데 주권자 국민이 몸과 마음으로 부르기에 가장 중요한 국가(國歌)에 0.1이라도 미심쩍은 부분 있으면 서슴치 않고 문제점을 제기하고 그걸 공론화하여 개선했고 개선을 추진중이다.
오스트리아는 2012년 1월 1일 ‘아들들’을 ‘딸들과 아들들’로 3절 ‘형제애’를 ‘환희’로 바꿨고 캐나다 역시 2018년 2월 7일 ‘sons’를 ‘we’로 바꿨다.
가장 최근의 예 하나를 들면, 11월 11일 글레디 베레지클리안(Gladys Berejiklian) 호주 뉴사우스웨일즈(NSW) 주총리는 호주 국가 “힘차게 전진하라 호주(Advance Australia Fair)” 맨 앞 소절에 나오는 단어 ‘young’(젊음)을 ‘one(하나)’로 바꾸자고 제안했다.(6)*
그는 기존의 “We are young and free”(우리는 젊고 자유롭다)"를 "We are one and free"(우리는 하나고 자유롭다)로 바꾸면 호주도 호주원주민을 포함한 하나의 호주로 성장한다며 국가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즉 호주의 자랑스러운 원주민 역사를 포용하여 호주를 수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를 가지는 나라가 된다고 강조하면서 이러한 국가 가사 개선에 관한 호주 원주민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전국적인 토론을 벌이자고 촉구했다.
국가를 1회 이상 교체한 나라의 수는 108개국이다. 프랑스 7회, 불가리아 6회, 독일, 태국, 이란, 스페인,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아프가니스탄 5회로, 5회 이상 국가를 교체한 나라의 수가 9개국이나 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를 교체한 나라는 모두 87개국이다. 식민지나 자치령에서 독립해 주권국가를 건국한 나라는 대다수 국가를 교체했다. 대한민국만 예외다.
우리나라도 <애국가> 가사 전체를 한번에 바꾸기 어렵다면 우선 순국선열을 비롯한 옛 선조들은 물론 현대 한국인의 일상생활에도 전혀 쓰이지 않고 국어사전에조차 없는 왜색 조어 ‘화려강산’을, 입과 귀에도 익고 뜻과 어감도 나은 ‘금수강산’으로 고쳐 불렀으면 좋겠다.
◆◇◆◇◆◇◆◇각주
(1)*If I had means to choose my home at my pleasure, Japan would be the country. I don't want to live in China with its abominable smells or in America where racial prejudice and discrimination hold their horrid sway, or in Corea as long as its infernal government lasts. O blessed Japan! The Paradise of the East! The Garden of the World!
(2)*清国に滞在中、南宮檍の訪問を受けた。彼は朝鮮を象徴する国花を決めるために潜伏中の尹致昊を訪ねてきた。1893年には南宮檍と相談してムクゲを国花に定め、それから愛国歌のリフレーンに「ムクゲの花、三千里、華麗な山河」という歌詞を入れた。
(3)* 화려강산 기원절 경축가 (출처 미상) 삼천리 강산 무궁화 강산 / 너의 화려함은 세계에서 제일이네
(4)*바람서리(태풍으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는 일제강점기 1930년대 발간된 사전부터 살짝 끼어 있을 뿐, 일상생활은 물론 언론 매체 문학작품에도 단 한번도 사용되지 않고 있다.한 방송 퀴즈 프로그램에서 그 누구도 맞추지 못한 극도로 난해한 문제로 악명높다,
(5)*공활((空豁)’텅빈 골짜기) 중국에서 유사이래 단 두 번 쓰이고 종적을 감춘 극난해한 한자어이다. 우리나라 단 한번 나오는 사어이다. 공활(空豁)’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한국7대 대표사서 총2억 9천8백만여자중 <승정원일기> 단1회 출현 1747년 (영조23년) 7월 5일 山谷狹窄, 浮石處雖空豁,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공활이라는 극생경한 일본식 한자어는 쓰더라도 드넓은 하늘을 형용하는데 쓰는게 아니라 돌맹이가 구르는 텅빈 계곡을 묘사할때 쓰였다.일본에선 현학적인체 하는 호사가들에게 간간히 사용된다(호카이도 대학 유명 미술가 아호도 공활)
(6)*<시드니 모닝 헤럴드> 2020.11.11. 사설